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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꽃도둑 백은하의 마른꽃 드로잉 세상

2007-11-13

직접 꽃을 따서 책갈피에 꽂아 말린 꽃잎은 해맑은 웃음을 짓는 아이가 되기도 하고 잔주름이 가득한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글그림 작가로 알려진 백은하는 말린 꽃잎에 펜으로 생기를 불어넣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을 탄생시킨다. 꽃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기발한 상상력을 펼치는 백은하의 풀밭 세상을 만났다.

취재| 박현영 기자 (hypark@jungle.co.kr)
사진 ㅣ 스튜디오 salt


4년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큰 눈은 여전한데 조금은 야윈 모습, 그러나 변치 않은 환한 미소로 반긴다. 지난 여름 정동으로 작업실을 옮긴 백은하는 밀려드는 일에 지난밤도 꼬박 새웠다고 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지난 7월 경인미술관에서 ‘꽃.多.發!’이라는 개인전을 가졌는데, 작업실 한 켠에 있는 ‘무브먼트(Movement)’라는 마른꽃 펜드로잉 작품만이 그때 전시작품 중 유일하게 남았단다. 작품이 잘 팔리고 인기가 있는 것은 즐겁지만 아깝지 않을까. 그녀는 자족하면서 살면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을 것 같아 팔거나 선물로 줘서 작품을 최대한 빨리 바깥으로 내보낸다. 그런데 무브먼트는 아직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도저히 못 팔겠다고.

여행을 좋아하는 백은하는 길을 잃어도 그 자체를 새로운 여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만나는 꽃잎은 어느새 그녀의 손에 쥐어진다. 꽃을 좋아해 ‘꽃도둑’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녀는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 , <기차를 놓치고 천사를 만났다> , <엄마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지?> , <꽃도둑의 편지> , <너에게 花를 내다> 등의 책을 통해 글그림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10여 년 넘게 마른꽃잎 드로잉 작업을 해온 백은하의 작품은 아류를 찾기 힘들다. 아류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묻자 작업이 너무 단순해서라고 답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작품은 소재부터 표현에 이르기까지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은 듯 자연스럽다. 마른 꽃잎의 모양이 꼭 사람처럼 보인다며 그 위에 펜으로 드로잉을 더해 모든 꽃잎을 사람으로 그려낸다.

그림의 시작은 책에서 꽃을 꺼내면서부터 시작된다. 아주 선명하게 예쁘게 마른 꽃보다 어딘가 접히거나 구겨져서 묘한 컬러로 재미있게 마른 꽃이 표현의 대상이 된다.
“차렷 자세는 정말 재미없어요. 상상력이 안 생기죠.” 흔히들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반듯하게 펴서 말리는 것과 달리 그녀는 꽃잎을 아무렇게나 책갈피에 던져 넣는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잊고 있다가 불현듯 꺼내 그 모양새를 살핀다. 복잡다단한 신경이며 내면을 보이는 꽃을 통해 영감을 받게 된다.

백은하는 꽃에게 빚지고 산다고 말한다. 너무나 훌륭한 꽃은 욕심이 나서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면 꽃을 도로 넣어두고 다시 생각날 때 꺼내 그린다. “처음부터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고 꽃을 꺼내지는 않아요. 마른 꽃을 보면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죠.”

한동안 그녀는 꽃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꽃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여행 다니면서 1년 동안 그리지 않다가 다시 책갈피에서 마른 꽃잎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림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느꼈다. 전에는 동화적이고 안정된 세상, 이상적인 풍경만 그려왔는데 이제는 불안, 갈등, 슬픔 등 내면 풍경을 그리게 된 것. 지난 여름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치유를 받았을 정도로 소재와 표현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뉴욕을 돌아본 에피소드를 엮은 백은하식 뉴욕 여행기와 오는 11월에 성암아트홀에서 열릴 공연의 무대미술작업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꽃도둑 백은하. 한번 피어나고 시들어버릴 꽃에게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기에 백은하의 꽃그림은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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