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영 통신원 | 2006-07-20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책을 많이 읽는 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교양이나 철학, 그리고 지식과 정보 등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간접경험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사람이 디자이너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야 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에게 책은 여행만큼이나 중요한 간접경험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라는 매체의 역할이 커지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 그 책의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예전보다 독서를 할 시간적인 여유가 줄어든 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점에는 끊임없이 신간들이 나온다. 그것은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며 분명히 인터넷이 가지지 못하는 종이책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매력만으로는 시장에서 살아 남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소비자와 시장의 변화가 있게 되면 결국 상품도 바뀌게 된다. 아니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팔리기 때문이다. 그럼 출판 시장은 지금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으며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 것일까. 바로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좋은 전시회가 있었다.
취재 | 문주영 도쿄통신원 (mm00nn@naver.com)
지난 7월 5일부터 7월 8일까지 빅사이트에서 ‘도쿄국제북페어’ 가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세계 30여 개국에서 750여 개의 회사가 참가했고 입장자수만 5천 여명 이상이었던 사상최대의 전시회였다. 전시회장은 모두 7개의 영역으로 나뉘었는데, 인문∙사회과학도서전, 자연과학도서전, 편집∙프로덕션 도서전, 전자출판전, 학습서 & 교육소프트웨어전, 아동도서전, 그리고TIBF아트전으로 나뉘어졌다.
특히 이번 전시회부터 새로이 만들어진 TIBF 아트영역은 문예 부흥기의 유화부터 시작하여 일본 도자기, 현대 사진,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수많은 미술, 건축, 디자인 도서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매력적인 코너였다.
서적의 전시회뿐만 아니라 기간 중에 열린 무료 세미나 이벤트도 반응이 좋았는데 전자서적이나 ‘차세대 제작 XML에 의한 자동 자판에의 시스템화’, ‘구글 북 검색’ 등의 주제발표로, 출판인 뿐만 아니라 문화관계 종사자 누구에게라도 유익한 내용이 많아 모두 만석이었다고 한다.
자, 대략 전시회의 성격을 알았다면 이제부터 어떤 책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에 앞서 아쉽게도 해외서적이나 아트북 영역은 사진촬영이 불가능한 곳이 많았기에 충분히 싣지 못한 것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특히 최근에는 저출산율 때문에 한명의 아이를 황제처럼 키우는 황제교육 열풍이 심한데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만큼 대입에 대한 열정이 높지는 않지만 아동교육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그 중에서도 독서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일본인이 아니던가.
어린 시절부터 독서습관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서적이 개발되어 있다. 특히 캐릭터 천국인 일본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캐릭터를 활용한 서적들이 인기다. 디지털의 발달로 인해 멀티미디어를 통한 교육에 익숙한 요즘의 아이들은 컴퓨터보다 책을 멀리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것이 평소에 좋아하던 캐릭터나 만화주인공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내가 잘 알고 있는 캐릭터가 이야기하는 것과 낯선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느꼈지만 성공한 캐릭터의 힘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부스 중에서도 유독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부스는 다름아닌 산리오와 프뢰벨이었다.
사실 지금쯤 되면 헬로키티나 앙팡맨 캐릭터가 식상해 질 것도 같은데 그 인기는 여전하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해간다. 왜냐하면 비록 캐릭터는 식상할지 몰라도 그것을 응용한 상품은 갈수록 더 세련되고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만화 주인공이었던 것이 인형이 되고 책이 된다. 평면이었던 그림이 입체가 되고 소리가 나고 움직일 수 있게 되는 변화를 끊임없이 겪게 되는 것이다.
