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실 | 2003-12-09
이 칼럼을 통해 필자는 컨템포러리 뉴미디어 아트를 분야별로 정리하고, 새로 발표되는 작품들을 위주로, 특히 아트의 본고장인 뉴욕 뉴미디어 아트를 중점적으로 전할 것이다. 부디 이 코너가 디자이너 여러분께 새로운 활력소로 다가가 디자인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자 그럼 뉴미디어 아트의 세계로 발을 담궈보자.
거울을 보듯 스크린에 비쳐진 실루엣을 타고 흘러내리는 싯구,
내 몸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여 다르게 연주되는 음악,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과 같은 화면에 동시에 그려지는 그림
우리가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새롭게 경험하는 세상이다. 뉴미디어 아트는 현시대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아트에 적용된 것으로, '뉴미디어 아트'라는 명칭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1970년대 이후로는 '컴퓨터 아트'로 불려졌고, 이후에는 '멀티미디어 아트', '디지털 아트'로 불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할 수 있는 '뉴미디어 아트'로 통하고 있다.
뉴미디어아트는 이러한 기술적인 요소, 혹은 미디어에 따라서 나누기도 하지만, 오늘은 아티스트에 의해 다루어지는 테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뉴미디어 아트에도 전통적인 아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테마가 다뤄진다.
뉴욕 휘트니뮤지엄의 뉴미디어 큐레이터인 Christiane Paul(크리스티안느 폴) 에 따르면, 뉴미디어 아트에서 주요대상은 아티피셜 라이프(artificial life),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 데이타베이스 비주얼라이제이션(Database Visualization), 인간의 아이덴티티, 게임, 퓨쳐 테크날러지(Future Technology)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1. 아티피셜 라이프(Artificial Life)
인공지능, 인공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과학이나 공상과학소설 등에서 다루어져 왔다.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 기하학적 모양이나 특성을 지닌 생명체가 작품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다양하게 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공생명체들은 아직은 너무나 기계적인 모습 혹은 추상적인 형태를 띄고 있어 자칫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가상공간의 가상생물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더 가까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http://www.genarts.com/karl/
Karl Sims의 갈라파코스는 12개의 모니터로 구성되어 있다. 모니터는 호의 형태로 휘어져 배열돼 있으며, 각 모니터에는 추상적 형태를 지닌,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가 보인다. 사용자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생명체 앞에 서면 센서가 반응하여 그 생명체는 반응하게 된다. 마치 유전자가 복제되고, 신체의 일부분이 변형되듯이...
http://www.iamas.ac.jp/~christa/index.html
지금은 일본 교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Christa Sommerer 와Laurent Mignonneau가 만든 A-Volve는 우리가 생활하는 실제 세상과 가상공간을 연결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A-Volve에서 사용자는 인공생명체를 만들고 그것과 상호 작용한다.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으로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그리면, 자동으로 3차원 공간에 형체를 지닌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그 생명체는 실제 물이 가득한 풀에서 헤엄을 친다. 아직 이 작품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 내가 천지를 만드는 하나님이 된 것 같지 않을까?
http://www.iamas.ac.jp/~christa/index.html
Life Spacies 는 2000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 '미디어 시티 서울, 2000' 에 선보인 작품으로 가상 인터랙션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사용자는 키보드 입력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고, 이 생명체들은 자신의 이름을 구성하는 알파벳이 입력되면, 그것을 먹고 자란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상공간, 그 안에 존재하는 가상생명체, 생김새는 익숙하지 않지만, 어느새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먹이를 주면서 가상 세계게 푹 빠지게 된다.
