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연 | 2003-07-13
한국인으로서 전통의 흐름에 들어가 한국고유의 것을 응용해서 디자인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외국에 나와 있어보니,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서양의 재료, 유화와 넓적하고 강한 붓이 우리의 물로 타는 먹과 부드러운 털의 둥근 붓과의 차이점으로 인해서 표현되는 결과물은 이곳에서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불란서인들은 자기네가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많은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갖고 있다.
본인이 한국을 알리는 문화행사에 참여해서 사군자와 한글서예를 하면서 느낀 것은
붓 하나로 다양한 선의 굵기와 필력으로 사군자를 치거나 한글의 빼어난 과학적인 글을 멋들어지게 궁서체로 쓰고 있노라면, 숨까지 멈출 정도로 그들은 꼴깍 침을 삼키며 나의 붓 돌아가는 자태에 모두 반해 버린다.
워낙 서양문명이 발달하고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이 많고 배울 것이 많다고 하지만 정작 나의 것, 우리의 것들, 전통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만 급급해서 철학이 없는 외국의 껍데기만 베끼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의 디자이너들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최고의 디자이너는 튼튼한 뿌리 있는 철학과 전통문화를 알고 습득하고 연구한 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응용할 수 있을 때, 서양의 철학에 맞대응하고 나의 디자인이 당당히 내 것이니라! 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자들이여 우리의 전통문화에 한번 눈 돌리고 연마해 보는것도 다양한 아이디어의 굵은 뼈대가 되리라 본다.
네 것을 찾아라 1편으로 사군자에 대한 것을 정리해서 올려본다.
사 군 자
모진 추위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고고한 풍격의 매화
사대부들의 높은 인격과
정신의 향기가 스며 있는
수려한 아름다움의 난초
모든 꽃들이 다지고 난 뒤
홀로 늦가을 서리속에 피는
지조의 국화
청빈한 선비의 표상인
절개의 대나무
우리는 이들을 일컬어
사군자라 부른다
--- 일본에는 없는 우리 미술의 대표
선인들의 오랜 벗-사군자’는 묵죽으로 유명한 탄은 이정부터 수운 유덕장과 추사 김정희, 우봉 조희룡 등 18∼19세기 화단의 거물들과 함께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운미 민영익 등의 작품들이 있다. 특히 혜산 유숙의
<홍백매8곡병>
(보물 1199호)이나 단원 김홍도의
<춘작희보>
(보물 782호), 율곡 이이의 동생인 옥산 이우의
<묵란>
등 굵직한 그림들이 있다.
사군자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성행한 그림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사대부의 품성을 닦고 표현하는 중요한 행위로 널리 퍼졌지만 일본에는 사군자 그림이 없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실제 일제시대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일본 제국미술전람회를 본떠 조선미전을 만들었을 때에도 제국미전에는 없는 서예와 사군자부문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받은 장르다. 이런 점에서 사군자는 비록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우리 미술을 대표하는 그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회 지배계급이 그림을 전업 작가들에게만 맡겨놓지 않고 직접 창작하며 즐겼다는 점 역시 전세계적으로도 중국과 우리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18세기에 이르러 문인화의 정수로 전성기를 누린 사군자는 19세기 들어 창작 주체가 중인계급으로까지 퍼지면서 우봉 조희룡 등의 스타 작가들이 나타나 양적, 질적인 성장을 거둔다. 하지만 이후 20세기에 들어서는 취미교실의 입문, 배우는 기초과목 정도로 오해되며 화려했던 전통이 퇴색해버렸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 한국 미술계 최고의 논객으로 활동했던 평론가 근원 김용준은 “새로운 시대의 감각과 호흡과 감정이 느껴지는 새로운 양식”을 발견해야 한다고 작가들에게 요구하면서 “불행히 동방사상의 이해가 박약한 시대라 서(書)예술(서예와 사군자)의 운명이 그 후계자를 가지지 못함을 탄식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안타까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씨는 “사군자는 그 자체를 사람으로 생각하고 보면 된다”고 이끌어준다. 사군자라는 것이 옛 문인, 즉 사대부들이 스스로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실제로는 식물이 아닌 사람이며 사람에서도 덕이 많은 군자를 지향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감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싹이 돋는 대나무의 어린 순은 곧 될 성부른 어린아이이고, 예쁘고 낭창낭창한 묵죽은 소년이며 올곧고 마디가 굳은 대나무는 근본이 굳센 어른을 상징하는 식이다.
