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2
필자는 학부를 막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 재직했던 시절, 디자인 리서치를 핑계로 떠났던 파리 여행에서 처음으로 듄 앤 라비(Dunne & Raby)의 작업을 접했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에서 열린 D.Day Modern Day Design의 증거인형(Evidence Dolls)이 그것이었다. 이 인형은 미혼 여성을 위한 것으로 애인들의 DNA 샘플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며, 그로 하여금 데이트 게임에서 유리한 지위에 오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상의 제품이었다. 무슨 핑계로든 파리에 가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결국 이 사건이 필자의 인생을 조금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글 | 김황 디자이너(hwang.kim@network.rca.ac.uk)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3년이 지난 후 필자는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이들을 다시 만나, 디자인에 대한 관점의 공통점을 발견하였으며 필자 작업의 이론적인 토대를 쌓는데 많은 영감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디자인을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해 비평적 디자인(Critical Design)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슬기와 민’의 최성민 교수가 2000년에 ‘헤르츠 이야기_ 탈물질 시대의 비평적 디자인’ 이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그 후 게리 허스트윗(Gary Hustwit)감독의 다큐멘터리인 ‘Objectified’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을 바탕으로 세계 디자인 시장에서는 높은 지위를 확보하였음에도 한국에서는 이들에 대한 자료를 찾기 힘들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필자가 영국 유학시절 가까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인 만큼, 본지의 지면을 빌려 비평적 디자인(Critical Design)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 해보기로 하겠다.
비평적 디자인은 추측에 의거한 디자인 제안들을 이용해 일상생활의 제품들에 가정과 예상의 목적들을 투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행위들은 태도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방법론이라고 하기보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입장을 취하며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비평적 디자인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들도 있다. 비평적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성립한 데에는 이러한 행위들을 수면위로 끌어 올리며, 논의나 토론을 이끌어 냄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긍정적인 디자인들과 반대되는 입장이며, 디자인 개념의 현상유지에 대한 도전이다. 사실 비평적 디자인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70년대 널리 유행했던 이탈리아의 급진적 디자인(Italian Radical Design)은 사회적인 가치와 디자인 이론들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평적 디자인은 이 자세를 바탕으로 현대사회에 맞게 각색 된 것이다. 90년대에는 개념적 디자인(conceptual design)이라는 운동이 있었는데, 이는 상업주의를 지양하고 마치 지금의 비평적 디자인처럼 존재했었다. 하지만 개념적 디자인은 가구와 제품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유행하였으며 보수적인 대량생산 체계 속에서 존재했다. 비평적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안토니 던(Anthony Dunne)의 책인 헤르츠 이야기(Hertzian Tales, 1999)와 디자인 르와르(Design Noir, 2001)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많은 이들에게 이용되고 있다.
비평적 디자인의 가장 큰 목적은 현대 디자인에게 화두를 던지는 것에 있다. 그 외에도 의식을 제고하고, 추정된 것들을 드러내고, 행동을 자극하고, 논쟁을 시작하게 하는 목적도 있다. 마치 문학과 영화와도 같은 지적인 유희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20세기 초와는 많이 달라졌음에도 디자인은 태동기인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평적 디자인은 21세기에 나타난 복잡한 기술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의 영향을 받은 디자인 변종 중 하나인 것이다. 비평적 디자인은 관객으로부터 딜레마를 경험하게 한다. ‘이 작업 또는 행위가 심각한 것인가?’ ‘이것은 진실인가? 허구인가? 비평적 디자인이 성공적 이려면 관객에게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황_ 당신의 작업들은 디자인이 기술에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추가하거나,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의 탄생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표방하고 있다. 디자인에게 어떤 다른 역할이 있나?
D&R_ 디자인은 우리에게 생각을 하게 하며, 산업에 대해서 더 많은 질문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색과 질문들이다. 사실 이 노력은 현대 산업 체계 속에서 가장 잉여적인 행위로 치부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디자인 전문가에게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조금 더 쪼개내어 일상으로부터 추출된 자원과 방법론에 대하여 표류하고 대안적인 생각들을 도출해 내어 산업사회에 제안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의 가장 큰 필요성은 사회와 산업으로 하여금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고민하고, 탐구하게 만든 후 이를 성취하게 하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황_ 런던의 과학 박물관(Science Museum)에 설치된 미래 에너지에 대한 당신의 작업은 흥미롭다. 사진의 시나리오는 깊은 과학적 리서치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수소 에너지 도시와 같은 우리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인분이 새로운 대안 에너지가 되고, 테디베어 모양을 한 ‘피 주머니’’라는 대안적인 자원을 이용해 사용할 수 있는 라디오 모듈 등이다. 그리고 교회, 학교 그리고 심지어 가정에서도 사람들은 그들만의 자생적인 자원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 왜 당신은 더욱 긍정적인 대안들을 보여주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나?
