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자인 시상식에서 한국 디자인 제품이 연이어 수상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비평적인 접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는 디자인이 가진 산업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디자인 전문 미술관이나 연구 기관이 부족하며, 일회적인 형식의 대형 박람회나 페스티벌 위주로 디자인이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새로운 전시에 대한 기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법으로 디자인을 전하는 큐레이터들이 있기에, 디자인 전시의 미래와 가능성에 엿볼 수 있게 한다.

갤러리팩토리는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미술과 디자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온 공간이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팅 사무소이기도 하다. 또한 독립 잡지를 출간하는 출판사이기도 하며,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제품을 개발, 판매하는 에디션을 선 보이기도 한다. 팩토리의 광범위한 활동 영역은 현대 예술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갤러리팩토리의 홍보라 디렉터는 그 중심에서 예술의 다양한 결을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갤러리팩토리

Jungle : 어떤 계기로 갤러리 팩토리(이하 팩토리)를 만들게 된 것인가요?

이곳을 ‘협업을 위한 그라운드’로 만들려고 했어요. 다양한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지속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려웠죠. 그중에 공간의 문제도 있었는데, 만약 내가 공간을 직접 만들면 원하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팩토리를 만들었습니다.

Jungle : 팩토리가 문을 연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하나의 예술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듯합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은 없었어요. 어렵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어려웠겠지만 재미있어서 했던 일이라,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죠.

Jungle : 그래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지 않으셨어요?

개인적인 계기로 만든 공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사회적인 의미를 생산하게 되더라고요.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이 공간이 없어져 버린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호흡했던 시간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이니까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Jungle : 팩토리의 디렉터로서 큐레이팅을 진행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미술 공간을 운영하니까, 큐레이터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큐레이터라고 부르기에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죠. 전체적인 전시 방향을 정하고, 구조 등을 살피는 일을 했지만, 개별 전시에 대해 기획하고, 작가를 선정하고 글을 쓰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넓게 보면 이것도 큐레이터의 역할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공간 운영자의 역할에 더 가까웠죠.

그러다 재작년부터 외부 전시 의뢰를 받아 큐레이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큐레이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큐레이터는 작가와 작품,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전시 외의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전시를 진행할 때 예산의 규모나 출처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에 따라 전시를 향유하는 대상이 달라지고, 전시의 주제나 참여 작가, 홍보 방식 모두 다 달라질 수 있죠. 이런 부분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큐레이팅에 집중하고 있어요.

Jungle : 큐레이터는 전시와 관련된 전반적인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데요. 앞서 행정적인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 이 말은 큐레이터의 역할이 조금 더 넓어지고 있다는 말일까요?

기존 큐레이터들이 역할이 넓어졌다기보다, 현재의 예술과 호흡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독립 큐레이터들이 흥미롭죠. 그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군을 구축해서 각각의 공간이나 이야기에 맞춰 반응해요. 그렇기에 미술의 언어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와 소통해야하는 현대예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최근 독립 큐레이터들의 특징을 보면 큐레이터인 동시에 번역가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경험이나 시각을 다양한 방면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죠. 저 역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팩토리 내에서도 팩토리 에디션, 독립잡지 버수스 출판, 외부 전시기획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Jungle : 방금 이야기하신 것처럼 팩토리에서는 갤러리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새롭게 시작한 팩토리 에디션의 진행 과정이 궁금합니다.

미술 시장에는 흔히 ‘잘 팔리는 작품’이라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있는데 작품을 판매라는 시스템을 통해 일반화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미술 시장에서 흔히 이뤄지는 작품을 사고파는 개념이 아니라, 팩토리의 다른 프로젝트로서 풀어보는 거죠. 그래서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디자인 제품과 사진 등으로 만들었어요.

아티스트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작년에 노르딕 데이 전시를 함께한 아누 투오미넨(Anu tuominen) 이라는 작가는 원래 설치 예술을 하는 분인데, 전시 때 함께 보내온 사진들이 인상적이라 저희가 먼저 제안했죠.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셨는데, 나중에는 촬영할 때 쓸 카메라는 어떤 것이 좋을지 물어보면서 어느새 즐기시더라고요.