묵란>
춘작희보>
홍백매8곡병>
--- 매ㆍ난ㆍ국ㆍ죽
옛 시인들이 “이 사람 없이 어찌 하루라도 살 수 있겠는가” 사모했던 식물은 대나무였다. 송나라 시선 소동파는 “고기없이 밥은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는 살 수 없다. 고기가 없으면 수척하게 야위겠으나 대가 없으면 속되게 된다”고 해 대나무를 군자에 비겼다.
대나무를 비롯해 난초, 매화, 국화를 사군자로 부르는 까닭은 이 네가지 식물들 특성이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도 좋을 만큼 군자의 기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태가 어찌 바뀌건 흔들리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군자를 추위를 견디며 푸르름을 잃지 않는 매·난·국·죽에 비유함은 이들을 통해 거센 풍상을 이겨내 보려는 동양 선비들의 마음 같은 것이다. 글씨 쓰던 붓을 들어 난을 치고 대나무를 그리며 세상을 관조했던 사대부들은 “대저 뜻은 말 속에 피어나고 마음은 그림에서 드러난다”고 읊었다.
조선시대 사군자는 작품으로 뚜렷하게 남은 것은 세종대왕 자손이었던 이정부터였다. "이정의 묵죽화는 곧 조선 묵죽화의 창안이자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의 묵죽화와는 다른 특징들, 소재의 특징을 명료하게 부각시키는 화면구성, 극명한 대비를 중시하는 조형감각, 서예성과 회화성의 적절한 조화, 절제되고 응축된 기세의 표현을 보여준다”
사군자는 왜 사군자인가 ?
매란국죽 네 가지 식물이 한꺼번에 ‘사군자’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중국 명나라 때부터지만, 사실 이들이 사랑을 받은 것은 한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사군자는 일찍부터 그림의 주요한 소재로 쓰이면서 충성과 절개, 지조와 같은 정신적 가치를 상징해왔다.
기본적으로 사군자가 매란국죽의 순서를 갖게 된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 순서에 맞춘 것이다. 매화는 이른 봄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고, 난초는 깊고 은은한 향기가 단아하며, 국화는 찬 서리를 마다 않고 늦게까지 꽃을 피우고,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이 그대로라는 점에서 이런 순서가 생겼다. 또한 매화는 인자함, 국화는 의로움, 난초는 예, 대나무는 슬기로움을 상징한다.
사군자의 이런 기본 성질은 곧 사대부들이 흠모하는 덕목으로 이어진다. 가령 국화를 그린 그림에는 국화란 소재 자체를 골랐다는 점이 이미 국화가 늦게까지 혼자 남아 꽃을 피우는 절개 즉 ‘오상고절’(傲霜孤節)을 상징하며, 국화를 그린 이는 국화의 이런 덕목을 닮고자 하는 자세가 기본을 깔려 있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서 그림을 봐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고사들을 알고 그림을 보는 것도 필수적이다. 매화의 경우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임포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살았다는 고사가 전해지면서 선인들의 벗으로 더욱 사랑받게 됐다. 난초는 초나라의 시인 굴원의 시에 등장할 때 이미 충절을 상징하는 소재로 쓰였고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국화가 동양문화권에서 사랑받게 된 것은 도연명이란 숨은 은자의 대명사로 쓰이면서부터. 이후 국화는 곧 지조와 은거를 상징한다. 대나무 역시 중국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하나인
<시경>
에서 국왕의 덕망을 비유하는 소재로 쓰였고, 무엇보다도 대나무숲에 들어가 평생 은거한 죽림칠현의 고사를 통해 군자들의 상징이 됐다. 그래서 양명학을 세운 왕양명은 대나무를 격물의 대상으로 삼았고, 명필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는“대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고 했을 만큼 대나무를 사랑했다고 한다.