산리오와 프뢰벨 외에 인기를 누렸던 또 다른 곳은 poplar사의 부스였다. 40페이지 분량으로 ‘아기공룡’의 이야기를 담은 이 그림책은 몇 년 전부터 일본 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책이며 ‘문의 나라의 치코’ 라는 그림책은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만든 책인데 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자체도 재미가 있지만 너무 사실적이지도 않고 너무 추상적이지도 않은, 적당히 몽환적인 느낌의 일러스트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회사가 바로 고마북스이다. 여러 작가들의 캐릭턱와 일러스트를 담은 ‘BONte’ 는 매우 인기가 많았으며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카피바라’ 캐릭터는 고마북스의 출판을 통하여 또 한번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한자로 ‘물돼지(水豚)’라고 표기하는 이 캐릭터는 실존의 동물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숫자와 색을 사용하여 즐겁고 간단하게 점이나 운세를 볼 수 있도록 만든 운세북인 ‘카피바라운세’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여성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도 고마북스에는 눈 여겨 볼만한 책들이 많은데 1981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청소기인 Henry가 캐릭터로 나와 영국을 안내하는 ‘Henry in LONDON’이라는 제목의 책은 실제 청소기로 쓰이는 제품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갈수록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더 이상 필요한 정보를 책에서 찾을 필요가 없어졌고 그 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인 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의 역할이 정보전달의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책과 인터넷의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면 기존의 매체가 어떤 형태로든지 바뀌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책이 평범한 문자나 그림만으로 구성되어서는 새로운 매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욱이 현대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예전보다 문자를 기피한다. 문자를 일일이 곱씹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도 이유일테지만, 좀 더 빠른 속도로 정보를 흡수하고 좀더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하고 싶어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읽는 것 보다는 보고 만지는 것을 통하여 오감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다양한 팝업북으로 시선을 끌었던Tango books의 책들을 살펴보자. 책장을 넘기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공룡은 얼굴과 이빨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몇 번이고 넘겨보게 되고 동물 신체의 일부분을 비슷한 느낌의 헝겊으로 만들어 붙인 그림책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JAPAN ABCS’라는 책은 일본의 문화를 목판화 느낌의 일러스트로 표현하여 자칫 딱딱하고 따분할 것만 같은 한 나라의 문화를 쉽고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어른이 보기에도 재미있었다. 또한 뉴욕타임지의 ‘Best Illustrated Books’ 에도 선정되었던 ‘Encyclopedia Prehistorica Dinosaurs’ 도 빼놓을 수 없는 책 중의 하나이다.
한국 회사로 참가하여 이번 전시회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예원미디어의 책들도 그러한 트렌드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문자도를 이용한 정겨운 느낌의 일러스트는 글자만으로는 전달되기 힘든 한국적인 정서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었으며, 시계모양으로 디자인 된 ‘키다리 시계’ 는 사각형이라는 책의 형태를 과감히 탈피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동안 시계라는 사물을 좀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샀다. 아직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시계를 읽는 법을 가르치기에도 충분할 것 같은 책이다.
독특하게도 의학서적이면서 재치 있는 비주얼로 눈길을 끌었던 곳도 있었다. ‘Pharma Solutions Division’, ‘Tim Peters & Company Inc’, ‘Pharma Design Inc’의 책들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어플라이의 부스를 살펴보다 보면 의학서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게 된다.
환자들에게 병과 치료에 대한 설명을 위한 교육용으로 책을 제작하기 시작했던 이곳은 그래서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이해를 돕기 위한 쉬운 그림과 형태들로 책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다달이 불러오는 임산부의 배 크기에 맞도록 종이를 재단하여 만든 책은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올지에 대한 이해를 문자보다는 훨씬 빠르고 쉽게 전달 하고 있었으며 각각의 장기나 인체의 부분들을 사각형이 아닌 그것이 가진 원래의 형태로 만들어 놓아 이해도를 높이고 일반인들이 갖게 되는 의학서적에 대한 거부함을 줄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현재 서점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톤(artone)사의 책을 소개한다. 건물과 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책으로 모아 만든 ‘포토모(포토그래피와 모델의 합성어)의 길거리’ 라는 책은 페이지 마다 담긴 사진을 오려서 종이에 붙이면 하나의 입체적인 길을 만들 수 있다. 마치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 같은 2D의 책을 오려서 선을 따라 접고 자유롭게 배치하면 3D모형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으로도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책인데, 특히 그 중 한 페이지는 한국의 거리를 담은 풍경이어서 더욱 인상적이기도 했다.
같은 출판사의 책으로 요즘 한창 서점가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또 한 권의 책인 ‘슷카라’ 는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는 책이다. 한국의 음식이나 패션, 전통문화 등 한국에서도 쉽게 만나보기 힘들었던 알찬 내용의 책을 일본에서 만난다는 것은 반가움이었다.
물론 한류열풍의 영향도 없지는 않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들을 정갈한 일러스트로 담아낸 표지도 눈에 들어오는 이유 중 하나였고, 책 속의 사진이나 편집도 한국의 문화를 정갈하게 잘 담아내고 있었다. 이 출판사의 부스에서 책을 구입하면 ‘백세주’와 ‘공주비누’를 선물로 주던 이벤트도 한국인의 눈에는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는데 이미 과월호도 구하기 힘들만큼 인기가 높았다.
다음은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인 야마무라 코지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만들어 눈길을 끌었던 아따마야마(頭山)를 소개한다. 이 책은 유명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관심이 집중되기에 충분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00년대 초반 일본 출판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 종이가 있었는데 그 제작방법에 대한 문헌이 남아있지 않아 오랫동안 제작이 불가능했던 그 종이를 최근 어떤 출판가의 노력으로 거의 비슷하게 재현을 하게 되었다. 바로 그 종이를 사용하여 다색목판화로 그린 원화를 인쇄하고 제본과 북커버까지 일본전통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탄생한 책이 바로 아따마야마(頭山)였던 것이다.
