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4
작가 류한길은 1994년 결성되어 홍대 앞을 수놓았던 홍대앞 밴드 1세대 격의 '언니네 이발관'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했으며 '데이트리퍼'라는 이름으로 테크노 뮤직 활동을 진행했다.
정리 | 허대찬 앨리스온 에디터
간단하게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원래는 미대생이었습니다. 계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경원대 서양화과 거쳐 동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그 사이에 밴드활동도 잠깐 하고 '데이 트리퍼'라는 이름으로 두장 정도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그 사이 미술공부는 계속 해 왔고요. 그러다가 기존의 밴드 음악에 싫증이 나고 활동 자체에 대한 염증도 생겼고요, 데이트리퍼라는 일렉트로닉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느낀 것이 당시의 테크노 붐이 일었었잖아요. 그 붐에 대한 반발심이 컸어요. 바닥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 이러한 붐이 터지면 외부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러다 결국 기존에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러한 붐에 본격적인 활동 기반을 생성하고 뿌리를 내릴 때도 없이 유행이 끌고 가고 그 유행이 끝나면 이러한 격류에 기존에 활동하던 사람들은 뿌리가 뽑히죠. 그당시 활동하던 사람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어요. 그러한 지점들이 많아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전에 했던 음악작업들에 대한 회의도 들었고 잠깐 방황을 하면서 회사를 다녔죠. 그러다가 일본 뮤지션 4명이 와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음악같지는 않은데 음향이 아름답고. 너무 쇼크를 받았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생각이 콱 머리를 때리더라고요. 바로 집으로 와서 가지고 있던 악기 다 치워버리고, 나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지금까지 음악을 했는데. 방법을 모르겠는거에요.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금 조금씩 다시 준비를 해 가면서 지금같은 "모습"(주. 언어순화했습니다.)이 된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직접 이런 지반을 만들고 꾸려나가지 않으면 또 그런 유행에 휩쓸리고 뿌리뽑혀 나간다 라는 위기감이 너무 강해서 당시 그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친구들과 함께 '릴레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밴드 활동에서 지금의 작업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알려주세요. 이 부분에서 작가님 본인의 사운드에 대한 접근과 맥락이 드러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맨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악기라 불리우는 매체를 다뤘어요. 특히 샘플러니 신디사이저니 이러한 것을 다루었고.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음향적인 것을 다루잖아요. 당시 테크노 뮤지션으로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할 때 인터뷰를 했어요. 그 때 함께했던 다른 디제이분들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저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간이 흘렀는데 정작 그러한 발언을 하신 분들은 전자 악기 회사에서 내 놓은 기성품들과 프리셋만 가지고 음악을 만들고 있지 정말 세상의 모든 소리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 생각은 안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MD레코더를 들고 녹음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주변 소리를 녹음하고 다시 샘플링 후 리듬을 주고 작업을 했었죠. 그 때 녹음된 것만을 들었을 때는 소리들이 하나하나 재미있는 거에요. 악기의 소리가 아니지만 음악적이었고. 지하철이나 기차가 지나갈 때 소리들도 녹음해 놓고 보면 리드미컬했어요. 하지만 그것들을 컷 해서 컴퓨터나 샘플러에서 '헤이스트'해서 음악에 리듬구조에 배치를 하고 나니 녹음해서 들었던 음향의 좋은 점들이 사라져버리고 고만고만한 음악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이상하다 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 필드 레코딩이라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알게되었어요. 그들은 말그대로 특정 환경이나 조건에 들어가 소리를 녹음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녹음된 것이 하나의 음반처럼 제작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정 공간의 음향을 최대한 녹음을 해서 그 때 벌어진 음향적 사건들을 딱 잘라 그대로 내 놓은 거죠. 그랬을 때 그러한 행위나 결과물들이 하나의 작곡처럼 느껴졌고...제가 이런저런 재미있는 소리를 가지고 기존의 음악적 형식 안에 배치시켰을 때 느꼈던 상실감 같은 것이 오히려 지금같은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가진 음악에 대한 환멸이 굉장히 컸었어요. 마침 그때 이 4인조들이 공연을 했고 공연을 보러 갔다가 기존의 음악적 형식이 아니라 음향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살아있는 것을 보았던 거죠. 멜로리나 리듬 같은 요소가 아니라. 연주를 집중해서 하는데 음향만 가지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라는 점에 너무 충격을 받았죠. 그러면서 매체를 다루는 방식이나 작업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 다른 작업들을 바라보는 관점 모두 바뀐 거죠.
