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 | 2009-08-04
세상에 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 스스로가 돈 버는 기계처럼 느껴질 때…. 그럴 때마다 들추어 보며 생동감과 순수함을 되살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림책이 아닐까. 물론 그림책도 하나의 상품이지만 단순한 상품이라기보다 이야기를 파는 것이기에 흥미롭다. 어린이만 그림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취향도 경험도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그림책을 찾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작품이며 작가의 의지와 독창성이 더욱 중요시 되는 매력적인 작업이다. 각양각색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담뿍 담아 놓은 그림책 가운데 미국의 칼드콧(The Caldecott) 수상작 몇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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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드콧 상은 미국 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 산하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협회(Association for Library Service to Children)가 선정하는 것으로 일러스트와 이야기 모두에서 예술성이 인정되는 작품에 수여한다. 칼드콧 메달(The Caldecott Medal)과 칼드콧 아너(The Caldecott Honor)로 나뉘는데 칼드콧 메달은 19세기 영국 일러스트레이터인 랜돌프 칼드콧(Randolph Caldecott)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1938년 도로시 라스롭(Dorothy P. Lathrop)의 『성경 내 동물들(Animals of the Bible)』이 처음 수상하였으며, ‘뉴버리 메달(Newbery Medal)’과 함께 미국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그림책 상으로 꼽힌다. 칼드콧 아너는 헬렌 딘 피쉬(Helen Dean Fish)의 이야기에 로버트 로슨(Robert Lawson)의 그림이 더해진 『포 앤 투웬티 블랙버즈(Four and Twenty Blackbirds)』가 첫 번째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칼드콧 상의 수상여부를 기준으로 그림책을 선택하기 때문에 이 상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들이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그림책 중의 하나다. 1963년 초판 발행된 이 그림책은 모리스 샌닥(Maurice Sendak)이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았으며, 1964년 칼드콧 메달을 수상했다.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Wild Thing’으로 불리는, 말썽쟁이 맥스가 스스로 ‘Wild Thing’을 찾아 항해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항해 끝에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을 한 ‘Wild Thing’들이 있는 곳에 당도한 맥스는 눈싸움으로 괴물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왕이 된다. ‘Wild Thing’들을 저녁도 굶기고 재우던 어느 날, 맥스는 외로움과 향수를 느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오른다. 집에 도착한 맥스가 아직도 따뜻한 저녁상을 발견하는 것으로 그림책은 끝이 난다. 『Where The Wild Things Are』은 괴물, 악몽, 노여움 등 그림책에서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다루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책 속에서 맥스는 항상 늑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맥스가 품고 있는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싶다. 또 선으로 명암을 넣는 크로스해칭(Crosshatching) 기법을 주로 사용해 거칠게 표현하고 어두운 톤의 색채를 사용했다. 이는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보편적인 스타일이라 볼 수 있겠지만 현대의 그림책에 비하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렇듯 다듬어지지 않고 어두운 분위기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은 성난 맥스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이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이 도깨비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Wild Thing’ 속 괴물도 미국인들에게 친근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듯 하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Where The Wild Things Are』에 대한 감상을 마칠까 한다. 샌닥은 처음 괴물이 아닌 말을 그려 넣으려고 했는데, 자신이 말을 잘 그릴 수 없음을 깨닫고 괴물로 고쳐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괴물 대신 말이 등장했다면 지금만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일러스트레이터 데이비드 위스너(David Wiesner)가 참여한 『Tuesday』는 1992년 칼드콧 메달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그림책은 ‘연 잎을 타고 나는 개구리’라는 재미있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화요일 저녁 8시경, 불가사의한 연못에서 연 잎을 타고 날아다니는 개구리가 목격된다. 이 하늘을 나는 개구리들은 마을을 돌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놀라게 하는 해프닝을 벌인다. 하늘을 날던 개구리들은 동틀 무렵이 되자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일제히 연못으로 뛰어들어간다. 날이 밝은 후 어지럽게 널브러진 연 잎을 혼란스럽게 바라보는 수사관 뒤로 수선스럽게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방송국 기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화요일
『Tuesday』은 일러스트레이션, 특히 그림책을 포함하여 모든 책에 관한 일러스트레이션의 모티프가 되는 ‘모든 그림은 이야기를 말한다’는 아이디어를 ‘그림만이 이야기를 말한다’로 극대화하고 있다. 각각의 시간을 표기하는 텍스트가 있을 뿐 한 컷, 한 컷의 일러스트가 이야기의 진행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 섬세한 수채화로 표현된 등장인물과 배경 등 소소한 디테일에 관심을 기울이면 작가의 재치와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 색을 여러 겹으로 겹쳐서 채색한 위스너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채색 과정만큼이나 오랜 시간 구상해 왔던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유화나 아크릴화에 비해 채도나 명도의 표현 범위에 한계가 있는 수채화로 작업했음에도 빛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물의 색채 변화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점과 원근에 의한 사물의 형태 변화를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림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으며, 이는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지루하지 않게 분할된 각각의 장과 책 전체에 걸친 다양한 구성 또한 이 그림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들이다.
1998년 칼드콧 메달을 수상한 이 그림책은 독일의 민담 ‘라푼젤’에 폴 젤린스키의 새로운 해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림책 한 권에 모두 담기에는 아까우리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긴 작업시간을 요하는 유화 작품들이 수록되어 현대적 해
그림책은 그저 어린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야기와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는 예술 작품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때문에 그림책은 어린이들은 물론, 자신만의 세계를 키워 온 어른들에게도 색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굳이 어떤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의 감흥을 다시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많은 것을 응집하고 있는 그림책, 더군다나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서 일러스트레이터가 새겨 놓은 노력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참고 자료 | Wikipedia, ALA Caldecott Medal & Honor Win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