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영 | 2007-09-04
지난 7월 5일부터 8일까지 도쿄국제전시장에서 제14 회 도쿄국제북페어가 열렸다. 이번 북페어는 세계 30 여 개국, 770여 개 회사가 출전, 관람 등록수가 54,370명에 달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도쿄북페어는 내용보다 전체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책이 많아 실체 없이 감성이나 느낌만을 앞세워 무분별하게 제작된 책이 많았다. 올해는 기획과 내용 모두 충실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전시장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동서 페어와 학습서 교육 소프트페어, 편집제작 프로덕션 페어 및 디지털 퍼블리싱 페어 등 총 7개 주제의 전문페어로 구성되었다.
취재ㅣ 문주영(도쿄 통신원)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프뢰벨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책들을 선보였다. 특히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한 노리모노에혼(탈것에 관한 그림책)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작가가 독자적으로 수집한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의 철도역사와 세계 각국의 철도에 대한 내용을 각각 1,2권에 나누어 실은 것이다.
제작에 앞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샀던 주제를 가지고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수채화나 유화로 그려진 부드럽고 정교한 그림들은 책의 가치를 높이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였다.
눈 여겨 볼 것은 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먼저 설문조사 등을 통하여 독자의 요구나 취향을 파악했던 것이 이미 검증된 관심을 통하여 절반이상의 확신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며 전시회에서 보였던 사람들의 관심이 그러한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프뢰벨 사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책은 ‘네코자카나(고양이물고기)’ 시리즈로 초판이 나온지 30여 년이 지난 책이 갑자기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재미있다. 책의 내용은 물고기를 먹으려던 고양이가 도리어 물고기에게 먹히며 ‘고양이물고기’가 되어버린 황당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로 작년부터 매출이 다시 늘기 시작한 비결은 다름아닌 캐릭터상품 때문이었다.
‘물고기에게 먹힌 고양이’는 그 발상 만으로도 재미있는 캐릭터가 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오랫동안 쌓아온 탄탄한 스토리까지 갖춘 상태였기에 봉제인형이나 낱말카드 등의 단순한 캐릭터 상품만으로도 책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준비 없이 새로운 어떤 것을 선보이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집중적으로 발전시킨 지혜가 엿보인다.
프뢰벨-http://www.froebel-kan.co.jp/
아동서나 그림책, 그리고·교육서를 중심으로 제작하는 이마진사는 유럽에서 베스트셀러로 관심을 모았던 알러지스(ologIes) 시리즈의 일본어판인 오로지즈 시리즈를 선보였다. 드래곤학, 이집트학, 마술학, 산타클로스학에 이어 최근에 발표된 해적학 일본어판은 특히 나침반이 들어간 멋진 양장표지가 돋보였는데 마치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모델이 연상되는 듯 했다.
내용 역시 어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롭지만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은 적절히 사용된 팝업이나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의 힘이 컸다.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부분을 다이나믹한 편집과 풍부한 이미지로 재미있게 디자인한 기획력이 돋보였다.
올해로 두 번째 참가인 (주)폴라오르비스홀딩스는 독특하게도 화장품회사이면서 출전한 경우이다. 이 회사의 경우 일본 내에서는 출판사업이나 미술관 등의 문화활동으로도 유명한 기업이며 특히 하코네의 폴라뮤지엄은 유명화가의 명화가 많아 한국에서도 알려진 명소이다.
이번 북페어에서는 폴라그룹이 추구하는「아름다움과 문화」,「화장 문화」등과 관련된 일반서, 아트, 단행본 등을 포함하여 폴라뮤지엄과 관련된 미술관 도록 등을 전시 판매했으며 반응은 매우 좋았다. 현재까지도 전국 순회 중인 전시「아름다움에의 도전-헤어 모드 메이크업 300년」과 관련된 출판물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일본의 역사와 서양의 역사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일본에서도 시세이도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메세나 활동을 하는 기업은 많지만 폴라처럼 오로지 화장품 하나와 관련된 연구와 문화활동을 하는 기업은 유일하다. 책을 보면 일반 출판사의 기획물에 비해 여유로운 자본과 관련분야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획된 출판물인 만큼 자료의 전문성이나 가치가 여느 논문에 비해 뒤지지 않으며 풍부한 이미지나 고급스러운 색감 역시 책의 가치를 매우 높이는데 한 몫 하고 있었다.
1921년에 창업한 오쿠노카루타는 일본식 카드놀이인 카루타(歌留多)전문점으로 현재는 교육적인 내용을 담은 학습도구로서의 기능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학습 보조교재나 고령자의 재활훈령용으로 제작한 다양한 종류의 카드를 선보였는데 그 중에는 고급 백화점에서 판매되며 문화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도 상당수 있었다.
