2002-12-04
[프로필]
1978년 1월 17일생
1999년 영남 이공대학 패션디자인과 졸업
1999년 삼육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자퇴
2002년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졸업
국제 패션 디자인 학원 졸업
현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의상디자인과 재학중
[수상경력]
21세기 우수 인재상 대통령상
제1회 대한민국웨딩드레스 컨테스트 대상
제1회 서울 벤처디자인 컨테스트 대상(서울시장상)
제2회 두산타워 벤처디자이너 컨테스트 대상
전국 섬유패션디자인대회 장려상
대구 패션 디자인 대회 장려상
[전시회 참가 및 사업경력]
2001년 3월부터 두산타워 매장
2001년 8월 미국 라스베가스 매직쇼 참가
2002년 7월 홍콩 패션위크 참가
2002년 9월 프레따 포르테 파리 수주박람회 참가
[방송, 잡지, 신문보도]
- 방송 : 51회 인생대역전, 톡톡이브닝, 아주 특별한 아침, SBS.KBS 9시 뉴스, 현장르포 제 3지대(동대문은 살아있다), YTN뉴스, KTB 국립방송(내일을 여는 사람들), SBS모닝 와이드, KBS팡팡 기분 좋은날 등
- 신문 :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Good day등
- 잡지 : 쎄시, WITH, 신디 더 퍼키, 여성중앙, 동대문.남대문신문, 홍콩신문, 어린이잡지 생각쟁이, 패션비즈, 일본 관광홍보 책자, 각종 사보 및 학보사 신문 등
- 드라마 : MBC 미니시리즈
<로망스>
의 주연인 패션디자이너 관우의 실제 모델
평범한 청바지에 화려한 비드나 구슬, 자수, 반짝이 등의 소재를 이용해 파티에서도 입을수 있게 만든 일명 ‘파티청바지’. 대학시절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통해서 본 서양의 파티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제품 하나로 작년 한해동안 각종 매스컴의 취재와 출연쇄도를 받아 유명세를 톡톡히 치룬 이진윤 씨를 성공디자이너에 소개하게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매스컴에서 소개한 것처럼 그는 파티청바지 하나로 단번에 19억원이라는 매출을 올려 돈방석에 앉은 기린아는 아니다. 매스컴의 찬사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의 짧지만 진솔한 이야기와 그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많은 생각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힘찬 격려가 되고, 삶의 생생한 정보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인터뷰 ; 박희연 객원기자
로망스>
당시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과 4년 재학중인 이진윤씨가 작년 8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의류박람회에서 외국 바이어들에게 받은 파티청바지 주문량은 150만 달러. 88달러 짜리 바지로 따져 17,000벌, 재킷과 조끼를 포함한 200달러 짜리 정장으로는 7,000여 벌을 팔게 된 셈이라고 한다. ‘파티에서도 입을 수 있는 청바지’란 기존 청바지의 개념을 과감하게 깨뜨린 독특한 아이디어가 해외 바이어들에게 구매 동기를 일으킨 것이다. 사회 경험도 없는 디자인과 학생이 만든 아이템 하나가 세계를 주목시켰다는 데 흥분한 국내 언론들은 앞다투어 그의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 올해까지도 여전히 많은 매스컴을 타고 있는데 그 날 이후 혹시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까?
막 튀운 새싹 같은 디자이너가 활짝 핀 기성 디자이너처럼 보여져서 참 부담스러웠어요. 그리고 부족한 상태에서 미리 알려져서 만약 경제력이 뒤따라주지 못한다면 내 영역이 파티청바지 하나로 한정돼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생겼어요.
하지만 홍익대 수시면접 보러온 학생이 학교 지원동기를 물었을 때 “이진윤씨 때문에 왔어요”라고 했을 때 작은 행동조차도 신경이 쓰였지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여기저기 대학에서 강의 요청도 들어왔고 법문사에선 경제교과서에 파티 청바지에 관한 내용을 싣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두달 동안 앓았습니다.
☞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쓰셨어요?
