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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파리에서 만난 스탠리 큐브릭

박원 | 2011-06-13




완벽한 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회고전이 파리에 왔다. 영화광들의 성지 파리 시네마테크에는 전설적인 감독을 추억하기 위해 벌써 7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고, 그의 작품을 기리는 특별 상영회는 전에 모두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관심이 대단하다. 독일영화박물관이 주관하는 회고전은 2004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베를린(2005), 멜버른(2006), 겐트(2006-2007), 취리히(2007), 로마(2007-2008) 그리고 파리를 거치며 전세계를 순회하고 있다.


 


, 사진│ 박원 프랑스 통신원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특별히 2개의 층에 걸쳐 이루어진 전시장에는 그의 지인들에 의해 공개된 시나리오, 편지, 무대장치, 사전조사자료, 현장사진, 의상 그리고 ‘나폴레옹’(1968-1973) 비롯한 미완성 작에 대한 자료까지 모두 한곳에 모였다. 회고전과 함께 6 1일부터 프랑스 전역의 영화관에서는 그의 대표작들을 특별 상영하고 있으며, 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올해 개봉 40주년을 맞은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기념 상영이 열렸다.


 


큐브릭은 시각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모험을 감독이다. 매일 영화관을 들락거리며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보고자 노력했던 그는 앞선 것을 답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멜리에스가 최초의 공상과학 영화 ‘달나라 여행’(Le Voyage dans la Lune, 1902)에서 네모난 화면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며 시작된 특수효과의 계보는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 이어지며 영화사에 오래도록 기록될 하나의 전설을 만든다. 영화는 무엇보다 시각매체임에 주목하였던 큐브릭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배우들과 작업을 하였지만 항상 많은 디자이너와 특수효과 기술자를 고용하였다.




당시는 컴퓨터 그래픽이 없었고, 아직 아폴로호의 착륙은 준비단계이었기에 영화 우주는 오직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그의 상상으로만 재현된다. 그는 무중력 세계의 설득력 있는 연출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섬세하게 설계하였고, 기술적 한계는 창의적인 눈속임으로 해결하였다. 가장 완벽한 화면 전환인 동시에 가장 함축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장 시간을 뛰어넘은 장면으로 기록되는 하늘로 던져진 동물 뼈를 우주선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이어받는 장면이나, ‘슬릿스캔’(slit-scan) 기법의 발견으로 100% 수작업으로 완성된 스타게이트 장면은 신선한 시각적 충격인 동시에 새로운 영화적 표준의 탄생이었다.




불가능한 퍼즐을 풀고, 단순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그의 삶의 자극인 동시에 창작 활동의 기본이 된다. 원하는 것이 제대로 완성될 때까지 추진하는 작업 방식은 그에게 신경질적인 은둔자라는 별명을 붙여줬지만, 그만큼 영화 장면들은 따로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고 치밀하다. 이는 그가 영화에 대한 인터뷰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로 설명해야 것이 있다면 이미 영화에 넣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큐브릭의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영화 상상은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000 이후의 세계는 다행히도 ‘시계태엽 오렌지’ 내복 같은 하얀 콤비네이션을 입고 살지는 않지만, 리차드 세라의 철판조각만큼이나 어색하게 서있는 모노리스(monolith) 스마트폰을 연상시키는 표면이나 아르네 야콥센과 올리비에 무르그의 모던한 디자인 제품은 그의 예상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음을 말해준다. 시대의 얼굴이 되는 활자의 선택에 있어서도 큐브릭은 탁월했다. 우디 앨런의 ‘윈저’(Windsor)처럼 큐브릭 브랜드의 상징이 ‘푸투라’(Futura) 타이틀 시퀀스는 2000년대 이후 타이포그래피의 유행과도 맞닿아있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영화감독이 되기 이전에 그는 사진작가였다. 사진은 체스와 더불어 그가 평생에 걸쳐 열정을 바친 분야로, 공부에 흥미가 없는 호기심 많은 아들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선물해준 취미이다. 종종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원에서 체스 내기로 일주일에 20-30달러씩 벌어 보태기도 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진가의 눈’이 없었다면 영화감독이 없었을 것이고, 영화를 혼자 만든다면 어떤 것보다 사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7 무렵 미국의 ‘룩’(Look) 잡지에서 최연소 사진기자로 활동한다. 게리 위노그랜드를 연상케 하는 그의 전후 대도시의 길거리 사진들은 후에 화면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된다.