2. 텔레프레즌스 (Telepresence)
텔레프레즌스란 공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 같이 보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연결된 현재라고 말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이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준 것이 로보틱스 기술이다. 원거리에서 로봇을 조종하는 기술을 텔레로보틱스 라고 부르며,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분야인 만큼 과학과 아트의 구분이 모호할 때가 있다. 일반화되지 않은 최신기술을 사용한 아트, 그것이 과학인지, 아트인지는 여러분이 판단하기 바란다.
http://www.usc.edu/dept/garden/
테이블위에 만들어진 조그만 정원을 로봇 팔의 원거리 조종을 통해서 볼 수 있다. 1996년 Ars Electronica Center 에서 전시되었고, 웹을 통해 현재도 서비스 되고 있다. 회원가입을 하고 웹인터페이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http://memento.ieor.berkeley.edu/
캘리포니아의 Hayward Fault 의 움직임이 디지털 시그널로 변형되어 인터넷을 통해 인스톨레이션으로 전송된다. 인스톨레이션은 좁고 어두운 복도와 그 끝에 원형으로 된 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곳엔 위 그림에서 보듯이 우물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있고, 바닥에는 그래프가 디스플레이되는 모니터가 있다. 모리(Mori)는 실제 지구의 정보를 아트 작품으로 활용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3. 아이덴티티
예로부터 아트의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인간의 신체와 아이덴티티'에 관한 이슈는 디지털 아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상공간 혹은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정의하고 자아를 발견하고, 또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만들어가는가? 이러한 질문을 토대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http://www.snibbe.com/scott/index.html
이 작품은 올해 초 뉴욕의 갤러리, The Kitchen 에서 직접 관람했다.
너무 단순한 인터페이스 (우리 눈에는 정사각형의 마루바닥밖에 보이지 않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기대하고 올라섰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가 올라서자마자 필자와 친구 사이에는 형광 파란색의 경계선이 만들어졌다. 사람이 추가될수록 나만의 공간을 줄어들며, 경계선은 아주 다이나믹하게 움직인다.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각 개인이 그 속에서 결과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는 자아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4. 데이터베이스 비주얼라이제이션
혹자는 우리가 정보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정보가 단지 수집되고 보관만 된다면 이는 우리에게 가치없는 데이터에 불과할 것이다. 데이터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려면, 어떠한 기준에 따라 필터링되거나, 매핑이라는 방법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옷을 입어야 한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세상에 산재한 데이터를 작품에 응용하기 시작했는데, 과학, 통계, 건축, 디자인, 디지털 아트 등 광범위하게 데이터베이스 비주얼라이제이션이라는 용어로 불리어 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디자이너이거나 디자이너 지망생인 점을 비추어 볼 때 이 섹션에 있는 작품들에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http://www.turbulence.org/Works/apartment/#
흔히 정보구조는 메모리의 구조에 비유된다.
이 작품은 '정보의 구조' 가 '아파트의 구조'라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화면 하단에 사용자가 단어를 입력하면, 이는 단어뜻에 가장 관련이 있는 아파트 공간으로 이동한다. 필자가 'Wind 라고 입력했더니, 이 단어는 Window 공간으로 이동하였다. 단어와 공간은 사용자가 사용한 단어에 따라 기호학적으로 분류되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모두 저장되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룬다. Martin Wattenberg는 이 외에도 주식 정보, Rhizome.org 데이터베이스, 사운드 등을 이용한 작업들을 많이 하였다.
http://www.mw2mw.com/
http://www.smartmoney.com/marketmap/
http://rhizome.org/interface/
http://www.whitney.org/artport/commissions/idealine.shtml
http://www.textarc.com/
데이터베이스 비주얼라이제이션의 정수가 아닌가 싶은 이 작품은 2002년, 전세계 컴퓨터 그래픽 축제인 시그라프에 초대되었다. 자바로 제작되었으며, 이상한 나라 앨리스, 햄릿 등의 작품을 한 화면에서 환상적인 그래픽 효과와 더불어 읽을 수 있다. 위 그림에서 테두리의 두 줄로 된 흰색 원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전문이다. 사용자가 읽기 버튼을 누르면서부터 테두리에 있는 글을 읽기 시작하고, 중앙에 흩어져 있는 단어들은 빈도수에 따라 위치가 정해진다. 읽는 순서에 따라 베지어 곡선으로 따라 읽어가며, 단어간의 연결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필자는 뉴욕에서 이 작품을 만든 브레드 포드의 강의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내가 만나본 아티스트 중에서 가장 깔끔하고 잘생긴 아티스트가 아닌가 싶다. ^^
5. 텍스트, 네러티브
뉴미디어 아트의 다음 테마로는 텍스트를 꼽을 수 있다.
