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6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서울이 선정된 것과 관련하여 서울시의 디자인 관련 추진 사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 선봉에 선 ‘서울디자인재단’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의 효율적인 운영과 2009 서울디자인올림픽(SDO) 개최, WDC 관련 사업 등 서울시 수탁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디자인 전문가들이 모인, 서울시에서 설립한 유일한 디자인 전문 지원기관이다. 지난 3월 출범한 서울디자인재단의 사령탑을 맡은 심재진 대표를 만나 서울의 디자인 경쟁력을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에디터 | 박현영, 사진 | 스튜디오salt
홍익대학교대학원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심재진 대표는 LG전자 상무와 코아스웰 부사장을 역임하였으며,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 집행위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규모 디자인 조직을 운영한 경험과 디자인 전문성을 인정받은 심 대표는 ‘서울디자인재단’을 꾸려 나간 지 벌써 3개월 째 접어들었다.
대기업에서 중책을 맡아 일해오다가 이번 재단 출범과 함께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되었는데 그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가
이전에는 서울시 공무원들에 대해 느슨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두 서너 달 동안 이 곳에서 일을 해보니 굉장히 빠르고 진취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무원 개개인의 역량이 상당히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의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정책을 협의할 때는 진취적이지만 결정의 내용이나 그 방식이 일반 기업체와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업을 통해 창출한 이익을 다시 재투자함으로써 조직 내에서 움직이지만, 시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움직이다 보니 아이디어나 협의 단계에서는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지만 마지막 집행 단계에서는 보수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울디자인재단은 보다 효율적인 정책 결정 방식을 통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지난 몇 달간 업무수행을 하면서 재단에 대해 자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재단이 출범하고 인력이 구성된 지 거의 석 달 째 접어든다. 사실 두 달 정도 지나면 서로간에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과연 우리가 서울시나 서울시민 고객들(개인적으로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측면에서 서비스 하고자 하는 서울시의 마인드가 반영되었다)이 충족할만한 디자인 사업을, 재단에 모여있는 40여 명의 인원들이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볼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자체 교육도 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울디자인재단은 디자인 전문 조직으로서, 서울시 내에 디자인총괄본부가 존재함에도 디자인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재단을 별도로 만든 만큼 더욱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모인 인재들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몸을 추슬러야 한다. 말이 재단이지, 최고의 기획 그리고 디자인, 이벤트를 풀어 나가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향후 외부의 훌륭한 인력을 2~30명 정도 더 충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환유(換喩)의 풍경’이라는 작품을 주제로, 2011년 완공 예정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이하 DDP)는 동대문의 역사 • 문화 • 경제를 모두 담아 도시설계와 조경, 건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매혹적인 디자인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지난 4월 28일, 중구 을지로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에서 열린 DDP 착공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DDP 건립의 닻이 올려졌다. DDP에 대해 심재진 대표는 서울의 랜드마크를 넘어 “월드디자인플라자, 세계 디자인 중심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한다
동대문운동장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서울 성곽을 허물고 일제가 건립한 공설운동장이다. 2003년 풍물시장 및 주차장으로 이용되면서 체육시설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지만, 주변지역은 패션 상권이 들어서 유동인구가 늘어난 반면, 쾌적한 보행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따라서 서울시에서는 패션상권의 중심에 위치한 옛 동대문운동장의 기능대체를 위한 지속적인 논의와 자문수렴을 거쳐 휴식, 녹지, 문화 복합공간으로서 디자인산업의 메카가 될 DDP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놀라운 역사적 유물을 발견하였다고 하던데
그렇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역사적 유물이 땅 속 깊이 묻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 약 5~600년 전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성곽은 조선 초기, 하도감터는 1500년대에 축조된 건축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발견된 유물들은 전부 석조이기 때문에 땅 밑에 묻혔어도 온전히 그 모양을 보전할 수 있었다. 앞으로 DDP홍보관을 방문하는 일반 관람객들이 직접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견학 코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역사와 미래를 조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DDP의 취지를 더욱 살릴 수 있겠다
