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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그래피티, 골목을 물들이다

송수연 (Amy Song)│멜버른 | 2012-10-17



멜버른 시내는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구석구석 흥미로운 골목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곳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래피티들은 자칫 어둡고, 심심해 보일 수 있는 골목길을 관광 명소와 예술 활동의 캔버스로 전환시킨다.

글, 사진│Amy Song(mailto.asong@gmail.com)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방황하던 멜버른의 청소년들은 뉴욕 그래피티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주로 시내 중심부와 기차길, 전찻길 등을 이용하여 활동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래피티’는 점차 대중들에게 예술형태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마커나 스프레이 등으로 아티스트의 닉네임을 표시하는, 그림보다는 글씨에 가까운 ‘테깅(tagging)’은 낙서, 반달리즘 (vandalism)의 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서서히 그 수가 줄어들었다.



그래피티가 예술활동인지 공공장소를 더럽히는 시각적 공해인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2004년 세계 최초로 여러 나라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한 ‘멜버른 스텐실 페스티벌 (Melbourne Stencil Festival)’이 개최되었을 정도로 그래피티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인식은 상당히 열려있는 편이다.

멜버른 스텐실 페스티벌(Melbourne Stencil Festival)은 연중행사로 보통 열흘 동안 전시회, 라이브 그래피티 공연, 아티스트 토크, 워크숍, 마스터 클래스, 스트리트 아트 관련 영상물 상영 등으로 구성된다. 처음 행사를 시작한 이래로 150여 명의 아티스트들의 800여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차별적인 그래피티 활동을 막기 위해 멜버른 구청은 그래피티를 그릴 수 있는 구역을 지정해 놓고, 허가를 받은 아티스트들에 한하여 그래피티를 그릴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보통 불법적으로 몰래 행해져 온 그래피티 활동이기에, 원래 성격과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지정구역 안에서는 아티스트들도 불안감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공공장소에 특히 건물주가 원치 않는 곳에 생기는 그래피티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건물주들은 구청에 자기 건물에 그래피티를 허용해도 된다는 문서를 제출해 등록할 수 있으며, 이미 건물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제거할지, 보존할지에 대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래피티로 유명한 도시인만큼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화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뱅크시(Banksy)가 멜버른에 남기고 간 ‘낙하산을 타고 있는 쥐(Parachuting Rat)’라는 작품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구청 청소부에 의해 몇 년 전 손상되었다가, 올해 5월 연관 공사 시 파이프가 그 그림의 가운데를 관통하여 완전히 손상되었던 일이 있다. 2008년 뱅크시(Banksy)의 작품이 그려진 영국의 벽 하나가 이베이(eBay) 사이트에서 £208,000에 팔렸던 것을 생각하면 건물 주인과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비록 뱅크시(Banksy)의 그래피티가 허가받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 가치를 인정해 구청에서는 특별히 이 그래피티를 제거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구청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그래피티들을 미리 보호하는 정책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그 가치가 인정되는 그래피티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우거나 덧씌워져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그래피티 본연의 수명이자 특성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였다.
멜버른 그래피티 거리에는 뱅크시(Banksy) 뿐만 아니라 독일, 캐나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해외 곳곳에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멜버른에 와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영국의 디페이스(D*FACE), 프랑스의 파피(Fafi), 미국의 어보브(Above) 등이 있다. 




시내에서 유명한 그래피티 거리는 호지어 레인(Hosier Lane), 러틀렛지 레인(Rutledge Lane), 칼레도니안 레인(Caledonian Lane), 유니언 레인(Union Lane), 센터 플레이스(Centre Place), 덕보드 플레이스(Duckboard Place), ACDC 레인(ACDC Lane)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호지어 레인(Hosier Lane)은 멜버른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피티 거리로, 소지섭과 임수정이 출연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촬영장소로 등장해 한국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사 거리’ 알려진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멜버른 사회에 한동안 충격을 안겨 주었던 성범죄 피해자 Jill Meagher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Rest in Peace Jill’이라고 쓰여진 약 20미터 정도 길이의 그래피티가 호지어 레인(Hosier Lane)에 등장해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예전에 비하면 그래피티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실제로도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이나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그래피티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중과 아티스트들이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공유하면서, 공공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호주에서 ‘그래피티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성장한 멜버른의 그래피티 문화가 발전해 나가는 모습과 그 방향에 대해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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