책이 중요한 미디어였던 텍스트가 웹의 하이퍼텍스트로 개발되면서, 순차적으로 읽어가던 책의 고유한 특성을 넘어서 인터랙티브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뉴미디어 아트에서는 텍스트의 하이퍼링크의 개념을 넘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텍스트를 표현하고 사용자들에게 텍스트 읽기의 새로운 시도들을 제시한다.
http://www.camilleutterback.com/
2000년 미디어 시티 서울에서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이것은 감동이라기보다 충격이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 자신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작품 속에서 존재하고, 내 그림자를 타고 비처럼 흐르는 알파벳들이 만들어내는 패턴들을 보고 필자는 놀이(playing)를 아트의 컨셉으로 접목하자고 결심했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제목은 텍스트 레인인데, 실제로 보면 눈과 같은 느낌이다. 눈처럼 내리는 텍스트는 어느 시인의 작품으로 행에 따라 텍스트의 컬러가 달라지며, 몸의 실루엣을 따라 싯구가 흐르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6. 게임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게임 또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아마도 가장 기술의 발전이 빠른 산업분야가 게임일 것이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서 3D 가상현실을 경험하고, 멀티유저 환경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게임유저들이 한 공간에서 게임을 즐긴다. 실로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많은 일들이 온라인게임에서는 행해지는데, 2002년에 발표된 Feng Mengbo 의 Q4U는 Q3A로 알려진 Quake III 아레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갤러리에 3개와 대형화면으로 구성된 스크린이 게임의 무대이고, 주인공은 자신을 표현하는 스킨을 가진다. Feng은 이 게임을 통해 비디오게임과 홍콩 액션영화와 같은 팝컬쳐를 표현하고 있다.
7. 퓨쳐 테크날러지
어쩌면 과학보다 예술을 통해서 먼저 창조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티스트의 상상과 시도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가 제시되면 과학자는 그것을 개발해 주는게 아닐까?
물론 과학자들의 접근 방법과 아티스트의 접근방법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뉴욕에 와서 많은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좋은 작품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아트와 과학이 함께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이제는 로보틱스 기술을 넘어서서 유전정보를 작품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Eduardo Kac의Genesis가 그것이다. Eduardo Kac의 사이트를 보면,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다른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텍스트가 모르스 부호로, 또 DNA정보로 변환되는 과정을 이용한 작품이다.
http://www.ekac.org/
http://libreria.bampfa.berkeley.edu/
지금까지 뉴미디어 아트의 큰 테마들을 살펴보았다.
앞으로는 인간이 목소리로 명령을 하거나, 만지거나, 눈의 움직임 그리고 그와 비슷한 기계들이 작품과 결합되는 피지컬 컴퓨팅의 세계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피지컬 컴퓨팅이란, 앞서 언급한 예처럼 컴퓨터의 일정 프로세서 혹은 일부 장치를 인간의 감각기관이 대신하는 것으로, 인간이 컴퓨터를 보다 적극적으로 조작하고 컴퓨터의 기능이 확대되는 것이다.
아마도 아티스트와 과학자들의 마지막 도전은 인간의 두뇌와 기계, 뇌와 뇌 사이의 인터렉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이미 세계 곳곳에서 그 시작을 알리는 연구와 작품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바이오 테크날러지, 신경과학, 나노기술 또한 앞으로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뉴미디어 아트의 형태적 구분을 통해 그 기술적, 미학적 특징들을 살펴볼 계획이다. 그 첫번째로 다음 회에는 뉴욕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을 위주로 인스톨레이션 아트(Installation Art)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