사람들은 제가 돈방석에 앉았다고 생각해요. 매스컴에서도 돈을 중심으로 너무 부풀려서 보도하고. 그런데 그건 제 돈이 아니예요. 에이전시와 같이 전시회에 나갔고 거기서 다 진행했기 때문에 제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었어요. 그 돈이 제게 고스란히 들어왔으면 제가 여기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전 돈보다는 제가 디자인한 제품이 해외시장에 첫발을 대딛었고, 게다가 당당하게 대우를 받았다는 자부심이 더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2000년 7월, 동대문 두산타워의류상가에서 주최한 벤처디자이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특전으로 해당상가에 두평 남짓한 매장을 작년 3월부터 1년간 무상으로 제공받아 파티 청바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업초기엔 고가의 생소한 파티 청바지는 소비자들에게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그해 6월 재미 의류 사업가인 정연수 씨가 우연히 그의 매장을 들렀고, 그의 독창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껴서 미국시장으로 물꼬를 터준 것이다.
그의 작업실 겸 생활장소는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반지하 다세대 주택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대여섯개의 마네킹이 근사한 그의 상품을 몸에 두르고 사람을 반긴다. 하지만 작업실로 들어서면 여느 자취생들의 허름한 방처럼 어지럽게 널린 패턴, 옷감, 샘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가 수많은 컨테스트에서 수상한 상금을 중고 1백만원짜리 재봉틀 두 개, 3백만원 짜리 마네킹 대여섯개, 그리고 샘플 구입 등에 쓰다보니 방 세개는 물론 거실까지 포화상태이다.
☞ 앞으로도 파티 청바지만 계속 하실 건가요?
그건 제가 소재에 대한 표현의 한 방법으로 만든 첫작품입니다. 청바지 아이템이 다는 아니죠. 데님 소재는 제 옷의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데님을 의상 전체로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부분에 핵심소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소재는 한가지지만 다양하게 적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데님은 워싱하는 방법이나 스티치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이 나올수 있습니다. 소재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전 현장으로 많이 뛰어다녔습니다. 염색공장에서 봉제공장까지 직접 나가 살다시피 했어요.
지금은 새로운 브랜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그 이미지가 확정될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옷은 실용적인 컨셉을 가지고 제가 입을수 있는 편안한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책을 세권정도 넣을수 있는 가방을 메도 분위기가 나고,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도 어울리는 그런 옷이요.
그는 얼마전 아동 셔츠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아 작업을 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도움도 됐지만 데님 소재와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미래 자신의 잠재고객이라는 생각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 잡지나 신문 또는 프로그램에서 그를 부르면 기꺼이 간다.
☞ 자수를 넣은 화려한 청바지부터 구슬이나 여러가지 장식을 한 것까지 가게에 가면 많잖아요. 비슷한 제품들도 많이 나왔을텐데, 모방 제품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카피는 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하는 터닝 포인트가 돼요.
“난 또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겠구나” 하고. 그래서 전 신경쓰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홍콩쇼에 나갔을 때 시장조사를 하다보니 제것과 똑 같은 제품이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전 아이디어를 얻었죠. 내것이 저렇게 비싼값에 많이 팔릴수 있구나 하고. 그래서 내년부터는 그곳 매장들을 대상으로 전시회 카달록을 만들고 초청장도 보낼 생각입니다.
상표등록이니 부정경쟁 방지법이니 그런 걸 기대했는데 의외로 대답이 명쾌했다. 모든 걸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옷이 허가없이 팔리고 있다는 건 사람들이 좋아
하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했다.
☞ 옷을 만들고 연구하기에도 하루가 빠뜻한데 지금 학교까지 다니고 있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디자인을 한다는 건 단지 감성만을 불어넣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성을 디테일하게 구체화시킬수 있는 능력과 아이디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는 계속 할 생각입니다. 석사과정이 끝나면 박사에도 도전할 생각입니다. 영국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가르치면서 일도 하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꿈도 많고 할 일도 많습니다. 하늘이 노랄 일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나서 잠자리에 들때는 정말 행복합니다. 아!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고, 그걸 할수 있다니…
단기간에 일약 스타가 돼버려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던 그에게 생전 겪어보지 못한 일들도 있었다. 매스컴에 보도된 후 친하게 된 연예인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매장을 찾았고거기에 힘입어 옷장사도 제법 됐다고 한다. 그러던 차 공모전의 대상으로 받은 매장의 계약기간이 끝났고 다른곳에 매장을 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였다. 혼자서 디스플레이도 하고, 인테리어도 했다. ‘사돈이 땅만 사도 배가 아프다’고 그를 부러워하는 주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상권을 둘러싼 힘센 자들의 협박과 완력에 못이겨 매장을 철수하면서 세상이 녹녹치 않다는 걸 처음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올해 그는 내노라 하는 세계 패션박람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이제는 혼자서 만들어갈 길이 더 멀고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9월 파리 프레따 포르테 수주 박람회는 그가 혼자서 처음으로 나간 해외 전시회이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던 실력을 발휘해 외국 바이어들과 상담도 하고 주문서도 작성했다.
