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4
몇 년 전, 그저 참하기만 한 어떤 이의 등에서 타투를 보았다. 그녀는 수줍게 사랑하는 사람이 새겨주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등에 새겨진 작은 날개는 혐오나 터부가 아닌, 그녀에게 내려앉은 사랑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눈썹과 아이라인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몸 한 구석에,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자랑하고 싶은 신체 부위에. 중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타투가 조폭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스스로를 ‘엄마 오미자, 아빠 강상택의 막내 아들이자 누나 강재은의 동생이며 부인 정진아의 남편’이라 칭하는 강정은(a.k.a. novo)은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타투이스트라고 부른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사진제공 | 김유림 작가
프랑스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처음, 저는 타투이스트라는 말은 안 썼어요. 제가 되고 싶은 건 타투이스트가 아니라 사람의 몸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 표현의 방식이 ‘타투’이고 ‘새겨짐’인 것뿐이죠. 일반 사람들에게 타투이스트는 그냥 문신하는 사람이니까요. 그 후로 인터뷰도 계속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스스로를 소개하는 타이틀도 생기다 보니 지금은 그걸 굳이 구분 짓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낙서도 하고 손에 스티커도 붙이고 그러는 걸 좋아했어요. 처음엔 그렇게 시작된 거죠. 타투할 때의 소리도 좋았어요. 일률적인 기계 소리 같은 거요. 항상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볼 때 보통 털과 점 외에 이미지적인 것은 찾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몸에 그림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그 모습을 보는 게 굉장한 매력이 있어요. 내 몸에 그릴 수 있는 예쁜 선을 계속 찾게 되요. 그런데 몸이라는 것은 아주 평평한 도화지가 아니잖아요. 구석진 곳도 있고, 손이 안 닿는 부분도 있고… 그런 곳이 모두 작업의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죠. 내가 이 작업을 하게 된다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의 작업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조소를 했었어요. 그러다 조금씩 타투를 몸에 새기기 시작하면서부터 타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학교 수업 중에 누드모델이 왔었어요. 그 분의 몸에서 타투를 봤는데, 제가 생각하고 있던 그런 형식적인 타투 도안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에게 물어봤죠. 그랬더니 어떤 타투이스트가 고객이 자기 그림을 직접 그려오면 내용 그대로 그냥 타투를 해준다는 거에요. 그 때 깨달았죠. 타투는 전형적인 도안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 몸에 뭔가를 표현하는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모델 분이 처음으로 저의 바디페인팅 모델이 되어주셨죠. 그 작업을 시작으로 ‘몸에 그림을 그린다’는 제 작업에서의 방향성을 조금씩 잡아간 거죠. 이후, 학교를 휴학하고 국내에서 타투 작업을 하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갔어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타투 서적을 보기도 하고 그 곳의 샵에서 타투도 받고 작업하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서서히 중심을 잡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을 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한국에는 타투에 관련된 책이 거의 없는 상태거든요. 그때부터 서서히 작업을 진행했죠. ‘새겨짐’을 화두로 바디페인팅 작업과 타투작업,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나갔죠. 그러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책을 내게 되었어요.
저는 레터링 작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폰트는 정해져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와 같은 단어를 새기고 싶으면 똑같아질 뿐이죠. 꼭 타투가 세상에 하나뿐이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를 몸에 새긴다는 것은 개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봐요. 한국에서는 레터링이나 타투 같은 것을 그냥 도장 찍듯이 쉽게 생각을 해요. 특히 레터링 타투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생길만큼. 연예인이 한 타투가 예쁘면 그냥 줄을 서서 똑같이 해달라고 하죠. 자기 몸에 새기는 것이니 더욱 소중하게 자신만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아요. 그래서 되도록 웃으려고 하죠. 타투를 한 사람이 인상까지 좋지 않으면 안 되니까. 나와 눈이 마주친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려고 해요. 그것도 결국은 제 인식하고의 싸움이었어요. 제 스스로도 한국 사회에서도 문신이 그렇게 비춰지고 있다는 걸 알고, 제가 또 그걸 하는 사람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어려움이라기보다는 그것도 하나의 과제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저를 두 번째, 세 번째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오히려 타투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세요. 그 분들에게 타투는 관심 밖의 문화였고 그냥 보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저를 통해 바뀌는 거죠. 사람은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예쁘게 보여지고 싶어하잖아요. 타투가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임을 점점 깨닫게 되는 거에요.
제가 작업해드린 분 중에 손등에 긴 상처가 있는 분이 있었어요.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단순히 상처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옆에 몽당연필을 새겨드렸어요. 마치 몽당연필로 상처를 그린 것처럼. 결국 상처를 직접적으로 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치유한 거죠. 진정한 치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자기 안의 상처 같은 것들을 얘기할 때가 많아요. 결국 치유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에요. 저는 그걸 도와드리는 것뿐이고요.
저는 도안을 대화를 통해서 진행하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그걸 어려워하세요. 직업이 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의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과 어울리는 그림을 하나씩 찾아 가는 거죠. 그러면 결국 같은 사물을 두고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다른 그림이 나와요. 제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지만 그 사람의 느낌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거죠. 타투를 새기는 부위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부위로 보기보다 타투를 그 사람의 느낌과 이어진,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원하는 위치가 있다면 그 위치를 중심으로 도안을 해 나가는데, 그게 어디냐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니까 더 좋은 곳이 있으면 조언을 해주는 편이죠.
18살이나 20살 정도 된 학생들이 저를 찾아와서 타투이스트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타투가 패션화되고 있고 이걸 배워서 할 수 있는 직종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내 모습 하나하나가 이 친구들에게는 마치 전부인 것처럼 보여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 친구들에게 저는 네가 뭘 해야 어떻게 된다 하는 것보다 정말 네가 이게 좋고 하고 싶으면 계속 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타투에 대한 인식도 그렇지만 그 시기는 뭔가 한 길만을 정하긴 불안정한 시기잖아요? 지금은 타투하는 사람들과 저의 방향성이 다르기도 하고… 저도 이 작업이 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 할 수밖에 없거든요. 하고 싶은 수많은 일 중 하나가 타투라면 어느 정도에서 끝내야 하는 것이고 평생 해 나가야 할 작업이라면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