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9
천의영 총감독은 돌은 얹는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하나씩, 천천히, 순리대로 바꿔야 한다는 그만의 표현법이다. 그가 짊어졌던 돌무더기는 어느새 꽤 멀리 옮겨진 듯 보였다. 우공이산의 자세가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Seoul Design Olympiad 2009)를 어디쯤 옮겨놨는지, 개최를 40여일 앞두고 분주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에디터ㅣ 이안나(anlee@jungle.co.kr), 사진ㅣ 스튜디오salt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가 10월 9일부터 개장을 합니다. 올림픽을 40 여일 앞둔 시점에서 천의영 총감독님의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4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 중입니다. 일과 시간이 주는 이중고로 심적 압박은 높아졌지만 촉박한 시간의 탓만은 아닙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총감독을 맡은 시기부터 시작된 이 고단함은 올림픽과 궤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중압감입니다. 몸의 피로는 있지만 정신은 명징해 진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은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에서 지원이 필요한 기관이나 단체를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협력의 시작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있습니다. 다행히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송파구청에서 시내• 외 교통문제를 지원해준다고 하네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열정이 승화되는 순간은 총감독 직이 주는 즐거움 중에 하나입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슬로건이 인상적입니다. ‘i DESIGN’ 과 ‘디자인장터 불황을 이긴다’가 눈에 띄네요
i DESIGN은 시민 모두가 디자이너다라는 뜻으로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주제어입니다. 이러한 주제 아래 내건 ‘디자인장터 불황을 이긴다’라는 슬로건은 축제나 장터로서 경제성의 논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장터가 열리면 사람들이 몰립니다. 그래야 장터로서 역할이 가능하지요. 디자인장터는 현재 시류가 적극 반영된 슬로건입니다. 디자인은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소통할 수 없지요.
디자인은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불황을 이긴다’는 것을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황을 이기는 원동력으로는 선뜻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서인 듯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호황을 누리는 물질에서 디자인의 숨결이 깃들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디자인이 가진 경제적인 가치는 무궁합니다. 풀어보자면, 디자인이 가진 고부가가치를 장터라는 하나의 꼭지점으로 집약시키는 작업이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의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이 IT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국경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기업들은 제품 디자인의 중요성에 눈을 떴습니다. 허나 국내기업은 주로 외국의 디자이너에게 제품 디자인을 맡기는 실정이지요. 불황을 이기는 원동력으로서 디자인이 국내 경제에 일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기업과 디자이너를 이어주는 교각을 층층이 다각도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에서 진행시키고 있는 큰 틀의 행사는 모두 디자인으로 디자인으로 불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기대하며 기획됐습니다. 서울디자인 컨퍼런스 아래 시민 디자인 포럼은 생활과 디자인 이라는 주제로 시민들의 일상에서 디자인의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자는 취지입니다. 포럼이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라면 서울디자인 전시회는 ‘장터’의 개념이 도드라집니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세계 각국의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으면서 디자인적인 가치를 체험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서울디자인 공모전은 ‘혼류와 통섭’ 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국제적인 인재를 발굴하고자 학생, 시민 등 디자이너로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데뷔 기회를 주고, 기업과의 연계하여 기회까지 제공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스티벌은 공모전과 궤를 같이 하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디자인 꿈나무를 양성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서울시가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되고, 어느덧 디자인의 메카로 거듭날 2010년이 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총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으시고 시민의 참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참여입니다. 장터에 사람이 없다면 안되겠지요. 시민들을 모이게 하기 위해서 착안한 것이 바로 잠실주경기장에 장터를 세우는 일입니다.
2008년은 잠실에서만 이뤄졌지만 이번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는 광화문, 시청광장, 홍대 앞, 신사동 가로수길, 한강 시민공원 등에서도 잠실의 일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 곳곳마다 디자인 점을 찍어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로 모이게 만드는 첫 번째 시작이 재미있는 디자인, 가고 싶은 디자인 입니다. 그리고 이미 시민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천만상상과 같은 공모를 통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을 해 왔고, 이들 아이디어 중 일부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에서 진행하는 컨퍼런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와 시민이 만나 담론을 나누는 소통의 창구로서 시작 전부터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일선의 디자이너부터 시민까지 고루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마 디자인서울 국제 컨퍼런스가 아닐까 합니다.
