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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중국의 아파트 공간 디자인

김은양 통신원 | 2008-03-04




얼마 전 나의 중국인 친구 에코는 이곳 상하이에서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중국은 전세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매월 임대료를 지출해야 하는데 상하이의 물가가 오르면서 집세도 점점 더 오르고 있어서 조그만 아파트라도 분양을 받는 편이 앞으로 투자 면에서도 이익이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기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서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고 싶단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자기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지 머릿속으로 그려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본 멋진 집 이라던지 잡지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공간의 이미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에코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인테리어 스케치 사진을 조각조각 붙여 모으고 판매처와 연락처를 정리하면서 새 아파트 꾸미기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취재 ㅣ 김은양 상하이 통신원



 


중국은 후분양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직접 아파트를 보고 자신이 분양 받을 아파트 동과 단지를 직접 확인한 뒤 대금을 치르고 수속을 끝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열쇠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에코와 함께 새 집 열쇠를 받아 처음으로 아파트를 찾았던 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은 아무런 마감도 하지 않고 시멘트 벽과 바닥을 그대로 드러낸 상태였다.  유리창도 달려 있지 않은 뻥 뚫린 커다란 창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쳤다. 나는 놀라서 "이게 무슨 집이냐,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 말도 안된다"고 난리를 쳤지만 에코는 아랑곳 하지 않고 줄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사이즈를 재거나 무언가를 그리기도 하더니 주방과 식당 사이 가로막힌 벽을 두드리며 이 벽은 헐어야겠어라고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에코와 나는 인테리어 마감재를 파는 상가에 함께 갔다.  백화점 보다 더 큰 규모의 상점 세 네 개 동이 붙어있는 엄청 커다란 규모였다. 사람들은 직접 자신의 집에 설치할 마감재를 고르기 때문에 상가는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에코는 스크랩 해 두었던 인테리어 사진을 보면서 바닥 마루, 유리창, 화장실 타일, 문짝, 욕조 등 세세한 것까지 모두 직접 골랐고 근처 인테리어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견적도 받고 공사계약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다.


몇 달간 계속되던 인테리어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던 날, 우리는 이케아(IKEA)에 갔다.  이케아는 스웨덴의 유명 인테리어 가구 브랜드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가구나 인테리어 용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DIY 전문 상점이다.  세계 곳곳에 수많은 지점이 있는데 그 중 상하이 이케아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했다. 
매장 입구에는 상품을 고르고 구매하는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이케아의 모든 가구는 철저할 만큼 DIY 시스템으로 제작 판매되고 있다.  매장 곳곳에 쇼핑리스트와 종이 줄자 그리고 너무 귀여운 이케아 몽당연필이 비치되어 있어서 디스플레이 된 상품들을 보고 상품 정보를 적어 보관 창고에서 직접 카트에 실어 계산을 한 뒤 조립이나 설치까지 고객 스스로 하도록 되어 있다.



안내에 따라 2층으로 바로 올라가자 다양한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는 쇼룸에 예쁜 상품들이 가득했다. 중국이라는 특수성과 품질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도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여러 가지 가구나 소품을 디스플레이 해놓은 매장에서는 디자이너의 모습이 직접 전시되어 상품에 대한 신뢰감을 높였다. 에코는 여기저기에서 사이즈를 재고 가격을 적고 가구의 이음새를 살피며 꼼꼼히 상품을 골랐는데 이곳에서는 에코의 그런 행동들이 유별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매장 곳곳에 마련된 설계 테이블에서 뭔가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집 구조를 그려가며 의논을 하거나 비치된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모두들 자신의 공간에 대해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돌아 2층의 쇼룸을 모두 구경하고 1층으로 내려가자 본격적인 매장이 나왔다. 주방, 욕실용품에서 아주 소소한 것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있었고 조명 기구도 광고나 잡지에서 봤던 세련된 상품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커튼이나 식탁보는 원단을 골라 원하는 사이즈로 구매할 수 있었고 책장이나 선반도 원하는 사이즈로 주문 제작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매장을 지나니 2층 쇼룸에서 봤던 가구가 쌓여있는 상품 보관 창고가 나왔다. 쇼룸에서 골랐던 상품의 정보에 따라 위치를 찾아 박스 포장되어있는 가구를 카트에 담도록 되어 있었다. 커다란 쇼룸의 가구들이 박스에 담겨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그 창고의 규모 또한 어마어마했다. 창고를 지나 계산대 앞에 서자 에코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쇼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스트만 꼼꼼하게 적혀 있을 뿐 가구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와 이케아에서 구입한 스탠드형 옷걸이를 조립하던 나는 손에 물집이 심하게 잡혀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공구도 없었고 처음 해 봐서 그런지 정말 힘들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에코는 나는 가구를 사야 했었는데 내가 어떻게 사서 조립까지 하겠니? 이케아 상품 창고 쪽에 상품을 주문 받아서 대신 구입해 주고, 집에 가져다 주고, 조립까지 해 주는 사람들 많아. 수고비만 조금 주면 돼라고 했다. 그래서 리스트만 적고 가구를 사지 않았던 것.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꾸미고 만들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그것들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나름대로 마련되어 있었다. 인테리어 공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업체 담당자와 함께 다니며 직접 자재를 고르면 업체는 그 재료를 가지고 설치 해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물론 홍콩에서 디자이너를 데려다가 집값에 맞먹는 디자인 비용을 지불하면서 최고급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에코의 집꾸미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공간을 직접 공들여 만드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마감되지 않은 아파트 공간이 나도 너무나 갖고 싶어졌다. 내가 원하는 마루를 깔고 원하는 가구를 맞추어 넣고 구조 또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정말 영화같이 잘 만들어 놓고 살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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