전자음악가, 노이즈 아티스트, 사운드 아티스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칭되시는데 특히 마음에 드시거나 나는 누구이다 라고 지칭하고 싶으신 단어가 있으신지요.
사실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것도 전 깨림칙해요. 사실 딱히 지칭할 말이 없으니 마지못해 쓰는 건데... 제가 스스로 사운드 아티스트라는 말을 쓴 적은 없었어요. 근데 갑자기 어느 순간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불리우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그냥 그런가보다 쓰는거죠 뭐. 작가라는 명칭에 대한 부담감도 커요. 작가라는 포지션에 대해 냉정한 잣대를 가지고 있어서인데 아직도 작가라고 부르기는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많아요. 저는 비영리 노동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고요. 근원을 놓고 따지자면 뮤지션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LIG공연 전에 LIG자체에서 진행한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 때 최수환씨, 권병준씨 저 세 사람이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인터뷰 진행자가 인터뷰를 진행하시면서 수환씨는 학자같고, 병준씨는 엔지니어같고, 저한테는 노조위원장 같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아 맞구나 했죠.
여기서 잠시, 영감을 받았던 그들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3인 일본인, 1인 독일인 구성의 그룹이었어요. 오리지널 팀으로서의 활동은 아니고 4명이 각자 개별적인 활동을 하는 뮤지션인데 즉흥협연을 하는 팀을 짰던 거에요. 오토모 요시히데(Yoshihide Otomo), 사치코 M(Sachiko M), 타쿠 우나미Taku Unami) , 악셀 되너(Axel Dorner)입니다. 그분들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고요. 이 세명의 일본인은 당시 유럽시장에 두각을 드러낸 사람들입니다.
'릴레이'라는 존재가 작가님에게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이 '릴레이'가 저라는 사람의 시작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릴레이를 통해 해외에 많이 알려졌고, 제가 릴레이를 기획하고 1년 즈음이 흘렀던 시점부터 사운드 아트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사운드 아트 라는 단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음악을 하자 라는 의식이 강했는데 정작 소비가 되는 것은 '사운드 아트'라는 이름 하에 였어요. 실상은 본의아니게 사운드 아티스트가 된 것이 저입니다.
상황이 웃기는데 아까 말씀드렸듯 자생적인 지반을 생성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미술쪽에서 사운드 아트라는 이름으로 큐레이터들이 접근하여 흥미를 보이고 접근하기 시작하니 불안한 거에요. 이사람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구나 하고요… 외부의 흐름때문에 연약한 기반이 박살이 났던 과거가 떠올라 사운드 아트 라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리서치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미술계에서 이해하는 사운드 아트라는 범위와는 다른 맥락에서의 사운드 아트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비판과 재비판을 받게 되었죠. 그것이 맞는 것 같고요. 아무튼 4년동안 좌충우돌하다가 릴레이가 저희 내부에서 방향성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죠. 매달 공연하고… 그러다 지친거죠. 돈도 없고.
