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 네덜란드통신원 | 2009-01-20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섬유 산업은 400년 이상 하향세를 걷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1950년대에 국가 총 인구대비 취업 비율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던 섬유 산업이 2000년에 들어서 4퍼센트 이하로 지속적인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사양산업으로 낙인 찍힐 법도 한데 왜 네덜란드에서는 섬유관련 박물관 개선 및 교육기관을 신설하고 문화 교육 방면으로 더욱 힘을 쏟고 있을까. 50년의 역사를 가진 텍스타일 뮤지엄 틸버그(Audax Textile Museum, Tilburg)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줄 지도 모른다.
취재ㅣ
최근 들어 섬유 산업 분야는 과학, 예술, 디자인, 건축 등 다른 분야와의 조화 및 연구를 통해 사업 분야를 늘리고 있는 추세다. 2007년 더치(Dutch) 패션디자인 재단이 최초로 설립되었고, 벤츠 사(Mercedes-Benz)의 지원으로 더치 패션디자인 어워드 등이 열리기도 했다. 사실, 표면적인 총 산업 성장 비율 대비 점유율 하락은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수치로 볼 때 네덜란드의 섬유 산업은 꾸준히 안정된 수익을 내고 있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크게 성장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하락하지도 않았다. 마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곳에서 마르지 않는 금광을 조용히 조금씩 파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러나 과거에 네덜란드 섬유 산업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약 1650년 이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세계 대전 이후 국가 사업 전향기를 겪었고 저임금 국가의 경쟁으로 하락을 거듭하기도 했다. 특히 1950~60년에는 네덜란드의 주요 섬유 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했고, 대부분의 공장들이 자금 문제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이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의복 및 양모 그리고 면 직물에서 떠오른 새로운 산업에 맞춤식 특화 생산으로 방향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약 40년 이상이 걸린 산업화 조율의 결과, 현재 안정화된 약 782개의 회사(2004년 기준)가 있고, 2만3천여 명이 순수 섬유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있는데, 성공적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은 주력사업을 열거하면 크게 특수 섬유사업, 카펫 및 바닥 시스템 산업, 집안 가재 용품 및 인테리어 관련 가구 및 장식 용품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텍스타일 뮤지엄, 틸버그의 의의
텍스타일 뮤지엄 틸버그는 네덜란드에서 위기를 겪은 섬유 산업의 문화적 정체성 보존과 동시에 사회∙교육적 기여를 통해 미래의 섬유 산업 인재 양성 및 분야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개관한지 약 50년의 역사를 지닌 틸버그는 끊임없는 발전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텍스타일 뮤지엄이다. 이 곳의 공동 작업실 및 실습 교육실인 텍스타일 랩(Textile lab)은 수십여 대의 첨단 섬유 장비들을 갖추고 있으며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텍스타일 뮤지엄의 신관이 개관했다. 카페테리어 및 각종 렌탈 사무실 등을 포함한 이곳은 이미 1년 이상 세계 곳곳의 아트 스쿨에서 워크샵을 예약해 놓은 상태이고,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강의와 작업 신청도 이어지고 있다. 텍스타일 뮤지엄을 통해 생산된 작품은 심사를 통해 텍스타일 숍에서 판매할 기회를 갖게 되며, 각종 산업 분야의 견학 신청 또한 끊이질 않아 새로운 사업으로의 기회를 도모하고 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정하게”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부정적인 전망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에 네덜란드는 심각했던 섬유 산업의 침체를 겪은 바 있다. 20세기 초 힘든 경제 상황 속에 섬유 관련 22,000여 명의 남녀 노동자들과 39개의 공장이, 자성하고 발전을 기약하자는 다짐으로 노사가 함께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정하게(Hete Harten, Koele Koppen)”. 라는 슬로건을 내건 바 있다. 일자리를 잃고, 임금을 못 받으면서도 관련 종사 산업에 대한 애착과 노력을 통해 자긍심을 보여준 결과, 주변 산업의 협력의 손길이 이어졌고, 틈새 산업을 향한 방향 전환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약 400여 년의 힘든 시련을 겪은 산업 역사와 이를 이겨나가는 성장 과정을 담은 텍스타일 뮤지엄 틸버그는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밝은 미래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