아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팩토리 에디션을 하지 않았을 거에요.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데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팩토리를 시작했을 때 느꼈던 즐거움이 잊혀지지 않아서죠. 그리고 팩토리가 전시를 떠나서 물성을 갖고, 사람들과 호흡하게 되는구나.’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듯 다양하게 팩토리의 영역을 넓히고 싶었어요.

Jungle : 디자인 전시는 기존의 전시와 다른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인과 미술이 가진 사회적인 역할이나 기본적인 태도가 달라요. 작가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디자이너들은 다른 사람들의 니즈에 의해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죠.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보면 작품을 만든 계기가 궁금해지고 어떻게 제작한 것인지 호기심을 갖게 되지만, 디자인은 대부분 명쾌한 해답을 갖고 있는 편이기도 하고요.

Jungle : 한 인터뷰에서 디자인 전시를 진행하는 과정이 현대미술을 전시할 때보다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하며, 즐겁다고 했는데요. 이는 미술과 디자인이 갖고 있는 다른 특성 때문일까요?

디자인 전시의 경우 대개는 어떤 예산과 제안을 갖고 시작하는 부분이 많아서 진행 과정에서 예측 가능한 부분이 많아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명확함 때문에 즐거운 부분이 있죠. 반면 현대 미술의 경우에는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라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고,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은 편이에요. 그렇지만 그 예측 불가능한 면이 상대적으로 디자인 전시에 비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죠.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디자이너들은 각자 하는 일이 있고, 전시를 부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반면, 작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전시밖에 없으니 각자 전시를 대하는 태도부터 다른 것이죠.

그 때문에 디자이너들과 전시에서는 그룹 전시를 선호하고, 작가들과는 개인전을 주로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디자이너들과는 협업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고, 작가들과는 작가의 작업을 펼칠 수 있는 그라운드를 만들어 가려고 해요.

Jungle : 그렇다면 디자인 전시를 진행할 때 특히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디자인이 다른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전시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디자인 전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기발하거나 예쁜 제품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너무 정형적이잖아요? 이제까지 팩토리나 다른 곳에서 진행한 전시를 생각해보면 디자인 제품만 갖고 전시를 한다거나, 디자인 이슈가 중심이 되진 않아요. 대신 디자인의 공공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죠.
그래서 다각적인 방법으로 전시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디자인의 응용성을 보여주려고 해요.

Jungle : 한국에서는 디자인 전문 기관을 찾아볼 수 없으며, 비평적인 접근도 활발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디자인에 대한 비평도, 디자인 전시도 모두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다른 것이, 지금이야말로 디자인에 대한 이슈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때가 아닌가 하는 거에요. 좀 더 디자인에 대한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지난해 문화역 서울 284의 예술 감독을 역임하신 김성원 선생님의 베이스는 현대 미술이지만, 디자인적인 접근을 꾸준히 시도하셨죠. 도미노나 인문예술잡지 F와 같은 잡지들은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굳이 분류를 하자면 디자인적인 이슈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은 것 같고요.

디자인 전문 기관의 부재 역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문을 열게 되면 그 공간을 통해서 새롭게 형성되는 것들이 있을 거에요. MoMA에서 컬렉션 하기 전에는 디자인이 미술관의 컬렉션 대상은 아니었잖아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죠. 기관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 전문 큐레이터들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13 타이포 잔치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서 예술 감독으로 참여하는 슬기와민의 최성민 씨나 큐레이터인 김영나, 유지원 씨는 모두 디자이너들이죠. 디자인 작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들이 만드는 전시도 기대되고, 앞으로 그런 시도를 계속 만나볼 수 있을 듯 해요.

Jungle : 현재 어떤 전시를 기획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올해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 중의 하나가 ‘모빌리티((Mobility)’입니다. 서베이 전시를 하려고 하는데 자료를 모으거나 연구를 해서 그것을 전시로 보여주는 건 어떨까 해요. 경남 함양 상림 공원 프로젝트 등 외부 프로젝트 등을 할 예정인데, 이번에는 팩토리 안으로 외부 전시와 그 진행 과정을 담아볼 예정이에요.

Jungle : 앞으로 갤러리 팩토리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올 초 팩토리 2층을 새롭게 만들었어요. 기존의 전시 공간을 아카이브이자 사무실로 바꿨는데. 작가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그리고 그런 방법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지금처럼 계속 전시를 해나가고 싶어요.

갤러리팩토리:http://www.factory483.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