작가님 언급 중에 작가 네트워크의 모습이 눈에 띄입니다. 다른 분야의 작가들의 그것과는 어느 정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문제의식을 가진 몇사람의 집합체가 형성이 되어서 서로를 도와서 끌고 나가는 것이 굉장한 힘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저희 소통의 기반이 되어주는 계기가 된 것이죠. 그 이후 이런 식의 집합체가 강력하게 움직일 때 무언가 창조적이고 좋은 의미에서의 활동과 결과물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중요한 요소다 라고 체감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저희가 릴레이를 하면서 열심히 외국작가들을 초청했어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작들을 진행하고 있는. 그러면서 그 작가들도 저희와 협연하면서 저희도 그들과 외국에 나가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서 소개도 되었죠. 어느나라를 가나 강력하지는 않아요. 그 대신에 작가들 간의 네트워크가 강하고 순수하게 작가들 간의 작업을 위해 교류를 합니다. 서로의 작업들을 인정해주고 관심있어하고 기회가 생기면 서로 끌어주고. 그 바람에 저희들이 외국에 초청받았던 것이고요. 활동 폭이 넓어졌습니다. 기존의 미술시스템 안에서 포트폴리오를 들고 가는 것 외에도 우리 스스로 공고히 해 나갈 수 있는 모습과 방법. 명백히 활동할 수 있고, 작업을 하며 연명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고 환경입니다. 이제는 그런 방법들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해나가며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도 작업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아트'라는 개념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접근하면서도 아차 싶었던 것이 미술계 내에서 말하는 '사운드 아트'에 대해 정형적으로 접근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사운드 아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미술계에서 이야기하는 개념과 '대비되는' 작가님의 언어에 대해서요.
네. (웃음) 제가 구축한 개념이라기보다는… 릴레이를 꾸려오면서 반복되는 실수와 경험을 해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같이 해 오면서 맥락에 대한 정의를 해 왔어요. 이 작업을 같이 해 온 홍철기 작가가 명확하게 정리한 것이 있어요.
홍철기 작가같은 경우 얼마전에 문지문화원 사이Saii에서 대담을 했는데 본인이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음향을 시간축을 중심으로 배치하는 것을 음악이라고 보고, 음향을 공간의 입장에서 배치하는 것을 사운드 아트라고 한다.' 라고 정리를 했어요. 저는 그 관점 자체에는 크게 동의를 하고 거기에 포함되는 내용인지 추가되는 내용인지 아직은 구분가지 않지만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음향을 주체의 위치로 옮겨버림으로써, 그러니까 시각 작품을 할 때 시각적 요소들을 작업의 주 요소로 놓고 서사를 형성하잖아요. 그 대신 음향을 주 요소로써 놓고 파생되는 것을 보았을 때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관점, 사운드를 중심으로 작품을 전개했을 때 드러나는 형식이라는 것이 음향만이 아니라 이제는 시각적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는 거에요. 이제는. 미디어 사회에서는. 다만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긴 한데 어떻게 우리 작가가 사운드를 주제로 놓고 진행을 했느냐와 기존 미술에서 보시던 시각적 요소, 컨셉추얼한 요소를 가지고 작업을 전개를 한 것과 어떻게 구분을 하느냐 하는 것이에요. 그 부분에 있어 저도 어렵고 막히긴 하는데 분명 그 차이의 지점이 있다는 거죠. 음향이라는 요소 자체가 기본적으로는 진동 현상이기 때문에 '소리'라는 문제 뿐 만이 아니라 '움직임'의 문제로도 전환이 가능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면 자주쓰는 예인데, - 작업에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스피커에 저주파를 흘리면 소리는 안나는데 진동은 시각적으로도 보이게 발생됩니다. 이 운동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거죠. 저주파의 주파수 대역을 알고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 그럼으로써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실험할 수 있는거죠. 저에게 있어 포괄적으로는 홍철기씨가 이야기한 두 가지 관점 이외에 음향을 주체의 위치로 옮김으로써 벌어지는 현상들도 사운드 아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관점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작가님 말씀을 들어보면 기존의 이해, 특히 미술계에서 이해하는 사운드 아트에 대한 거부감이 크신 것 같습니다.
