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ㅣ 도쿄 통신원 | 2013-12-05
일본특유의 순정만화의 특징을 그대로 지닌 뮤지컬 다카라즈카 가극을 알고 있는가. 소녀들이 만든 듯한 순정만화 감성은 동성의 여성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붐을 일었다,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에게 소녀감성을 자극함과 동시에 독창적 예술관을 100년의 세월동안 굳건히 지킨 극장,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펼쳐지는 극의 특징을 살펴봤다.
글 ㅣ Jun 도쿄 통신원(de_sugnq@naver.com)
다카라즈카 극단은 모든 배우가 여성으로 구성된다. 보통 현대 뮤지컬은 배우의 성(性)과 상관 없는 구성을 보여주는 반면, 다카라즈카의 극은 오직 여성으로만 구성되며, 배우는 극단 오디션을 통해 매 작품마다 선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카라즈카음악학교’라는 전문시설의 학생들이 데뷔하여 수련 후 그 안에서 이뤄지는 오디션으로 남자역할의 주인공와 여자역할의 주인공으로 나뉘어 각각 조별로 꽃조, 눈조 등으로 나뉘어 연기한다. 즉, 극의 전개에서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존재하지만 둘 다 여성이 연기를 하는 것이다.
다카라즈카가극에는 또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극의 배경이 유럽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물론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간판은 브로드웨이에서 호평을 이끌어 내 다카라즈카가극의 붐을 만들어낸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나폴레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주로 알려진 극이다.
극의 특징으로는 거대한 혁명과 전쟁등의 커다란 운명적 파도에 휩쓸린 연인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재이지 않은가? 바로 8-90년대 순정만화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던 스토리이다. 다카라즈카 가극의 내면은 철저히 계산된 실사판 순정만화 가극이다. 그 때문일까. 공연 관람객의 90%이상이 여성팬이다. 주인공을 맡은 여성스타의 팬덤이 여성이 주체인 점은 매우 독특한데, 이는 동성을 이성적 감정의 몰입을 할 수 없는 남자와 다르게 여성들은 순정만화 속에서 구축되는 판타지에 쉽게 감정이입을 보여줬던 여성들의 심리 속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이는 베르사유의 장미 제1권의 대사에서도 나타난다. 페르젠 백작이나 앙드레와 같은 남자인 인물이 등장하는 씬에서 오스칼의 등장에 술렁이는 여심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남자들은 잠자리를 할 수 없는 대상을 두고 설레거나 연애감정을 품을 수 없는데 반해, 여자들은 그런것은 개의치 않고 묘한 동경과 애정이 뒤섞인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것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여성들에게 잠재된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해석은 옳지 않다. 아름다운 주체에 관한 동경과 감정적 동요라는 것이 남성에 비해 매우 자유롭다는 뜻이다. 상대가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개의치 않고 단지 상대가 아름답고 멋진 사람인지를 두고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로잘린도 오스칼을 향한 막연한 동경과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 왜 남자가 아니냐며 원망을 하는 독백 장면에서도 역시 혼인관계나 연애관계의 선상에는 이성을 두고 생각을 하되, 상대가 동성이어도 매력을 느낀다는 점을 들어낸다. 이런 순정만화와 소녀취향의 상관관계에서 흥행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다카라즈카 가극의 특징이다.
왜 여성 멤버로 구성이 되는지에 대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소녀들은 다카라즈카음악학교라는 예술학교에 입학하면 동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피나는 수련 끝에 다카라즈카 가극의 배우로 데뷔를 한다. 즉 이성과의 공연은 훈련과정부터 불편함의 연속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그때문에 여성들로 구성된 가극단이 됐다. 그들은 음악과 춤, 연기와 관련된 능력 이외에 그 어떤 사회적 계급기준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즉, 학벌 출신등 모든 사회적인 조건에서 분리된 다카라즈카 가극만의 기준하에 절대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그녀들을 일컬어 마치 파리지엔을 일컫는 말처럼 ‘다카라젠느’라고 표현한다.
다카라즈카와는 반대로 남성들로만 구성된 가극이 있다. 바로 일본 전통극 ‘가부키’ 다. 가부키는 앞서 언급한 다카라즈카의 두 가지 특성에서 봤을때, 모두 상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구성원은 모두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철저히 음악을 지휘하고 연주하는 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성이다. 극 안의 여, 남주인공 모두 남성으로, 배우들은 사회적인 계급기준에 철저히 준하는 세습된 배우계보를 가지고 있다.
즉 과거의 왕권과 같은 세습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가부키 가문’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각 성씨를 가진 배우가 대대로 이름을 물려받는다. 예를들어, OOO 3대 등의 이름을 가진다. 실제 혈연관계는 물론이고 어렸을 때부터 입문을 하기 위해서는 양자로서 그 가문에 들어가 수양을 쌓는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갑자기 가부키 배우가 되는 경우는 근래에는 단 한명만이었다. 그는 명배우로 연극,영화, 드라마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던 이였으나, 가무키 명문가 수장의 혼외자식으로 실제로는 가부키가문의 대를 이은 가문 안의 사람이라는 공식에 따르는 셈이다. 그러나 그의 공연은 쉽지 않았다. 가부키 가극은 어릴때부터 무대에 서면서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탓에 갑자기 핏줄이라는 명목으로 대를 이어 그 틈에 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있을법한 특별한 예였다. 그를 제외하고는 세습되는 가문안에서 배우로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무대에 선다.
