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현 | 2003-08-09
크라이슬러 빌딩이며 자유의 여신상이며.., 모두 뉴욕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건물들과 유산들이지만, 어딘가 달라보이는 이곳. 이것은 뉴욕의 광경이 아니다. 작년 추수감사절 연휴, 라스베가스로 여행 갔을때 구입했던 "New York, New York" 이라는 호텔/ 카지노의 전경이 담긴 엽서이다. 외부의 모습뿐 아니라, 마치 뉴욕의 한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내부 모습 역시 장관이였다. 바닥의 벽돌 하나하나부터 천장까지, 적절한 조명과 채색으로써 호텔 내부에 있으면서도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는듯한 착각을 충분히 일으킬만하다.
비단 "뉴욕, 뉴욕"뿐이 아니라 라스베가스에는 여러개의 테마호텔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Venetian", 알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는 "Aladin", 프랑스, 파리의 전경을 담은 "Paris" 등..., 세계 각국의 명소들을 옮겨 놓은듯한, 혹은 이집트 유적지나 고대 그리스 신전을 재현한 거대하고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몇 블럭을 사이에 두고 뉴욕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베니스로, 현재에서 과거로 오가는 기분은 참으로 오묘했다.
미국내 학업 일정엔 봄방학 (Spring Break) 기간이 1주일 가량 있어서,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까지도 캔쿤이나 마이에미등의 휴양지로, 다른 여러 대도시로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봄방학을 앞둔 시기에는 서로 다른 계획들로 교실안이 시끄러워지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던 어느 수업시간 담당 교수가 자신은 매해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간다는 말과 함께, 라스베가스를 최고의 도시로 추천하며 그곳의 매력을 설명했다. 유럽의 도시로 낭만적인 여행을 하고싶은 사람에게도, 고대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근사하고 수준 높은 여러 음식을 원 없이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도 라스베가스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절한 도시라는 견해와, 각양각색의 다양한 테마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여러 분야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만끽하는 것 만으로도,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써 가치 있을만한 여행이 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까지만해도 내게 있어서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는,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들르는 그저 화려하기만 한 도시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때였던지라 그 교수의 말을 그리 관심있게 듣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후에는 라스베가스가 그리 단순한 도시만은 아님을 실감했다. 그 교수의 말대로, 각각의 테마에 맞게 디자인된 다양한 호텔들은 단순한 눈요기 수준을 넘어, 순간적으로 착각을 일으키기에도 충분할만큼 치밀하고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호텔, "New York, New York"에서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고, "Venetian"에서는 강가에 앉아 바이올린 소리에 맞추어 와인에라도 취해야 할 듯한 기분에 젖고, "Paris"에서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밤새 예술을 논하기라도 해야할 듯한 기분에 취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몇 블럭을 사이에 두고 실제처럼 꾸며진 호텔 내부에서의 기분이였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봐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이 흥미로운 경험은, 어쩌면 우리가 맞이하게될 미래상과도 연관 있게 생각되어 더욱 오래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각 도시간의 이동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빨라지고 그 방법들도 보다 용이해진다면, 하루에도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생활하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평범한 사람들의 실생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때쯤이면 세계 전역의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디자인 하는 일이,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감당해야할 업무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톰 클린코스타인 (Tom Klinkowstein)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갖고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만이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는 말이고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일 것이나, 과연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하며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은, 디자인 분야에 국한되게 공부하고 생각하며 연구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흔히들 테크놀러지를 최대한 사용한 디자인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디자인은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생각해 버리기도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라 함은, 말 그대로 미래의 시대상을 미루어 짐작하고 그것에 적합한 디자인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학원 졸업 논문의 담당 교수이기도 했으며, 해외디자이너 인터뷰 기사를 통해 정글에도 소개한바 있는 톰 클린코스타인 (Tom Klinkowstein) 역시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늘 강조하며 교육하는,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이다. 그는 미국뿐만이 아닌 세계 여러나라에서 다양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의 워크샵 프로젝트의 한가지로 "Horizon Project"이라고 칭해지는 워크샵이 있다. 그것은 기술이나 산업의 발달을 근거로하여 미래의 디자인을 상상해본 후,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의 워크샵이다. 예를 들어, Flat Pannel Video Display가 벽이나 바닥재등, 건축 자재의 일부로 쓰일 수 있을만큼 저렴해진 미래의 상황을 생각해보며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들은 어떠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놓을 수 있을지, 과거 (미래의 시점으로 볼 때의 현재)의 디자인 (건축, 디스플레이, 인테리어, 그래픽... 등등)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등을 상상해보며 새로운 형식의 디자인을 생각해보는 방식이다.
또한 그는, 'Multimedia-optioned communication' 이라고 칭하며, 세계 여러나라의 다양한 문화와 습관에 적절한, 여러 방법의 미디어가 선택되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얘기하며, 앞으로는 지금까지 시각을 위주로 발전되어온 커뮤니케이션 방식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부연하여, 이스탄불에서는 사람의 체취로써, 일본의 젊은이들은 소리내어 말하는 것보다 핸드폰 등을 이용한 텍스트로써의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함을 예로 들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나 웹디자이너 등을 모두 포함한 의미로써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란 명칭이 쓰이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이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시각만이 아닌 다양한 감각을 위주로 디자인 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톰 클린코스타인 (Tom Klinkowstein)이 언급했듯, 디자이너 스스로가 시각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 머물것이 아니라, 산업디자이너 (Industrial Designer), 혹은 인종/ 민속학자 (ethnographer), 인류학자 (anthropologist)일 수 있도록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할것이다.
다시 라스베가스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Las Vegas Boulevard" 선상에 가까이 늘어서있는 테마 호텔들을 돌아보며,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뉴욕으로, 그리스 신전에서 베니스로, 베니스에서 파리로 넘나드는 듯했던 그 기분은, 어쩌면 디자이너로써의 우리가 미리부터 머리속으로 연습해야할 과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학창시절 같이 공부하던 한 친구가 졸업 전에 혼자서 조그맣게 회사를 차리고 경험했던 일들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 회사를 차리고 웹사이트를 그럴싸하게 가동하니, 미국 중부의 들어보지도 못한 소도시에서도 클라이언트가 나서는 것이다. 그 친구는 동영상이며 사운드, 플래시 무비며 프로그래밍까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으며, 화려하게 디자인하기를 즐겨하는 친구였으나, 소도시에서 로컬로 자리잡고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나 작업하는 중에는, 그 지역 분위기에 맞게 적절하게 절제하며 디자인 하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한다는 것, 디자이너로써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단순히 테크놀러지를 함양하는 것만은 아닐것이다. 미래지향적으로 사고하고, 편협하지 않게 생각하며 공부하는 일이 우선시 될때, 디자이너 스스로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