D&R_ 이 전시는 7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들을 주 관객으로 기획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이 보여줄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고 전시장에 입장한다. 하지만 사실 기술의 발전은 도덕적으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는 이 작업으로 아이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3가지 대표적인 기술의 영향력에 대하여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첫 번째는 수소에너지다. 우리는 여기서 아이들의 관점에서 시나리오를 설정해 경제 시스템 속에서의 에너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자기들의 용돈을 벌기 위해 일정량의 수소에너지를 직접 개발한다는 스토리다. 인분이 새로운 대안 에너지가 되어 더러움이 가치가 되는 문화적인 운동을 이끈 다(사람들이 보관하고 싶어 하거나, 하수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한 해방, 심지어 선물로 줄 수도 있다)는 가상 시나리오도 있었다. 또는, 현대 의학기술 분야에서는 자생력이 있는 로봇이나 제품(예를 들어 자신의 피를 이용해 가동시키는 심박 조율기)을 가능하게 하는 미생물 에너지 세포 개발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아이들이 윤리적인 측면을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생물의 피로 공산품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물론 아이들에게 흥미를 끌기 위해 약간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황_ 왜 당신은 디자인이 생명 공학, 인조 생물학, 미세 공학 등의 범주에 침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D&R_ 이 모든 기술은 독자적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우리 일상과 미래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이 행보에 발을 맞출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디자인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디자인이 미학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추상적인 컨셉과 유형, 의제들을 도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행위는 우리에게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먼저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이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그저 우리에게 다가오며 제품과 서비스는 인류의 진정한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경제, 그리고 기술적인 압박에 의해서 끌려 가게 될 것이다. 원래 인터렉션 디자인은 디지털과 문화의 접점에서 발생되었으며, 간단하게 컴퓨터라는 도구를 더욱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탄생하였다. 하지만 이제 어떠한 다른 형태의 인터렉션 디자인이 출몰할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되었다.
황_ 5년 전 당신은 ‘증거 인형’을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했었다. 이 플라스틱 제품은 미혼 여성들에게서 유전학이 얼마나 우리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이끌어 내었다. 이 작업에 대하여 조금 더 말해줄 수 있나?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자극제는 무엇이었나?
D&R _ 퐁피두 센터의 큐레이터인 발레리(Valerie Guillaume)는 비평적 디자인에 대한 전시를 퐁피두에서 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작업을 커미션하였다. 우리는 이미 BioLand에서부터 시작된 스케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시는 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생물학 연구소 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는데, 쟁점은 남성들이 DNA 조사를 거부할 수 있어 친자를 밝히는 조사에서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불평등한 것이다. 우리는 한 유명 영국 여배우의 실화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결별한 애인이 아이의 아버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해 그의 휴지통을 뒤져 DNA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피오나(Fiona Raby)는 이 과정을 좀더 간단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인형은 효과적으로 애인들의 DNA를 저장할 수 있게 고안되었다. 아마도 잘린 손톱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리라. 이는 보관되었다가, 이후 필요한 경우에 분석에 사용될 수 있다. 이 수집된 물건들은 작은, 중간, 큰 사이즈의 남성 성기모양의 서랍에 보관된다. 또 인형은 개인화 되어 각기 다른 애인을 대변할 수 있다.
황_ 여성들의 반응이 어떠했나, 이 독특한 작업을 환영하는 반응이었나?
D&R_ 이 프로젝트는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여성들과 과거의 애인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당히 사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많은 여성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 했다. 프로젝트는 그들이 이 제품을 원하거나 또는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이 프로젝트는 기술이 어떻게 하면 사랑과 로맨스 그리고 데이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이다.
황_ 당신은 약 6년간 영국왕립예술학교의 ‘디자인 인터렉션과(Design Interaction)’의 학장으로 학과를 이끌어왔다. 이 과의 이름은 원래 ‘인터렉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이었다. 이름을 바꾼 동기가 있는가?