지지미천의 질감과 비슷하다고 하여 ‘지지미종이’ 라고도 부르는 그 종이는 만져보면 정말 섬유처럼 부드러우면서 불규칙적인 주름이 들어있어 그림을 그리거나 인쇄를 했을 때 독특한 종이의 질감을 더욱 잘 살릴 수 있다. 비록 한 권의 값이 20여 만원 정도의 고가였지만 종이에서부터 커버까지 모두 장인들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그리 비싼 책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아마 표지일 것이다. 그것은 책의 내용만큼이나 제목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유인데 이번 전시회에서도 참신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표지가 많았다. 그 중 가장 먼저 둘러볼 것은 만화책인데 창영사의 ‘진(刃)’ 이라는 제목의 만화책은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일본색이 짙은 책으로 표지에서도 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소 과감하게 사용된 타이포와 원색적인 컬러들은 일본의 만화책임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다음으로는petit사의 부스를 볼 차례다. 아동들을 위한 그림책은 물론 사진, 인테리어, 디자인, 문화에 관련 된 폭넓은 영역의 서적을 출판하는 이곳은 책뿐만이 아니라 캐릭터 상품이나 문구, 우표관련 상품 등도 판매하고 있어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북유럽디자인에 관련된 서적들과 유럽의 마켓에 관련된 서적들은 일본인의 시각에 비추어진 유럽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책이기도 해 인기가 많다. 단행본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천을 이용한 양장커버와 독특한 타이포로 시선을 끌기도 하는데 특히 ‘새로운 교과서’ 시리즈는 하얀 바탕에 최소한의 텍스트만 고딕체로 넣어 놓아 오히려 가장 두드러지는 디자인이기도 했다. 물론 책의 제목이 ‘책’인 것도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이 출판사에서는 독특한 느낌의 재미있는 그림책들이 많았는데 책의 캐릭터를 가지고 상품화 시킨 제품들도 인기가 많았다.
다음으로는IBC Publishing의 부스를 살펴보자. 영어권 사람들에게 어렵고 복잡하기만 한 일본어와 한자를 그림으로 알기 쉽도록 표현한 한자책은 표지뿐만 아니라 내용도 보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책의 그래픽을 담당한 Michael Rowley의 창의적인 그림들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어느새 어렵던 글자가 그림으로 연상되어 쉽게 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blus interactions의 책들이다. 항공사진가에 의해 쓰여진 포토에세이집인 ‘구름 위의 산책’이라는 책은 사진으로는 잘 전달이 되지 않지만 제목에 맞게 비행기의 창 부분을 특수비닐로 가공하여 진짜 창으로 구름을 내다보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자매편으로 나온 ‘구름 위에서부터 온 편지’라는 책 역시 항공우편의 사진들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커버의 앞부분에 있는 주소를 적는 곳을 투명한 비닐로 처리하여 진짜 항공우편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표지에 심혈을 기울인 책을 소개한다. ‘Resonance’라는 제목의 이 책은 일년 동안의 유럽여행기를 담은 책으로 매우 독특한 커버를 자랑하고 있었다. 골판지를 여러 겹 포개고 그 사이에 책 크기만큼 틈을 내어 책을 볼 때 만 빼내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것은 마치 일본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닫이문과 같은 형식이었는데 유독 한국인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내부의 사진이나 편집도 재미있지만 독특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는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형태에 비해 표지의 평면적인 그래픽이 조금 부족해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다음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출판사 중의 하나였던 국서간행회(国書刊行会)의 책을 살펴볼 차례다. 표지만 봐도 탄성이 나오지 않는가? 크고 또렷한 눈매와 짙은 눈썹, 오똑한 코와 짧은 앞머리의 표지모델은 보는 순간 오드리햅번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레이유’ 라는 제목의 다른 책들 역시 의상은 기모노를 입고 있지만 모델의 얼굴은 한결같이 흑백영화의 바로 그 여배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 책은 1954년도의 책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이 1953년도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모델은 진짜 오드리햅번 일수도 아닐 수도 있으나 분명한 것은 당시 그녀가 ‘미의 여신’ 이었고 세계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1946년도에 발행된 책으로 1949년에 발행된 ‘히마와리(해바라기라는 뜻)” 라는 책과 함께 당시 여성들의 패션이나 헤어, 그리고 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을 소개하는 여성잡지였다. 말하자면 지금의 ‘논노’ 격인 셈이다. 1940년대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세련된 레이아웃과 편집은 물론이고 내용조차 오늘날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한번 더 놀랐다. 사진 대신 일러스트를 사용하거나 청바지대신 기모노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뒷면의 광고인데 어린이를 일러스트로 그려 넣어 만든 이 광고는 다름아닌 밀크캬라멜의 광고였다. 우리게에도 너무나 친숙한 추억 속의 바로 그 과자.
