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으로 소비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트렌드'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트렌드로 우리는 '빈티지'를 말 할 수 있습니다. 북유럽 디자인(스칸디나비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도 바로 빈티지일 것입니다.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 혹은 익숙한 아시아의 빈티지보다도 우리는 왜 유럽의, 그것도 특히나 생소할 수 있는 북유럽의 것에 점점 매료되고 있는 것일까요?

글, 사진│김영미 스웨덴 통신원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그 정답은 아마도 우리와는 다른 지구 반대편 정서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드문 아이템으로부터 오는 흥미,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역사와 의미, 그리고 도시적이고 세련된 명품 디자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 소비취향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악한 모조품 보다는 빈티지 진품을 선호하게 된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마치 보물 찾기를 할 때의 호기심을 느끼며 쇼핑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대형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때는 느낄 수 없는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북유럽의 빈티지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진 트렌드가 아닌 긴 역사를 가진 그들의 생활의 일부라는 점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빈티지라고 부르는 것들은 보통 100년 이내의 것들을 말하며 100년 이전의 것들은 '앤티크' 라고 칭합니다. 제가 이 곳 스웨덴에서 직접 느낀 빈티지란, 유행이나 개인의 성향문제가 아닌 그들의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북유럽 빈티지는 'Second hand shop' 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재활용을 위한 샵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가게'와 그 컨셉을 같이 하는데요. (하지만 그 시장의 크기나 역사, 소비층의 범위에서 볼 때, 우리나라보다 몇 단계는 앞선 모습일 것입니다.) 이 곳에서 'Second hand shop' 이란, 우리나라 황학동이나 신설동처럼 의도적으로 형성된 지역의 샵과는 달리 어느 동네에나 한 두 군데는 있는 철물점이나 카페와 같이 가벼운 느낌에서 시작합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빈티지 샵들 중에는 특정 단체에서 운영되는 제법 규모가 있는 샵도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갖가지 컨셉의 소규모 세컨샵들도 있습니다.

벼룩시장처럼 주말에만 열리는 빈티지 시장도 있고, 봄기운이 완연한 5월이면 마요나(Majorna)라고 하는 지역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길가에 누구나 돗자리를 깔고 참가도 하고 마음껏 구경도 할 수 있는 거대한 'Second hand day & street'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Second hand market'은 아주 사소한 엽서 한 장에서부터 옷, 주방용품 혹은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용된 물건들이 쉽게 버려지지 않는 긴 순환의 역사를 가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역사는 국민들로 하여금 너무도 당연하게 Used stuff에 대한 인식을 헌것, 낡은 것이 아닌 물건들 스스로 긴 생명과 역사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기회로 바꾸어 주었고 그것들에 세월이 더해져 지금 우리가 말하는 빈티지 제품들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기꺼이 이곳에 내어주고(기부의 형식으로 돈은 받지 않습니다) 또 자연스럽게 낮은 가격에 본인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구입했다고 부끄러워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실용주의적인 국민성은 생활에서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그들의 디자인으로 흘러 들어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곳의 빈티지와 현대의 디자인제품들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는 못 할 것입니다. 옛 것을 촌스러운 것이나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 이들의 예쁜 마음은 아마도 그대로 디자인에 영향을 주어 현재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빈티지샵에서 보는 흔히 말하는 '옛날의 것'과 현대의 디자인이 어쩐지 그 끝이 서로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실용성에 기반을 둔 이케아의 디자인이 그러하고, 더욱 크게 보면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북유럽 지역의 디자인 모두가 방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난 디자인이 헌 것으로 치부되지 않고 계속 소비되며 또한 현대의 디자인에 반영되기도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적어도 디자인, 혹은 더욱 크게 창조적인 분야에서 일 하는 우리가 옛 것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한 가지 예로 최근에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칸켄백'(Kanken Bag) 또한 이곳에서는 연예인이 메고 나왔다는 이유로 잠시 유행하는 브랜드가 아닌, 1978년부터 만들어져 한번도 그 디자인이 달라진 적이 없는 가방입니다(색깔의 추가만 있었다고 합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도 낡고 헤질 때까지 모두 메고 다니는 최고의 실용백으로 그 위치가 탄탄한 그야말로 국민가방이지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한 기간 폭발적인 소비가 이루어지다가 유행이 끝나버릴 테지만 그 이후에도 이곳에서는 여전히 꾸준하게 국민가방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문득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도의 디자인이 현재에도 변함없이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어느 정도 위치에 두고 있을까요?  우리만의 디자인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품, 그래픽, 의상 등 디자인이 반영될 수 있는 그 어느 분야에서도 우리가 잘 디자인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제품들은 항상 그 역사가 깁니다. 디자이너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옳은 디자인의 방향은 한때를 위한 유행보다는 더 큰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하나의 사조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빈티지에서 시작해 현대 스칸디나비아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활 속에서 쌓여온 그들만의 역사는 우리가 특별한 것, 혹은 하나밖에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콜렉터로서의 애착보다 더 큰 것을 말 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