큐브릭은 그의 영화에서 마치 가운데 가르마를 좌우 대칭이 되는 화면구성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완벽한 균형의 안정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어긋남이 모여 사건으로 번져가는 그의 서사 구조에 어울리는 시각적 퍼즐 역할을 한다. ‘샤이닝’(Shining, 1980) 이런 대칭구조의 균형 위에서 조금씩 쌓여가는 불안정한 심리의 균열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폭력으로 점철된 과거와 마주하고 있는 오버룩 호텔의 현재는 마주보는 거울 무한히 반복되는 풍경처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현실과 환상, 정상과 광기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져 버린다. 대니의 눈앞에 나타나는, 다이안 아버스의 ‘일란성 쌍둥이’(Identical twins, Roselle, NJ, 1967) 닮은, 쌍둥이 자매 귀신은 이런 영화 반복과 대칭 구조를 상기시키는 열쇠 역할을 한다.




암호 같은 redrum’이라는 글씨가 거울에 비쳐 murder’로 바뀌는 순간, 이야기는 단번에 거울 광기의 세계로 쏟아져 버린다. 영화의 중심에 위치한 미로는 위기에 몰린 모자(母子) ‘독 안의 쥐’로 만드는 장소인 동시에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나가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잭에게 쫓기던 대니는 위의 발자국을 지우고 숨는 장면에서 희미해진 세계 사이를 분명히 구분지음으로써 다시 거울 반대편 이성의 세계로 돌아가는 기회를 만든다.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를 완성시키는 것은 화면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음악의 적절한 배치에 있다. 어떤 지표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상대적인 움직임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우주선의 움직임은 스트라우스의 왈츠로 하나의 우아한 춤으로 재탄생 되었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 보이는 화면을 변화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채우는 리게티(Gyorgy Ligeti) 합창, 원폭 장면에 맞춰 ‘좋은 다시 만나리라’ 노래하는 베라 (Vera Lynn) 음성, 착한 아이가 되었다는 알렉스의 발칙한 상상 뒤로 이어지는 경쾌한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제가 등은 영화 아이러니를 하나의 완벽한 희극으로 마무리 짓는다.


 


큐브릭은 71 인생을 통틀어 16개의 작품만을 완성하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다큐멘터리부터 코미디, 블록버스터, 공포, 공상과학영화, 고전물 까지 알차다. 그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들은 수없이 많지만 특히 강한 시각적 파급효과를 가진 마지막 4편의 영화는 대중 문화와 만나면서 하나의 문화적 문법으로 자리잡는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포스터 이미지를 차용한 미셸 공드리의 화이트 스트라입스 뮤직비디오나 최근 개봉한 ‘엔터 보이드‘(Enter the void)에서 그의 영향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양적으로 단연 최고봉은 여전히 수많은 패러디를 계속 생산해 내고 있는, 큐브릭 스스로도 팬이었다는, 만화 ‘심슨’(The Simpsons)이다. 심슨시리즈의 감독 그로닝은 할로윈 스페셜에서 ‘샤이닝’ 전체를 패러디하며 큐브릭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회고전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그의 영화를 여러 마니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극장 안은 그의 작품을 다시 스크린에서 만날 있다는 즐거운 흥분으로 가득 있었다. 서로 자신만의 큐브릭 관련 추억들을 나누느라 떠들썩하였다. ‘로리타’(Lolita, 1962) 상영에서는 어떤 할머니의 지나친 추억 공유 소동으로 상영이 도중에 중단되는 일도 있었지만, 영화관은 이런 서로 상관 없는 사람들이 2시간 동안 하나에 대해 자유롭게 웃고 떠들 있는 열린 공간이라 더욱 특별하다. 전세계를 순회하는 전시인만큼 2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시네마떼크에서도 그의 회고전이 열려 한국의 큐브릭 팬들도 모여 그에 대한 추억을 나눌 있길 기대해 본다.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


3. 23~7. 31


시네마떼크 프랑세즈, 파리


www.cinemathequ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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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릭과 그래픽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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