그리고 극은 정통 일본 방식에 따르며, 사용하는 언어 역시 옛 일본어를 사용한다. 전통극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좁은 무대 안에서 많은 장면변환을 보여주지만, 기모노를 입고 좁은 보폭으로 걸으며 진행되는 극보다는 독특한 무대분장과 복장으로 해외에서는 동양적 아름다움과 독특한 심미성으로 더욱 많이 알려진 것이 가부키다.
다카라즈카 가극은 오페라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철저히 계산된 연기, 동선, 음악, 배경미술 등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무대장치는 수십번 그 모습을 바꾸는데. 단순한 라이팅이나, 빛의 형태 이외에 거대한 스케일 만큼 확실한 변화를 가지고 효과적인 시각, 청각적 즐거움을 준다. 특히 또렷하게 들리는 배우들의 발성, 노랫말, 반주의 호흡은 엄지를 치켜세우게 된다. 노래는 노랫말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일반 뮤지컬보다 명확한 대사 전달력은 필수다. 이는 노래를 들려주되, 노래 안에 담긴 가사말을 리듬감있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역시 이 시청각 엔터테이먼트가 매우 충실히 실현되고 있다는 점 이다. 형식은 전통을 잇되, 이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매우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고 볼거리는 화려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다카라즈카 가극이 6-70년대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 여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카라즈카 가극이 다루고 있는 극들의 배경이 중세유럽, 서양의 격동기임을 감안하면, 본진이라고 볼 수 있는 1965년 프랑스 파리 초청공연이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유럽도시로는 두번째였으며, 파리 공연은 그로부터 통산 33회에 이른다.
다카라즈카는 1964 년 50주년 기념으로 건축된 다카라즈카 대극장을 시작으로, 3년후에 해외 뮤지컬 상연을 도입한다. 이 시기는 동경올림픽으로 시끌벅적하던 일본의 성장기 이기도 했다. 이듬해 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예술제 대상을 수상하며,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에도 진출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동남아시아권의 인기도 높아졌다. 이는 곧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카라즈카 가극의 전성기는 준비된 오랜세월을 거쳐 1974년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통해 완성된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도 2012년에40주년을 맞았다. 원작자 이케다 리요코의 동명 원작만화가 연재된 시점으로부터 40주년이기도 하지만,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심볼 ‘오스칼’이라는 캐릭터에서도 들어나듯,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담긴 캐릭터의 결은 다카라즈카 가극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스칼과 대비되는 여성상이자 극의 중심축이기도 한 인물 ‘마리 앙투와네뜨’ 또한 매우 여성적이며, 가녀린 외모와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로 순정만화에 걸맞게 미화되어 그려진다. 착안과정에 있어서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태생적으로 다카라즈카 가극을 모티브로 하고 얻은 아이디어로 쓴 극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카라즈카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배경에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정치적 장치를 극의 갈등과 위기 요소로 활용한다는 점도 들 수 있는데,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이야기의 틀에서도 이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프랑스 시민혁명’이다. 혁명의 발단이 되는 ‘목걸이 사건’은 마리 앙투와네뜨가 가졌던 사치의 이미지 그리고 그녀가 베르사이유의 붉은 장미로 군림한 시간들로 인해 쌓인 프랑스 시민들의 국모를 향한 원망의 화살이 이 프랑스 혁명의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극 중 비운의 연인인 오스칼, 앙드레는 가공의 인물이고, 마리 앙투와네뜨, 페르젠 백작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마리 앙투와네뜨의 실제 성격이나 행동보다 조금 단정한 모습의 여인을 연기하고 있지만, 전체적 이야기의 줄기는 역사 속의 사실과 동일하다. 페르젠 백작과의 일화도 일정부분 사실로 추정되는 점을 두고 보면, 순정만화에서는 보기 드문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매우 정치적이며 사실적인 배경을 이야기의 큰 줄기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의 만화 시장에 일대 붐을 일어난 이유는 이런 다카라즈카 가극이 가진 독특하고 개성 강한 매력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 담았고 또 그 인기에 힘입어 가극으로 그 이슈를 이어간 전무후무한 작품이기에 오래토록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40주년을 기점으로 많은 전시회 기념회등의 행사를 하고 있다. 이케다 리요코 자신이 얼마나 이 작품을 사랑하는지는 몸소 베르사유의 장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패러디하는 등 여전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내년 다카라즈카 가극은 100주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기념극으로 내년 3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준비하고 있다.
참고공연
다카라즈카 가극단 공연 베르사이유의 장미 2013
참고서적
이케다리요코의 세계=베르사이유의 장미, 오스칼 별의 순간
즈카독서(나카모토 치아키作)
베르사이유의 장미 원작만화 완전판 전권
다카라즈카류 세계
다카라즈카가극단을 만든 비지니스 천재
참고링크
http://kageki.hankyu.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