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현 | 2003-08-09
얼마전 신문기사에서, 스타벅스에서 올 가을부터 크레딧카드를 발행한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많은 생각을 해본다. 스타벅스에서 발행하는 크레딧카드는, 일정 금액을 미리 적립하였다가 스토어에서 바로 쓸 수 있게하는 프리페이드 카드 (prepaid card)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서 스타벅스 커피 매니아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을것이다. 프리페이드 카드 형식의 스타벅스 카드는 2001년 11월에 선보인바 있으며, 매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임은 물론, 대형 백화점등에서 주로 발행하는 기프트 카드(Gift Card)와 같은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한다. 이번 크레딧카드의 발행 이전에도 일반인들을 상대로한 긍정적인 여론 조사의 결과가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언젠가 스타벅스카드는 뉴요커라면 대부분 가지고있는 메트로카드 (Metro card: 뉴욕 시내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교통카드)와 비슷한 역활을 하게되는건 아닐런지. 실제로도 출근길 스타벅스에 들러, 취향에 맞는 커피한잔을 사서 마시는 것은, 영화 You've Got Mail에서의 주인공들에게처럼 이미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많은듯하다.
시에틀의 작은 커피숍에서 전세계에 약 6,000개의 스타벅스 체인망을 거느린 거대기업으로 자리잡기까지의 성공 스토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여느 평범한 일개의 커피숍에 머무를 수 있었던 스타벅스였지만, 1982년부터 마케팅을 담당했던 Howard Schultz에 의해 스타벅스는 다시 태어난다. Schultz가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그곳의 에스프레소바(espresso bar) 문화에서 힌트를 얻게되어 1985년 새로운 컨셉의 스타벅스를 세우게되며, 그 이후 새로운 아이템의 개발, 자체 브랜드 CD생산, 미국내 대형 서점인 반스엔노블 (Barnes & Noble)등과의 협력 관계등을 성사시키며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거듭한다.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스타벅스에서의 기억 또한 꽤 크게 자리잡고 있다. 처음 스타벅스를 접하게 된것은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는 대형 서점, 반스엔노블(Barnes & Noble)에서이다. 뉴욕 시내에만도 여러개의 체인이 있는 반스엔노블은, 디자인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서적이 많다는 장점도 있겠으나, 흥미있는 책들을 두팔 가득 골라 들고,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며 편안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 느꼈던 편안함이란 생소하기만했던 유학 초기의 나 자신에게는 어디 비할곳이 없는 큰 안식이였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서울에서는 수입 서적을 쉽고 다양하게 접할 수 없던 시기였고, 대형 서점에 들러서 원하는 수입서적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비닐에 굳건히 포장되어 있어서 내용을 살펴볼 수 없었으며, 서점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값을 지불하지도 않은 책들을 장시간 읽는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였으므로, 유학초기의 반스엔노블에서의 스타벅스 커피와 함께했던 기억은 아득한 유년기의 추억을 상상하는 경험만큼이나 미묘하게 남아있다.
96년 유학 초기에 접했던 스타벅스 수에 비하자면, 이후의 스타벅스의 수는 마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실내디자인을 해내는것을 보며 얼마나 면밀하게 계획된 디자인인가에 감탄했다. 대학생들이 많은 지역엔 그에 맞는 자유스러움으로,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지역엔 그에 맞는 디자인으로, 월스트리트등의 비지니스맨이 많이 모이는 곳은 그 분위기를 감안한 디자인이 선보여졌고. 아무리 작아보이는 공간에도 스타벅스만의 독특함을 최대한 표현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사가 빈번한 뉴욕에서의 생활에서, 스타벅스가 얼마나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지가 그 지역을 선호할 수 있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스타벅스 문화가 얼마나 우리 생활에 근접하게 자리잡고 있는지 느끼게한다.
과연 스타벅스는 무슨 이유로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것일까?
대학원 수업중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Visual Communication Design) 과목에서, 기존의 회사를 선택하여 로고및 기타 어플리케이션을 재디자인하는 수업 내용이 있었다. 당시 담당 교수는, 새로운 디자인 도입이 필요해보이는 서너개의 회사들을 골라 오라는 과제를 각자에게 제시하며, 피하여야 할 회사들, 즉 이미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서 학생이 다시 시도하기에 버거운 회사들을 예로들며 스타벅스를 우선적으로 꼽았던것만을 생각해 보더라도, 그 성공의 기본엔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마켓팅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타벅스의 디자인이라고 하는것이 회사의 로고나 기타 사용되는 컵이나 냅킨등의 표면적인 디자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디자인의 기반에는 사람들의 심리나 사회적 문화등을 감안한 체계적이고도 폭넒은 디자인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Ray Oldenberg의 "The Great Good Place"라는 책을 보면 "제 3의 공간 (Third Place)"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있다. 사람들에게는 집이나 직장(학교)가 아닌 제 3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사람들과 만나고 모일 수 있으며, 혼자서도 편안히 휴식할 수 있고, 일에 연관되지 않는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이를통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 3의 공간은 집이나 직장에서와는 다른 즐길 수 있는 놀이 문화가 있으며, 집과는 또다른 분위기의 편안함 즉, 정신적으로 가장 편안히 안정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스타벅스에 가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 예를 들어 여러 종류의 소규모의 모임들이나 혼자서 장시간 독서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학교 숙제를 하는듯 많은 책을 늘어두고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흔히 느껴볼 수 없었던 품질 좋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사색에 빠지기도, 혹은 사람들과 만나서 편안히 대화하기도 했던 나 자신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더라도, 어쩌면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숍의 개념을 넘어, 앞에서 말한 "제 3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도 스타벅스의 커피 문화는 대학생 남녀간의 데이트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과거의 Pub에서 맥주를 마시며 데이트하던 문화가 스타벅스로 인하여 바뀌고 있다는 내용이였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던 영화, You've got mail에서 남자 주인공 Tom Hanks가 여자 주인공 Mag Ryan에게 스타벅스에 대한 의견을 이메일로 얘기하는 장면에서, "비록 2불 95센트의 커피 한잔이지만 small-tall, light-dark, lowfaf-nonfat, decaf... 등의 여러가지의 개인적인 선택이 동반되는, 단순한 커피 한잔의 의미를 넘어 자기 자신의 센스를 규정하는 과정으로 표현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오늘도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고, 지난 주말에는 반스엔노블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새로 나온 잡지와 책들을 살폈다. 일개의 커피하우스가 이처럼 대중문화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의 근원에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이 있었음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며, 가치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종사함에 새삼 뿌듯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