카루타외에도 일본식 바둑이나 장기, 마작, 체스, 퍼즐 등 다양한 실내오락물을 제작하고 있는 회사이지만 이번 북페어에서는 주로 카드와 관련된 출판물을 선보였으며 그 중에서도 <스시바>는 인기가 많았다.
카드에는 생선의 이름이 들어가고 그에 따른 스시의 종류와 설명이 들어있다. 한자 공부를 하는 어린이들이나 스시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 혹은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에게 두루 인기가 많은 제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미지로 들어간 일러스트는 일본의 전통 패턴을 사용하여 고급스러우면서도 전통이 잘 드러나 있어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았다.
작년에 비해 해외부스의 참여는 좀더 활발했던 것 같다.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중국, 한국, 이란 등 다양한 국가에서 참여를 했으며 시간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프랑크푸르트가 부담스러운 아시아계의 국가들은 좀 더 효율적인 면을 고려해 차선책으로 도쿄북페어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먼저 네덜란드의 이미지북스는 4~5세 이하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굿나잇 씨리즈는 작은 크기에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돌출된 것, 움직이는 것, 부드러운 것, 동물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모아놓은 이곳의 베스트셀러. 일본어 판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 책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동물이 고무줄로 달려있어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인형을 읽어버릴 염려도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미지북스-http://www.imagebooks.nl
이미지북스가 낮은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촉각책을 선보였다면 영국의 탕고북스는 아동에서부터 좀더 높은 연령대까지를 타켓으로 하는 책들을 선보였다. 플랩북 형식의 교육서인
겉으로 봐서는 여느 책들과 차이가 없지만 책을 넘기면 1m가 넘는 포스터와 3차원 모형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 마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어떤 요소가 놀라움을 줄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러한 디테일은 단순히 재미나 흥미를 더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용의 전달을 도와 이해를 용이하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탕고북스-http://www.tangobooks.co.uk/
예술의 나라 스페인의 경우 부스를 통일하고 있는 붉은색이 시선을 끌었다. 15개 정도의 회사가 출전했으며 출판사나 작가별로 다양한 책들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볼로냐 국제북페어에서 매년 수상하는 그림책 원화콩쿨에서 입상한 일러스트북(Los tres deseos외)을 전시하여 반응이 좋았으며 수상 작가가 직접 참여하여 책에 대한 홍보와 안내 등을 맡은 점도 인상적이었다.
스페인부스-볼로냐 국제북페어 원화부문 수상작인
독일은 강렬한 붉은색에 대적이라도 하듯 화사한 연두색으로 시선을 끌었다. 책보다도 눈에 먼저 들어온 부스는 전시장 이라기보다 카페의 느낌이 더 강했을 만큼 밝고 세련된 디자인과 보기 쉽게 전시된 인터페이스가 눈길을 끌었다. 5500 평방미터에 달하는 넓은 부스는 마치 고급 북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독일은 독일 연방 경제 기술성과 사단법인 독일 경제 전람 상품 전시회 위원회의 협력으로 모두 17개의 회사가 참여했다. 책의 종류로는 픽션 및 논픽션, 경제, 교육·인간형성, 하우북, 만화, 잡지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신간들을 선보였다.
그 외에도 이란의 경우 이슬람국가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그림책과 코란 등을 선보였다. 유럽 부스에 비해 큰 관심을 사지는 못했지만 평소에 접하기 힘든 이슬람국가의 서적들과 손으로 정성스럽게 제본한 코란 등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제제본의 코란과 이란의 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서적들.
독특한 선물용품을 제작하고 있는 영국의 That company called ‘if’는 이번 북페어에 다양한 북악세사리들을 선보였다.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일로 새 책을 읽다 보면 종이가 길들여지지 않아 페이지가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책등이나 가운데를 손으로 누르면 해결이 되지만 제본이 약해지거나 책의 형태가 구겨지기도 한다. 그러한 고충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트래벌 북라이트>라는 이름의 LED조명은 각도를 조절하여 적절한 높이에서 책 아래만 비추어 주는 제품이다. 어둠 속에서도 옆 사람에게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제품으로 독서를 즐기는 여행자들을 위해 작고 가벼운 디자인으로 제작했으며 일상에 사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 귀여운 동물 모양으로 디자인 한 북마크 등은 독특한 디자인은 물론 작고 가벼워 부담이 없으면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이유로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한국 기업으로 참여한 굿윌솔루션은 전통적인 디자인의 북마크로 인기를 모았다. 한국의 전통 자수와 매듭 등을 소재로 고급스럽게 표현한 제품은 훌륭한 문화상품으로 손색이 없었고 나뭇잎을 소재로 한 자연물은 국적에 상관없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일본 전통문양을 이용한 북마크는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일본 시장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일본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어 남과 다른 독특한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매우 높은 관심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