☞ 처음으로 혼자 직접 참가한 전시회라고 하셨는데 반응은 어떠셨어요?
처음엔 굉장히 주눅이 들었어요. 유명한 브랜드의 화려한 옷들 사이에서 부스도 제대로 못꾸미고 모델들을 사용할 입장도 아니고… 하지만 지금은 밑지고 장사하지만 10년 후에는 제대로 된 수주를 받을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5만불(약 6천만원) 정도 수주를 받았어요. 하지만 전시회후 일부는 취소되고 일부는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옷이 해외에 나갔어요. 제가 상공회의소 뛰어나니고 수출장 쓰고 다 했습니다.
제1회 서울벤처디자인 컨테스트에서 서울 시장상을 받은 작품을 이번 전시회에 출품했는데 쿠웨이트 바이어가 오더를 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양산을 할수 있는 제품이 아니지만 바이어의 요청에 따라 매월 열두 벌씩 만들고 있어요. 수량은 적지만 가격면에선 부가가치가 크고 또한 쿠웨이트에 있는 편집 매장 AL-OSTO URA의 명품관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측면에서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에겐 이번 전시회가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따로 경영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수출업무를 해본건 아니지만 별 무리없이 일을 해냈고, 특히 외국 바이어들과의 거래를 통해서 그들의 명쾌하고 정확한 요구와 약속에 대한 중요성을 몸소 체험했다. 그의 스크랩북에는 영문의 Order Sheet가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체험을 통해 얻은 산지식을 그는 값지게 생각한다. 나름대로의 영리한 원칙도 정했다. 수출업무는 환차손이나 선급금 때문에 원하지 않는 피해를 입을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오더를 받을땐 선급금을 70% 받은 뒤에 작업을 구체화시킨다.
규모를 갖춘 회사를 갖고 있진 않지만 그가 벌어들이는 연간 매출액은 1억 5천만원 정도. 하지만 매출액의 대부분은 투자자금으로 다 쓰이기 때문에 매년 결산을 해보면 zero 상태라고 한다. 사업초기에 두 형에게서 빌렸던 돈을 갚고, 한번 나가면 3천만원 이상씩 들어가는 해외 전시회, 그리고 적지 않는 샘플 구입비, 재료비 등등. 그걸 충당하기에도 이 돈은 턱없이 모자라다고 한다.
☞ 내년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해외 박람회를 계속 나갈 생각입니다. 1월엔 홍콩 박람회가 있고, 9월엔 파리박람회가 있습니다. 올해의 경험을 토대로 내년엔 더욱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 투자자를 찾고 있습니다. 남들은 압구정동 같은 번화가에 번듯한 매장 하나 내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매장 하나 운영하기엔 조건들이 많습니다. 특히 경제력이죠. 지금 주위에서 절 도와줄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투자자를 만나 얘기를 진행시키고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쉽진 않네요. 서로 원하는 바가 달라서. 좋은 사람 좀 소개시켜 주시죠?
그가 웃으면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가 난다. 남자의 웃음이 이렇게 다를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범상치 않는 웃음소리는 그의 선한 첫인상과는 전혀 딴 판이다. 마음속에 담긴 꿈을 얘길할 땐 침이 튀고 말이 빨라진다. 그리고 웃음소리도 커져간다. 흥분에 달뜬 목소리는 이미 생각보다 멀리 저만치 가 있다.
그와 패션을 얘기하면서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자신감의 원인을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건 바로 도전의식과 사물을 바로볼 수 있는 긍정적인 시각이 아닐까 싶다. 이세이 미아케나 겐조가 패션의 성공스토리를 만든 것처럼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도전의식에 있다고 그는 분명히 믿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 여섯이 모두 서울대에 들어갔을 때 그는 성적이 좋지 않아 인문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2년제 의상디자인학과를 택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그걸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졸업할 수 있어서 많은걸 할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육대 영문과를 다닐 수도 있었고, 두번째 도전한 국민대에 당당히 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목표를 정하면 주저하지 않는다.