D&R_ 인터렉션 디자인은 보통 전자제품이나 시스템의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인터렉션 디자인은 당신이 디자인 회사에 소속되기를 원하거나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기에 아주 좋은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하지만 당신이 산업간에 경계를 허물기를 원하거나,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을 찾기에는 그다지 좋은 배경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도 분명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하지만 이는 우리가 하는 행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인터렉션 디자인의 흥미로운 점은 ‘인터렉션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닌 ‘인터렉션’ 자체를 디자인 함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인터렉션 디자인을 디자인(Designing Interaction)하는 집단으로 정의하고자 했다. 이름을 변경한 가장 주된 목적은 인터렉션 디자인을 디지털과 전자공학에서 분리 시킴과 동시에 다른 기술들, 예를 들어 생명공학이나 미생물 공학등과 접합을 시도한 후 변종과 도전을 만들어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진보를 만들어 내고자 함에 있다.
우리의 목적은 기술의 발전에 집중하는 인터렉션 디자인의 조류를 흐리게 만들어, 융합과 가능성 그리고 다른 관점 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맥락과 방법론을 창조해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전혀 새로운 차원을 제공하는데 있다. 완벽하게 열린 공간 안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도전이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서 강한 잣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이 유동적이고 흥미로운 공간은 디자이너들에게 창조의 활력소를 준다.
황_ 최근의 작업은 어떤 것 들이 있는가?
D&R_ 우리는 얼마 전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Michael Anastassiades)와 함께 몇 개의 전자제품들을 제작했다. 이는 ‘취약한 개성(Fragile Personalities)’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같은 이야기를 전자제품의 영역으로 치환시킨 작업이다. 예전에 도쿄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나는 로봇과 개념적인 제품들을 제작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봇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는 로봇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4가지 형태(복종, 친밀, 독립, 동등)의 시나리오를 제안하고 논쟁을 했다.
로봇 1_ 이 로봇은 독립적이다. 자신의 삶을 살며 자신의 일을 한다. 이 로봇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함에 문제가 없으면, 우리는 사실 이 녀석을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아마도 집을 관리하는 컴퓨터 정도가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이상한 성질이 있는데, 바로 전자파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TV와 라디오가 켜질 때나 핸드폰에 전화가 올 때 이 녀석은 자동으로 방의 가장 조용한 지점으로 이동을 한다. 이 로봇은 원형의 링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주인은 그들에게 안전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의자를 방 중앙에 비치함으로써 로봇이 숨어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로봇 2_ 미래에는 많은 전자제품과 로봇이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제작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능력에 따라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로봇은 아주 신경이 예민해서, 누군가 방에 들어오면 자신의 많은 눈으로 불청객을 바라보며 분석하기 시작한다. 만약 사람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불안해 하고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아마도 집을 경비하는데 최적의 로봇이리라.
로봇 3_ 우리는 점점 더 디지털 데이터 저장매체에 삶을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가장 개인적인 비밀까지도 이 방법에 의존해 보관한다. 하지만 우리가 원할 때 언제나 이들에게 접촉할 수 있는가? 이 로봇은 보초병이다. 이것은 망막 스캔 기술을 이용해 누군가가 데이터에 접근하는지 판별한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언제나 이 로봇을 힐끔거림으로써 접촉을 시도하는데, 이 로봇은 아주 까다로워서 언제나 눈을 오랫동안 맞추기를 요구한다.
로봇 4_ 이 녀석은 아주 영리하지만 완성되지 않은 몸체 때문에 주인 없이는 이동하기 힘들다. 그래서 제작자는 이 로봇에게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냈는데, 하지만 지금도 그들의 언어에서 인간의 언어가 기원이 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우리는 음식을 부패시키는 미생물 원료 세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미래에는 로봇도 소화기관을 가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들을 재충전 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먹이를 주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가?
혹자는 이것들이 순수예술이 아니냐고 묻는다. 사실 비평적 디자인의 많은 방법론과 접근방식은 순수예술에서부터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비평적 디자인은 예술보다 일상에 더 귀를 기울인다. 일상은 비평적 디자인의 추진력과 불편함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방식이 너무 과도하다면 순수 예술이 될 수 있고, 너무 평범하면 소극적인 동화로 비추어 질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순수예술을 한다.’ 라고 말해버리는 것이 더욱 손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디자인으로 남기를 고집한다면, 이는 디자인도 예술도 아닌 경계에 서서 보는 이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비평적 디자인이 미래의 시나리오들에 적용될 수 있는가’이다. 또한 ‘사회적인 관계와 쟁점이 되는 기술과 접목되고, 이론적으로 완성되고 또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가’도 포함된다. 나는 이 질문들이 새로운 책의 결과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영국왕립예술학교 디자인 인터렉션과의 학장 안토니 듄과 피오나 래비에게 감사의 말씀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