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21
많은 후배들이 그를 닮고 싶어하고, 또 그의 타이틀을 흠모한다.
<아레나>
와
<나일론>
의 총괄 디렉터이자 ‘디자인 所’의 대표이사. 하지만 내가 만나본 그는 화려한 직함보다는 잡지를 사랑하고 디자인을 사랑하는 ‘열혈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에디터│심민영(myshim@jungle.co.kr), 사진 │스튜디오 salt
나일론>
아레나>
“넌 밥 먹을 때는 직업이 뭐냐?”
“……….”
“그럼 너는 라면 끓일 때는 직업이 뭐냐?
“……… 요리사요?”
“나는 디자이너야.”
김형도 실장은 단 몇 초의 시간 안에 후배의 머릿속을 패닉 상태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엉뚱한 질문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의 엉뚱함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 가장 가지고 싶은 리스트 넘버원이 마론인형이었다는 김형도 어린이. 뭐(?) 떨어진다는 어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인형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그는 어머니와의 외출에서 여성잡지
<멋>
을 처음 접하게 된다. 결국 어머니의 만류에도 별난 학생 김형도는 그 잡지를 손에 넣게 된다. “
<멋>
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하면서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알았어요. 그때부터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전시회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편집디자이너로서 시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고민하기 시작했죠.”
멋>
멋>
<세븐틴> , <앙앙> 등 주옥 같은 여고생 지침서부터 <엘르> , <나일론> , <아레나>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잡지의 편집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한 김형도 실장. 그의 삶은 잡지를 빼놓고서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사실 에디터는 그를 만나기 위해 많은 질문들을 준비했다. 사소하게는 요즘 고민이나 좋아하는 영화스타일까지. 하지만 어떤 주제로 시작하던 이야기의 끝은 잡지로 이어졌다. 밥을 먹을 때도 라면을 끓일 때도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하며,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레아아웃을 구상한다는 그에게 애당초 ‘잡지’, ‘디자인’ 외의 다른 질문들은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레나> 나일론> 엘르> 앙앙> 세븐틴>
하지만 그렇게 잡지를 사랑하고 잡지밖에 몰랐던 그에게도 ‘정든 님’ 떠나 잠시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사실 이 방황은 호기적이거나 충동적 일탈이 아닌 계획된 외도였다. “딱 10년만 잡지를 하고 그림을 그려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잡지를 때려 치우고 얼마간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봤죠. 일간지의 4컷 만화부터 영어 학습지의 일러스트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곧 IMF가 터지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잡지로 다시 돌아와 시작한 작품이 바로 <앙앙> 이었다. 김 실장은 <앙앙> 을 창간할 때 텍스트의 세로쓰기를 시도했다. ‘도쿄 감성매거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건 <앙앙> 의 컨셉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당시 세로쓰기 자체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또한 다양한 공간 나누기를 시도한 순간 순간이 새것, 더 괜찮은 것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했던 그에게는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앙앙> 앙앙> 앙앙>
공간
이런 다년간의 경험들은 디자이너 김형도만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을 만들었다. 김형도의 디자인은 버려야 할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디자인을 할 때는 좋은 사진과 타이포, 그리고 독자와의 공감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뭐든지 버리는 것이 중요해요. 왜 집안 청소할 때도 버리는 것이 가장 힘들잖아요.” 때문에 김형도의 디자인은 공간을 가득 채운 정보와 인위적인 이미지가 차고 넘쳐 그 의미를 잃어가는 다른 잡지와 다르다. 기본에 충실하며 절제된 동시에 ‘나일론다운’, 또는 ‘아레나다운’ 아이덴티티와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김형도의 디자인 방식인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인쇄물이 범람하는 가운데 김형도의 디자인이 빛을 발하는 이유일 것이다.
고집
“전 다른 잡지를 잘 보지 않아요. 다른 잡지를 보지 않는 것은 남들이 해온 실수에 대한 답습일 수도 있겠지만 한번 뇌리에 박힌 남의 작업은 언젠가 내가 한 것처럼, 처음부터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재탕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의 작업은 항상 새로운 시도이며, 아직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생명과 같이 여기는 포트폴리오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대학을 졸업하며 준비했던 작품을 보며 디자이너로서 마음이 흐트러지고 느슨해질 때마다 젊은 시절, 디자이너로서의 무한한 꿈을 키우던 그때의 마음을 생각하며 정신을 바로잡는다.
김형도스러운 것, 김형도다운 것
이제는 디자이너보다 디렉터로서의 할 일이 많아져 버린 그의 위치지만 아레나의 매호 스무 꼭지 이상을 작업할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다. 페이지마다 신입 때의 열정과 고민으로 매 순간 디자이너로서의 최선을 다하는 그. 자칫 고생스러워 보이기도, 유별나 보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잡지는 일할 상대가 아닌 즐겨야 할 대상이자 그를 살아있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지금도 자전거를 타면서, 혹은 피맛골 어디선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도 레이아웃을 고민하고 있을 김형도 실장. 디자인을 고민하고 이야기할 때 가장 행복한 남자, 그 모습이 가장 ‘김형도스럽고’ ‘디자이너 김형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