지금의 미술계에서 사운드 아트를 이야기하면서 헷갈려하는 지점이 무엇인가 하면 여전히 사운드 아트라고 이야기 할 것과 음악으로 이야기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각중심적인 사고로 작품을 진행하면서 사운드를 소재적인 요소로 차용하는 수준에서의 모습을 사운드 아트라고 말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그 부분에서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쌈지에서 있었던 사운드 아트 전시가 있는데, 전 참가는 안했어요. 이야기가 논의되던 당시에 저도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많이 불안했어요. 이게 또 똑같이 되겠구나. 참가는 안하고 옆에서 리서치한 것에 대한 맥락만 이야기해주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시각 예술들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만 가지고 사운드 아트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사운드 아트에 대한 오해가 커졌고. 물론 이 얘기는 전체 시장이 아니라 미술계 내에서 소비되는 것에 대한 맥락이에요. 그리고 또 한가지 "짜증"이 났던 것은 그때 선별되었던 작가들 중에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포지션을 정하고 활동하는 작가가 지금 누가 있냐는 사실이에요. 참여했던 작가들 대부분은 사운드를 흥미거리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분들로 배치가 되었고... 작가들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접근으로 기획이 진행되고 작가군이 선별 되었다는 점이 못바땅했어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그러한 관점들은 작가님의 작업에서 잘 드러날 것 같습니다. 이번 LIG공연때의 작업도 그러한 맥락일 것 같아요.
LIG콘서트 때 했던 것 중 타자기 작업이 있어요. 이건 사실 사운드 아트라고 보기는 애매하긴 합니다만... 제가 블로그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사실 콘서트때 연주한다는 사실 보다는 집에서 글쓸 때의 느낌과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어요. 나는 글을 쓰는데 매체때문에 효과들이 발생해버리는 거죠. 대충은 예상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얘들이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효과를 줄지는 모르는거에요. 영문타자기였는데 QWERT이런 식으로 배치되어있잖아요. W를 치면 타자기 안에 있는 기계가 엉켜있는 구조 때문에 W를 치면 스네어 쪽에서 "드르르~" 하는 것이 있고 Q를 누르면 타자기가 "팍팍팍" 때려요. 글을 쓰는데 소리가 들려버리니까 내가 글을 쓰는 내용은 가고 들리는 소리와 작동하는 감각이 뒤섞입니다. 나중에는 글이 이상하게 되는데 Q를 누르면 어떤 소리가 나고. 글을 집중하며 쓰려고 하는데 Q를 누를 때마다 특정 소리가 발생하고 이 음향적 효과가 저에게 재미가 있으니까 자꾸 Q가 들어가는 단어를 쓰게 만듭니다. 글이 보면 Question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도 많은지.(웃음) 그런 식으로 그 글은 온전히 내가 쓴 글이냐 하는 지점이 재미있는거죠. 음향이 주는 영향을 깨닫고, 그리고 내가 사용한 매체와 그 기능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드러나는거죠. 그럼으로써 저는 글쓰는 버릇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죠. 즉 문학적 관점에서 전형적으로 서사적으로 글을 쓰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넓게 미디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그런 부분들이지, 인터렉티브, 뭐 이런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봐도요.
작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일반적인 작곡가 혹은 음악을 만들어 가는 분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시는지 한 예를 들어주세요.
대표작이 없는 관계로 딱 이거다 라고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버려진 사물의 전용이라는 주제가 있어요. 타자기니 시계 테옆같은 사물을 쓰는거죠. 미디어 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여러가지 매체로 분산되어있던 기계적 경험이 아이폰 등 컴퓨터의 기능으로 인해 집약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매체를 쓰는데 실상은 이 것이 어떻게 동작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거죠. 이것들은 '유저 프렌들리 인터페이스'에 굉장히 직관적인 것처럼 다가오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이 기기나 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해를 가지지 못하는 지점을 알게 됩니다. 즉 현재의 매체 환경은 제공되는 서비스에만 중독되게 만드는거죠. 제공되는 서비스는 자본이 제공해 주는 서비스이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죠. 웃긴 지점은 미디어 아티스트 2003~4년 미디어 아트 붐이 일어나던 시점에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미디어에 대한 관점은 그 수준이었어요. 나는 컴퓨터를 쓰지만 도구가 바뀐 것 뿐이다. 자기가 매체를 분리시켜 생각하는거죠. 나는 초월적인 존재이고 미디어는 도구에 불과하다라는 관점이었죠.
긴 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참고 웹페이지 :
Yoshihide Otomo, 大友良英
Sachiko M
Taku Unami
Axel Do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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