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스페이스 | 인터뷰

감에 죽고, 필에 사는 이들이 노트를 만들면?

2002-10-16

‘달력을 돈을 내고 사요?
‘달력은 공짜로 주는 거 아닌가요?’
연말연시, 새해에 필요한 달력은 업체에서 판촉물이나 부록쯤으로 대신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올 겨울 시내 대형서점과 인사동의 곳곳의 아트숍과 화랑에서는 2001년을 기다리는 이색캘린더 코너 가 꾸준한 성황을 누리고 있다. 최근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인해 기업들이 내년도 달력을 한정 수량만 제작하는 탓에 예년과 달리 달력을 쉽게 볼 수 없는 요즘, 찬바람 부는 달력 인심을 틈타 따뜻한 향기가 묻어나는 예술 작품 캘린더가 이례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이철수의 판화 달력을 인사동 화랑 속에서 살짝 들춰 보았다.

■ 이철수 약력


1954년 서울에서 태생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

1989년 독일과 스위스에서 개인전

80년대 조국 통일의 열망에 대한 표현을 중심으로 사회 현실과 정치
..............문제, 민중의 삶과 저항 등을 담은 작품으로 우리 시대 판화
..............운동의 선두주자이자 민족미술 운동이 낳은 탁월한 민중판화
..............가로 평가를 받음

90년대 禪畵(불교적 판화)에 주된 관심을 쏟아 심오한 영적 세계와
..............예술혼이 하나로 어우러진 절묘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음

2000년 현재 충북 제천의 박달재에서 3,000여 평의 농사를 지으면서
...............겸업화가로 활동중 .

판화가 이철수(47)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판화가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이철수는 한국 판화계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예로서 근엄한 제도권적인 미술가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작가다. 우선 그가 농사를 지으면서 겸업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과 또 하나, 서울에서 태어나 한때는 독서에 심취했던 문학 소년이였던 그가 군 제대 후 화가의 길을 택해 홀로 그림공부를 하고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전문적인 미술 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과 직업적인 미술인이 아니면서 홀로 독특한 입지를 세우고 독자적인 판화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국내 현대 판화계에서는 일례가 없는 독특한 이력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력뿐 아니라 작품세계 또한 남다르다. 80년대 이철수 등장 이전까지 판화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술 시장은 미술 애호가와 호사층의 요구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었다. 특히 판화계는 특수한 실험에 몰두하거나 투기심을 자극하는 장식품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 판화시장에서 이철수는 생활저변에서 얻어진 소재를 선택하여 현실 있는 표현으로 전통적인 판화와는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대중 속에 들어가기 위해 예술로의 승화라는 무거운 옷을 과감히 벗은 그의 작품을 보는 세인들은 그에게는 ‘민중판화가’라는 애칭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 작품 속에 문학성의 개입을 철저히 금기시 하고 있었던 것을 이철수는 종전의 전통적인 판화와는 다른 생활의 언어로 표현해 대중의 수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정글이 그를 만나러 인사동 ‘학고재’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여느 대중스타 못지 않은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의 산문집 혹은 작품집에 사인을 받는 사람들과 그를 찾아온 지인들로 전시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입구에 있는 방명록도 지방 곳곳에서 찾아온 팬들의 사랑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