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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암스테르담의 숨겨진 명소, 타이포 갤러리

김준수 네덜란드 통신원 | 2007-07-03



필자는 처음 암스테르담에 왔을 때 관광 명소란 명소는 샅샅이 뒤져서 일주일간 여행했던 기억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여행 책자나 인터넷 정보로는 디자이너로서 가볼 만한 곳에 대한 소개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그 중에서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3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며 비영리로 갤러리를 운영 중인 유명한 타이포그래퍼 에왈드 스피커(Ewald Spieker)와 그가 운영하는 타이포 갤러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취재ㅣ김준수 네덜란드통신원 (info@joons.co.kr)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의 큰 흐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사의 일부를 조금 소개하고자 한다. 네덜란드는 1917년, 피에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데오 반 데스버그(Theo van Doesburg)가 주창하고, 게릿 리트벨트(Gerrit Rietveld)가 참여했던 ‘데 스틸 (De Stijl)’ 운동부터 시작해, 20세기 초의 네덜란드 폴 샤우테마(Paul Schuitema)는 라슬로 모호이 너지(Laszlo Moholy Nagy),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 등과 함께 신타이포그래피 운동을 주도했었다. 또한 핏 즈바르트(Piet Zwart)와 헤라르트 킬얀(Gerard Kiljan) 등은 시대에 있어 타이포와 그래픽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었다. 특히 네덜란드 타이포그래퍼와 디자이너들은 진실과 삶에 대한 타협 사이에서 자신들의 작업이 정치적, 현실적 수단이 되어가는 순간을 인식하고 많은 운동과 선언을 통해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을 비추곤 했었다.


대중문화의 주류가 복잡해진 현대에서 현 네덜란드 디자인은 하나의 큰 맥이 흐려 지지 않고 규칙적으로,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지켜지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 흐름이 현대 디자인 흐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데 스틸’의 선언에서는 개인을 과거로 정의하고, 새로운 의식은 우주를 향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전쟁의 불행은 이들 개인과 우주의 갈등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방법론 적으로 볼 때, 과거로 정의된 개인적 장식을 자제하고 모든 개인의 행복을 위해 보편성을 강조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갈등이 없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일괄적인 ‘유토피아(Utopia)’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기하학적인 추상성을 낳았고, 장식의 파괴, 유형의 패턴화 등을 발전시켰다.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중심이 되고 있는 중요한 국가 중에 한 곳, 네덜란드를 존재하게 한 큰 이유는 바로 합리주의라는 큰 획을 버리지 않고 매년 회고를 통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 의식 확대, 새로운 방향과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중요한 전개는 국가적 예술지원정책 속에 현재 5,000개가 넘는 개인 혹은 소규모 그룹 규모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존재하며 그들이 항상 시도하는 엉뚱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의 네덜란드 현대 그래픽 디자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에왈드 스피커는 현재 그러한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 중 큰 역할을 해왔고, 이 갤러리는 그의 타이포 작업으로 꾸며지고 있다. 그는 약 30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으며, 80년대 초반에는 암스테르담의 디자인 명문'게릿 릿트벨드 예술대학(gerrit rietveld academie)' 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모든 작업을 공개, 비 영리로 현재까지 이곳을 운영 중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 흐름을 가지고 그것의 배열, 긴장, 규칙 등이 단지 아름다움보다는,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힘쓰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타이포 그래퍼는 어떤 외향적 양식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중심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미 있는 글 자체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글 자체는 디자인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업실에서 본 그는 디지털 작업과 수작업을 겸하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수작업을 겸하는 이유에 대해 디지털 작업과 달리 수작업에는 우연적인 피드백이 확실히 드러나 그것을 기다리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디지털로 작업했을 때보다 아날로그로 작업 했을 때 과정상 느껴질 수 있는 색과 재질, 재료, 분위기, 조명, 심지어는 냄새와 습도 등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은 가끔 뜻하지 않은 결과물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에왈드 스피커는 우리모두에겐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작가가 작업 과정에 여유를 가지고 모든 감각을 깨워놓고 즐겨야 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 그는 ‘You’나 ‘I’ 라는 단어로 작업한 작품이 유난히 많다.


그는 약 30여 년 전 암스테르담 인쇄소에서 일할 당시, 인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배우며 일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금요일 오후, 모든 직원들에게 수동 활자 인쇄소는 이제 문을 닫으니 장비를 가져갈 사람이 있으면 모두 가져가라는 통보를 받았단다. (단, 그날 하루 동안 모두 가져가야만 한다는 조건으로) 다들 구식이 되어버린 장비를 가져갈 사람이 없었고, 또한 동료 직원들은 새로운 회사로 일자리를 찾아 하나 둘씩 떠났었다고 한다. 당시 타이포의 매력과 인쇄술에 흠뻑 젖어있던 그는 모든 장비와 활자를 챙겨서, 일일이 밤이 되도록 지금의 갤러리에 옮겼다고 회고했다. 그만큼 지금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장비들은 그에겐 일생의 보물인 셈이다.
 

결국 그의 꾸준한 작업은 주변에 알려졌고 방문객은 해마다 늘어났다. 그래서 그는 아예 갤러리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개명하고, 비영리로 모두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사실 이 지역은 갈수록 암스테르담의 가장 중요한 위치로 발전했고, 그 중 한 군데인 이 빌딩은 갈수록 값이 상승했고, 점점 집세에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빌딩주인과 주민들은 그가 원하는 순간까지 이 빌딩에서 무료로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고 한다.




에왈드 스피커를 찾아오는 한국인들에게 설명을 부탁한다는 말에 그는 “당연히 그럴 것” 이라는 호쾌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는 타이포에 관심 있고 방문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한다.
이번 타이포 갤러리 탐방을 통해 네덜란드의 근대와 현대 디자인 작업과 현대 디자이너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타이포 그래퍼들은 20세기 초 혼돈의 시기를 통해, 그들이 해왔던 일의 힘과 그리고 결과를 회고했고, 이를 단절하는 것이 아닌 그에 대한 성찰과 발전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현대 디자인을 주도하는 많은 디자이너를 배출해왔다. 타이포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에왈드 스피커의 작업에서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으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 또 디자이너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작업을 즐기면서 일하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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