군자의 벗 사군자에서도 첫머리에 오르는 으뜸은 매화였다. 매화는 다른 모든 풀과 나무가 새싹을 움틔우기 이전인 추운 겨울, 하얀 눈 속에서 홀로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꽃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매화를 ‘백훼(百卉)의 으뜸’으로 치며 그 모습을 닮고자 해 매화를 곁에 두고 즐겼다. 매화는 주군에 대한 선비의 충성과 고절의 표상이자 봄의 상징이었으며, 그립고 아름다운 이를 뜻했다. 그리고 달과 매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매월상조’(梅月相照)의 풍경은 고아한 풍취가 어리는 가장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으로 많은 글과 그림의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재미있는 점은 매화의 원산인 중국에서보다 우리 땅에서 매화가 더 사랑받았다는 점이다. 중국 시인 도연명은 사군자에서도 국화를 끔찍이 사랑했고, 성리학자 주돈이가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고 평하기는 했어도 정작 중국에서 매화를 이토록 사랑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매화는 조선에서 단연 최고의 꽃으로 사랑받았던 것이다. 특히 매화시 104편을 묶은
<매화시첩>
을 펴냈던 퇴계 이황의 매화사랑은 단연 으뜸이다. 도산서원 한 구석에 매화를 심어 즐겼던 퇴계는 말년 병이 위중해지자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매형’에게 보일 수 없다”고 매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는가 하면, 유언마저도 매화분에 물 주라는 한마디였다고 한다.
매화시첩>
시경>
---- 여백으로 생동하는 그림 마음에 충만한 기의 힘!
문인화라고도 불리는 전통 동양화에는 그림과 함께 한구석에 한문으로 쓰여진 시가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시·서·화 삼절이라 불렀다. 시·서·화 삼절이란 시의 내용에서 풍기는 품격과 그 시를 쓴 글씨의 품격, 그리고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같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
에는 “내 속에 정성 되면 밖으로 그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난초나 대나무를 그린 사군자 그림들은 그림보다 여백이 더 많다. 서양화에서는 여백이 있으면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지만 동양화에서는 여백이 없으면 죽은 그림이 된다. 여백은 빈 공간이 아니라 기로 꽉 찬 공간이며 그 빈 듯한 공간이 있기 때문에 그림이 사는 것이다.
붓을 움직이는 기본 원리는 ‘기운생동’이다. ‘기운생동’이란 작가의 기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동양의 예술품들은 작가 내면의 수양 정도가 기를 통해 밖으로 드러난 것이며, 음률과 음률 사이나 그림의 여백, 그리고 쓰여진 글씨체에 그 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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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이트] 사이버 미술관 찾아 한국화 감상하기
1. 국당 조성주의 홈페이지(http://kugdang.net) : 감지에 순금박판을 이용하여 제작하는 금도 서예작품. 문인화 작품과 도자기에 새긴 서예 작품 10폭 짜리 2개의 병풍으로 꾸며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 전시돼
<금강경 5440자>
가 있다.
2. 한국의 서예전(http://www.seoyea.co.kr)에서는 한국의 서예대가 여초 김응현 선생 등 현존 대가들의 작품과 위례서예인협회에서 추천한 중견작가들의 사군자 등 작품 200여점을 전시해 놓고 있다. 한글 흘림체와 한글 궁서체, 안진경 해서체, 왕희지 난정서 및 예서체 쓰는 방법도 설명해 놓았다.
3. 화포 손광식 선생의 사군자(http://www.sagunja.net)에서는 `사군자란 무엇인가?'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특성과 설명' `문방사우에 관한 설명' `문진, 필세, 연적, 접시, 붓통, 붓걸이 등 용구에 대한 설명' 등을 볼 수 있다.
4. 월하 박춘근의 사군자 학습법(http://www.weolha.co.kr)에서는 붓에 대한 설명, 붓을 사용하는 방법, 산수화의 구성 방법, 발묵법과 파묵법, 돌·바위·산·물결·바람을 그리는 방법, 난을 잘 그리는 법, 난 잎에 정취를 느끼도록 그리는 방법, 난 꽃에 질감을 느끼도록 그리는 방법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금강경>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