이번에는 그 보다 더 오래 전의 책을 한번 살펴보자. ‘집의 빛’ 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8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부스를 1920년대 일본 서점의 모습으로 디자인하여 책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싣고 있다는 이 책은 타겟이 되는 독자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이’ 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상의 모든 정보들을 80년이 넘도록 소개해 오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모델을 사용한 표지 디자인의 포맷이 어째서 8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해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책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대일본인쇄’ 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인쇄방식을 전시하고 있었고 어도비사는 ‘Creative Suite’, ‘In Design’, ‘Illustrato’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리고 책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던 곳으로 LaQ부스가 있었다. 일본의 레고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모두 9종류의 블록으로 원하는 모양은 무엇이라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꽃꽂이 작품이나 일본의 전통무사, 여성의 헤어밴드까지 구경할 수 있었고 그 가능성의 무한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라큐는 레고보다는 다소 얇고 작은 크기의 블록으로 곡선처리가 좀 더 자유로웠던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제 13회 도쿄국제북페어를 둘러보았다. 물론 기사에 다 싣지는 못했지만 전자책이나 모바일 북 등 종이 그 이상의 영역에 대한 전시도 많았다. 염두에 둘 것은 그것이 지식습득의 목적이든 아니든 컴퓨터처럼 앞으로 생겨날 어떤 새로운 매체와도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만 반면에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멀티미디어들이 등장해도 종이 책이 소멸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눈으로, 한 편으로는 책을 읽는 독자의 눈으로 이번 전시회를 열심히 둘러보고 나서 느낀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이것은 비단 아이들을 위한 책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아동서적에서는 만져보거나 붙여보거나 할 수 있는 장난감과 같은 책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어른들을 위한 책에서도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 책이 대세였다. 그림이 필요 없이 글만 빼곡한 책이라 하더라도 예전보다는 행간이 더 넓어지고 여백이 많아 졌다는 것은 책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자나 표범을 글이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호피무늬 천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쉽고 빠르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다소 거품경제가 빠진 일본만의 경우라기보다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우리가 책을 만들 때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멋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멋을 제공해야 한다. 가끔 서점가를 둘러보다 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불필요한 양장과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종이 때문에 결국 가격만 비싸진 책들을 보게 된다. 게다가 그것은 휴대조차 불편하기 때문에 결국 보기는 좋지만 먹기는 힘들어지는 떡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집에서 한가하게 독서를 할 만큼의 여유가 많지 않다. 전철로 이동하거나 자투리 시간을 내어 책을 읽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휴대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실용서라면 더욱 그렇다. 한 예로 일본의 전철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휴대가 편하고 가격이 싼 문고판 서적을 들고 다닌다.
효율적인 디자인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창출하는 것’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물론 아트북이나 특수성을 고려한 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감성에의 호소는 아마도 거의 모든 디자인에 있어서 요구되는 공통적인 사항일 것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사고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책을 원한다. 그래서 컴퓨터로 그려 낸 그림보다는 핸드페인팅을 선호하고 기계에 의해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책보다는 손으로 한 제본이나 한정판의 아트북을 원한다. 그것은 타이포나 편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손으로 쓴 타이틀이 많다는 것과 획일적인 그리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편집을 선호한다는 것도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성공한 캐릭터는 어떤 형태로 응용을 하더라도 절반의 성공확률을 가지고 시작한다. 어쩌면 캐릭터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어쨌던 그것은 출판시장에서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출판시장의 경우 반대로 책을 통해 성공한 캐릭터가 애니매이션이나 영화, 혹은 또다른 캐릭터 상품으로 발전하여 성공한 경우도 많다. 책과 식품이 같이 팔리는 묘한 현상은 캐릭터시장만이 가진 특징일지도 모른다. 주의할 것이 여기서 캐릭터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만화주인공이 아니라 사람일수도, 어떤 특정한 현상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몇 가지 사실들은 어쩌면 굳이 국제북페어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현상들이다. 냉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내용이 좋은 책은 디자인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잘 팔린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들이 가장 잘 안다. 그러나 좋은 내용의 글을 쓰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 디자이너의 몫이 아니지 않은가. 디자이너는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모두 좋은 책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좋은 책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관람해 보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내년에는 주말을 이용하여 가까운 도쿄북페어를 찾아보기 바란다. 일본은 한 해에 발행되는 출판물이 한국시장의 10배이니 분명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해외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가까운 대형서점을 둘러보는 습관만으로도 충분하다. 시대는 언제나 머리와 가슴이 모두 똑똑한 디자이너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