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5
이윰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1995년 우리나라 미술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지금까지 걸어온 그녀의 발자취만 되짚는다 하더라도 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설치예술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수많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비평 속에 ‘영상이미지 세대의 대표적 신세대 주자’로 일컬어졌던 그녀. 강렬한 비주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녀 자신이 직접 살아있는 조각품이 되는 등 그녀의 표현방식은 한계점이 없어 보이지만 이윰이 여러 방식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다.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취재 | 서은주 기자 (ejseo@jungle.co.kr)
사진 | 정민우(진공 안드로메다)
홍대의 어느 한 강의실에서 말없이 조각을 하던 이유미가 ‘이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났을 때 과거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수했던 그녀가 투명한 빨간색 아크릴로 만든 조각품 옷을 입고, 그녀가 직접 쓴 소설
<빨간 블라우스>
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 그리고 상상력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비주얼 영상을 만들어 무대배경으로 사용하고, 소설 속 테마를 설치 미술로 표현했다.
‘조각가였던 나는 어느 날 조각품을 만들다가 생각했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조각품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대신 내 스스로가 살아있는 조각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살아있는 눈빛과 심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싶었어. 먼저 내 머리 속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들을 꺼내놓기 시작했지. 살아있는 조각이 되어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그런 이야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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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빨간색의 차원’으로부터 날아온 예술가, 빨간 블라우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제가 갑자기 변했다기보다는 그동안 제 안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저를 비로소 끄집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제각기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실현시키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잖아요. 제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것을 시각화시킨다는 것이죠. 그것은 예술가적 본능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나를 이끄는 아름다움의 힘.” 그녀는 그렇게 세상에 ‘이윰’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녀는 사적 공간인 미니홈피에서만큼은 여전히 ‘이유미’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린 뒤 20대의 이윰은 그야말로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데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다. 첫 개인전에 이어
“20대의 저는 다양한 대중 미술을 섭취한 뒤 모든 장르를 실험해봤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 이기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게 아주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어요. …….
매란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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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낯선 이방인처럼 살아가길 바란다. 미술계가 나에게 낯선 환경이 되길 바라며, 미술계에 있어서 나의 작업이 낯선 것이 되길 바라며, 미술계가 나를 낯설게 여기길 바란다. 나도 미술계도 서로를 낯설게 여기길 바란다. 발효일, 천구백구십오년 삼월 십사일.’ 당시의 이윰을 만났던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건네받았을 그녀의 맹세문의 구절이다.
에디터 또한 이윰 작가를 만나기에 앞서 ‘이 맹세문을 손에 받아들게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이윰이 아니었다. ‘루아흐는 신성한 바람, 호흡, 생명, 영. 깃발처럼 나를 감돌아 이끌고 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아. 무한대를 따라 마침내 들어와 버렸어. 광대한 이곳에 나는 서있네. 나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만 세상에 속하여 지지 않아.’
지난 2005년 열렸던
<깃발의 환상>
展은 이윰이 아티스트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인 ‘루아흐’의 이윰으로 다시 거듭나는 시기에 제작된 작업이었다. 루아흐는 바람, 호흡, 생명을 의미하는 말로 이윰의 새 이름이기도 하다. 비평가들은 이 전시를 보고난 후 ‘이윰이 그동안의 모습을 벗고 새롭게 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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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에 들어서니 느림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게 됐어요. 과거의 이윰과 달라졌다기보다는 그동안 응축되어 있던 것이 더욱 발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직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지금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두지만 그 무엇보다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마음을 정화시켜줬으면 좋겠어요.”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이 ‘이유미’였다면 ‘이윰’은 자아를 나타내는 이름이고, ‘루아흐’는 영혼을 뜻한다. “이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인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유미에서 이윰으로 탈바꿈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윰에서 벗어나 루아흐로 다시 돌아왔을 때 달라진 면모를 보이더니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의 루아흐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아직 아무도 들어서지 않은 새로운 영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요. 인생을 진하게(!) 살면서 예술의 궁극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죠. 세상에 맞닿아 있으면서 이 영역을 초월하는 그 무엇.”
그녀가 최근 걸어온 행적을 들여다보면 기업의 아트 마케팅과 연계해 한발자국 더 대중 속으로 가까이 다가선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인사동 아트싸이드에서 열렸던 이윰의 퍼포먼스는 화장품 브랜드 ‘제니스웰’의 아트 마케팅 일환으로 그녀는 ‘제니스웰’이라는 브랜드를 보고 상상한 것을 동화로 엮어 그것을 퍼포먼스로 옮겨냈다. ‘신선한 봄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봄을 맞은 인사동의 분위기를 돋우며 갤러리의 윈도우를 무대 삼아 거리 곳곳에서 펼쳤던 그녀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순전한 나드의 축복 2007’, ‘더후 2006’ 또한 아트 마케팅 작업의 예.
최근 기업의 아트 마케팅이 활기를 띠면서 몇몇 작가들이 ‘너무 상업적인 것 아니냐’는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이윰은 “일반인들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예술을 쉽게 풀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어 그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그네들도 이내 마음을 연다는 것.
이뿐만 아니라 그녀는 요즘 소설
<빨간 블라우스>
를 좀더 심화시키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말 실험적인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른
<빨간 블라우스>
를 본격적인 공연물로 만들겠다는 것. 연기와 춤, 노래, 악기 연주, 영상과 설치 미술 그리고 퍼포먼스. 그 어느 것 하나 그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기에 그녀의 몸과 마음은 어느 때보다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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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빨간색’이라는 테마 아래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만나 하나의 총체적인 연출을 이루어가는 창조적인 무브먼트를 꿈꾸는 그녀. 기쁨, 사랑, 열정 등 빨간 블라우스가 주는 무한한 상상력 안에서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는 우리네 심장을 말갛게 씻겨내 주는 루아흐의 이윰의 모습을 하루 빨리 만나보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그녀의 작업에 함께 참여하고 싶다면 빨간 블라우스의 홈페이지(www.redblouse.net)의 문을 두드려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