물론이다. 5~600년의 역사가 공존하게 될 DDP는 어디까지가 역사적 유적이고 새로 만들어진 건축물의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런 상징적인 역사의 흐름을 동일 공간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축물은 이 세상에 없다. 동대문운동장을 허물면서 탄생된 것과 또 하나는 그 공간에 만들어 내는, 즉 ‘회복 과 창조’라는 컨셉트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환유의 풍경’ 즉, 자연을 치유하고 역사를 되돌린다는 DDP의 주제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는 건축학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자하 하디드가 처음 서울을 방문했던 것이 12~13년 전이라고 한다. 특히 사찰을 방문했을 때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자하 하디드는 동서양이 공존하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초현대적인 건축물을 창조해 낼 계획이다. 우리 고유의 동양건축물이 사라진 공간에 일정 부분 복원한 상징적인 공간과 함께 초현대적인 건축기술이 들어가는 건물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진다는 것. 다시 말해서 시간적으로도 5~600년의 역사를 뛰어넘지만 공간적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중동 출신의 자하 하디드라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이런 역사적인 건축물을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만들어냈다는 자체도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또한 건물과 공원이 함께 지형에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지형을 이용하고자 한 것도 큰 특징이다. DDP는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이를 기반으로 서울 디자인 산업을 육성하고 디자인 시설과 행사를 통해 시민들의 삶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DP는 말이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이지, 월드 디자인플라자를 비전으로 한다. 즉 세계 디자인 중심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향후 5년 내에 서울의 디자인 경쟁력을 세계 10위권 이내로 진입시킨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서울디자인재단은 2011년 완공 예정인 DDP의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운영과 함께 디자인 작품의 전시 및 보급 활동, 서울디자인올림픽 개최, 2010 세계디자인수도 관련 국내외 교류사업, 도시갤러리 사업 등을 추진한다. 첫번째 세계디자인도시로 선정된 디자인 서울을 만들어갈 막중한 임무를 띈 서울디자인재단의 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서울디자인올림픽(SDO)을 올해는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주관하는데 현재 어느 정도의 계획이 추진 중인가?
작년에는 처음으로 행사를 치르느라 어려운 점이 많았다. 올해는 시민 수준에 맞추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디자인 수준으로,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운동장이라는 공간을 활용하여 더 이상의 장소에 대한 논란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서울 시민들이 자유롭게 찾아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서울디자인올림픽은 학술대회나 협회, 디자인 전문가들의 잔치가 아니라 서울시민이 디자인을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이번 제2회 SDO의 주제는 ‘I Design’이다. 디자인전문가들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위한 디자인 축제로서, 서울에서 처음으로 만드는 ‘세계 대표 시민 디자인 축제’로 발돋움할 예정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의 핵심 사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도시갤러리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도시 자체가 작품이 되는 창의도시, 문화도시를 꿈꾸고 그리는 새로운 서울시 정책 프로젝트로, 창의적인 공공미술을 공공장소에 설치해 서울다운 멋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시민들에게 문화적 향유와 자긍심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시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매력적인 디자인 도시, 서울을 만들어 갈 예정이다.
이전의 경력을 보면 홍대 디자인학과 출신으로서 LG전자 상무를 역임, 디자이너로서, 또 대규모 디자인 조직을 운영하는 전문가로서 탄탄한 성장곡선을 그려왔다. 디자인이 중심이 되는 현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조언을 부탁한다
무엇보다 열정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남이 만들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역사에 대한 내용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현재의 흐름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많은 정보량이 필요하다. 경험과 체험에 지식이 더해질 때 직관력이 발휘 된다. 좋은 결정, 질 높은 결정을 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최소 5년, 10년은 내다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앞으로 디자인 전문지 기자들과 한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가질 계획이라고 하던데
서울디자인재단은 앞으로 기회와 시간과 정보를 만들고 나누는 역할을 하고 싶다. 사실 디자인 전문지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서울디자인재단이 디자인 전문지 기자들 간의 정보 소통의 창구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다. 처음에는 서울디자인재단이 자리를 만들겠지만 모임의 횟수가 많아지면 기대되는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모두가 기다릴 만한 프로그램으로 모임의 자리를 만들어 보겠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포부와 다짐을 듣고 싶다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2013년, 2015년, 2020년…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때는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는? 서울은? 그리고 우리는? ‘세계 디자인 중심 도시’와 ‘세계 디자인 중심 거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고 싶지 않는가? 그 모든 중심에 여러분들이 서 있다고 상상해 보라. 저의 포부와 다짐은 그러한 여러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이다. 이제는 나를 위한 꿈에서 더 앞으로 나간 우리, 그리고 여러분을 위한 꿈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