몇번이나 떨어졌던 공모전에선 기어이 상을 받았고, 대다수 패션 디자인 공모전 수상을 그가 휩쓸다시피 했다. 지금 현재 그가 풀기 어려운 숙제는 공부와 일 때문에 미뤄진 군입대에 관해서다. 월드컵 4강에 우리나라를 올린 축구선수들은 군면제 특전을 누렸는데 디자이너는 왜 않될까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직접 병무청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는 “병무청이 인정한 공모전 수상 경력”이란 애매한 조항 앞에선 어이가 없었다면서 자신이 그걸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통해 해외에서도,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진윤이란 이름을 더 빛나게 알릴 것이라고 한다.
국내 디자이너로는 진태옥씨를 존경하고 소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 그의 의상에선 시적인 분위기가 난다는 일본의 이세이 미아케. 그리고 인체미학을 시적으로 표현한 요지 아마모토, 복식사에 대한 연구로 풍부한 소재의 컬러감을 구현하는 크리스찬 라크로, 돌체 가바나, 콤뿌데스 가라데…. 그의 입을 통해 줄줄이 나열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라면서 그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며 성공의 탑을 더욱 도탑게 쌓아가고 있다.
☞ Artfilm- 쇼걸. 왜 실패한 영화인지 모르겠다 엘리자베스 버클리 마음에 든다
☞ Button- 나에게 밑바닥 인생은 없다 항상 나의 실험대상이다
☞ Creative- 도전과 생각은 항상 창의력에 맞서고 있다. 창의력은 결과에 달려있다
☞ Dislike- 사람의 약점을 잡아 이용하는 것들이 싫다
☞ Experience- 진정한 산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
☞ Fear-걱정꺼리는 항상있다 그러나 나에겐 맞설 용기가 있다
☞ Gold- 좋다, 넘 좋다. 근데 없어서 문제다
☞ Handicap- 정이 많다. 아니 없다. 왕자병인게 문제지 뭐...
☞ Introduction(회사설명)- Jean을 사랑하는 젊은이의 회사
☞ Jump(도약계기)- 항상 도약계기를 노리는 중이다
☞ Killing Time- 죽일시간이 없다 시간은 금이다 뭐라도 해야지
☞ Leadership- 넘쳐 탈이다. 그러나 소외감 느낄 때가 많다
☞ Message(맘에 담고 있는 격언)- 까르페 디엠! ( “현재를 – 순간 - 즐겨라“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라틴어)
☞ New(호기심)-내 인생에 호기심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지? 알면서 좋은거 있잖아요?
☞ Occupation- 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직업으로 생각한다. 그건 나의 즐거움이다
☞ Partner- 진정한 파트너쉽은 나의 진정어린 마음에 비롯된다
☞ Quickness- 급할수록 릴렉스 한다. 저 성격 무지 급한데
☞ Revolution- 서울 유학 오던 날
☞ Style- 자신감 있는 옷차림, 그러나 어린 왕자처럼 입는다
☞ Track- 진취적인 삶으로 성실한 모습을 나 자신에게 보여주겠다
☞ Useful Books- 패턴책, 봉제책, 마케팅책, 내 취미는 예술 관련된 책 모으는 건데…
☞ Vain- 옛날 착한 여자친구랑 헤어지게 만든 일 나의 실수
☞ Weekend- 설렘이다. 그러나 시간 잘 간다
☞ Xanttippe(크산티페, 소크라테스 부인, 사랑 또는 결혼 생활) - 좋은 사람 있으면 언제든지 찝쩍되겠다
☞ Young- 젊은사고 젊은이 이게 바로 Jean 사상이 아닐까?
☞ Zoom(가까이서 보는 자신) - 자랑스럽다
그래, 넌 박사를 잡아 난 세상을 잡을꺼야 – 서울문화사
재래시장에서 패션네트워크로 – 삼성경제연구소
우리는 지금 대박 터지는 시장으로 간다 – 청년사
동대문 시장지역의 학습지역화에 관한 연구 –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광선 씨의 석사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