초청된 연사들은 국제적 명성이 높은 디자이너들입니다. 지안프랑코 자카이(이태리, 디자인컨티뉴엄 회장), 피터 슈라이어(독일, 기아자동차 디자인총괄부사장), 폴켈리(영국, 가구 디자이너), 하라 켄야(일본, 디자이너), 도미니크 페로(프랑스, 건축가), 댄 포모사, 데빈 스토웰(미국, 스마트디자인 공동대표),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 권영걸(서울대 미대 교수), 김영세(이노디자인 대표), 승효상(건축가), 최재천(통섭학자, 이화여대 교수)까지 디자인의 호불호를 떠나 인문사회학적으로 저변이 넓은 명사들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디자인이야기를 들으며 디자인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배우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디자이노믹스란 무엇입니까
디자인의 개념 중 하나인데 디자인(design)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 입니다. 디자인을 통해서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불황을 타파할 수 있다 라는 것은이케아(IKEA) 제품이나 일본의 무인양품을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저렴하고 대중적인 제품에 국제화된 디자인이 만나면 가치와 더불어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 마련입니다. 일상적인 제품이 디자인과 만나면서 일으키는 화학작용은 비단 외국에만 있지 않습니다.
디자인 서울 국제 컨퍼런스는 외국의 디자이너가 주를 이루지만 시민들을 대상으로 준비하는 시민디자인 포럼에서는 국내 유명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화가 이현세, 방송인 이다도시 등 일상에서 만난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주목하지 않았을 뿐, 디자인은 일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자리에 언제나 있어 왔고 우리는 뒤늦게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를 찬찬히 보면 국제적인 디자인 경향이 짙게 베어있습니다
유니버셜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타인을 배려하는 디자인이 첫 손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서울시 ‘배려하는 디자인 국제 경진대회’는 48시간 동안 현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공모전 형식입니다. 48시간 내에 소수계층을 고려한 디자인을 만드는 자리로 치유와 배려가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또한 국내 현실을 고려하는 교육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교육청에서 하는 디자인 교육 보고대회와 세미나 입니다.
디자인 교재가 없는 실정을 고려해 디자인서울 총괄본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었으며, 현직 교사들에게 이들 교재를 이용한 연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정된 시각을 벗어난 교사들간의 토론은 디자인 교육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일깨워 줄 것입니다.
디자인서울 국제 컨퍼런스는 소통이 중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국제적인 디자인 지식의 장을 위해 계획하신 일은
컨퍼런스는 일차적으로 디자인 각 분야간의 경계를 없애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디자이너의경우 자신만의 분야에서는 분석적이고 전문적일 수 있지만, 다른 것과 소통하지 않으면, 좁은 시야 안에 머무르게 될 수 있습니다. 쉬운 말이 있지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는, 숲이 만드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국제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안팎을 공유하고, 대안의 가능성들을 고민하는 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디자인 경영자, 학자 등 다양한 국내외 인사들을 초청하고 있고, 디자인이 소수만이 향유하는 예술의 분야로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노믹스” 개념을 통해 디자인이 공공의 경제생활에 이득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할 예정입니다. 또한 시민들이 이러한 디자인이 공공의 경제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공유하기 위해 누구나 무료료 참여 할 수 있는 시민 디자인 포럼도 개최됩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인’과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전문가와 시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천의영 총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서울의 디자인적 발전가능성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서울이 아시아 디자인의 한 축으로 우뚝 섰으면 합니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국가의 의식, 시민의 태도가 디자인을 사랑해야만 비로소 대륙의 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디자인 하면 떠오르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태리,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 적잖은 힘을 가지고 있지요. 그들은 디자인이 발전한 과정이 있습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지금은 성숙한 디자인을 위해 내실을 다져야 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는 미래를 위해 하나의 돌다리에 불과합니다. 지금처럼 돌을 얹어 나아간다면 그 발전가능성은 무한합니다.
디자이너, 학자를 거쳐 총감독직을 지내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라는 광장 안에서 다양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중간 지점에서 뒤를 돌아 과거를 회상해 본다면 스스로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디자이너이고 교수이기도 했지요. 공공디자인에 관심은 여전합니다. 스스로를 개량주의자 라고 말합니다. 개선을 시키는 데 관심이 있어요. 디자이너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교육을 통해 확산시켰고 공공부분에서 일할 때는 한계가 촉매로 작용해서 시너지를 얻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총감독을 맡으면서 만족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총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만족스러운 순간은 자주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 것을 느꼈을 때 감격한 적이 있습니다. 일을 해오면서 지금처럼 외국 대사관이나 문화원에서 호의적인 때는 드뭅니다. 외국 기내지에서 서울의 소식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생경한 경험이고요. 긍정적인 반응이 만족감으로 이어집니다.
베니스 비엔날레나 밀레노 페어는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투자가 지금의 수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울도 이제 그 첫 발을 내디 섰다는 것에 참여한 것이 가장 큰 만족입니다.
앞으로 계획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디자인 캐털리스트. 촉매역할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에서 총감독이 갖는 위치는 디자인과 사람들이 만날 때 촉매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를 돕고 기업에게 인재를 소개하고 시민에게 디자인의 가치를 알려,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분발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긍정적인 기운이 자연스레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을 찾은 시민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