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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제19회 오늘 하루, 만화와 신나게 놀기 ① 아트 속 만화

강신현  | 2009-09-08


추억의 만화 <로보트 태권v> 가 돌아온다는 뉴스를 접한 후, 공책 한 구석에 빼곡히 만화를 그리곤 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풍선 껌을 사면 하나씩 들어있던 조그만 만화책자들에서부터, 일요일 아침이 되면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서 보던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 만리> , <빨강머리 앤> , <은하철도 999> 까지…. 현실과는 다른 무한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만화의 세상은 그렇게 달콤한 꿈 속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 사탕과 같던 달콤함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으로 점차 잊혀졌다. 오늘부터는 만화에 갖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자.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크리에이티브의 또 다른 장을 열어 줄 훌륭한 매개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 강신현 (어도비 시스템즈 UX디자인 컨설턴트)


미디엄으로서의 만화를 말하다
다카시 무라카미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아티스트들이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캐리커처 등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가 몸담은 사회에 제 목소리를 돋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회의 부정과 부패, 전쟁, 인간성 상실 등 우리가 직면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만화만이 가지는 고유한 기법을 통해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그저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 술술 넘겨 봤던 만화가 어떻게 사회의 첨예한 이슈들을 해부하고 들춰내는 ‘미디엄(Medium 예술 표현의 수단. 또는 그 수단에 사용되는 소재나 도구)’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먼저 ‘제2의 앤디워홀’이라 불리는 일본의 아티스트 타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의전시회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2007년, 코믹 앱스트랙션(Comic Abstracion- Image Breaking, Image Making)’이라는 주제로 ‘모마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그는 본인의 작업은 물론, 공통된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타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했다. 만화 혹은 코믹 북이 가지는 이미지들이 참여 작가들에 의해 해체와 조합 과정의 반복을 거치며 새로운 이미지로 재창조, 재해석된 바 있다.
타카시 무라카미는 흥미롭게도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망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일본스러운’, 그래서 친숙하기까지 한 소재를 사용한다. 일반 대중이 좀 더 가까이 (그리고 쉽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는 것. 하지만 반대로 다카시 무라카미는 작품에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촌철살인의 매개체로 그것들을 재사용한다.


칠판 속 하얗게 드러나는 진실의 가루
개리 시몬스

개리 시몬스(Gary Simmons) 역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만화를 이용하고 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컨셉추얼리즘(Conceptualism)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 틀 안에 자신만의 표현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는 그는, 우연히 ‘learning’과 ‘un-learning’, ‘teaching’과 ‘un-teaching’을 위해 존재하는 칠판을 자신만의 표현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이 칠판을 이용하여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의 스테레오 타입에 관한 비판을 쏟아놓는 ‘삭제(Erasure)’ 시리즈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고전 동화에 녹아나 있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을 발견하고 이를 칠판에 옮긴다. 예를 들면 <덤보> 나 <백설공주> 속 일곱 난쟁이 등 초창기 디즈니 필름 속에서 말랑말랑하게 표현되어 있는 흑인의 캐릭터들을 발견하고,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흑인의 하얀 눈이나 치아만을 따로 떼어내어 칠판에 그려냄으로써 현존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한다.
한편 대표작인 <붐(boom)> 의 경우, 만화에서 두 가지 사물이나 인물이 충돌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구름 이미지를 통해 전쟁에 대한 메시지를 일갈하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 폭력적이고도 공격적인 폭발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희열을 가져다 주는 엔터테인먼트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구멍에 빠지면 코미디가 되지만 정작 그 주인공이 나라면 비극이 되는 것처럼, 이는 폭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지를 극명하게 묘사한다. 덧붙여 그는, 만화가 가장 처음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만들기 위해 폭력(Violence)을 빌려온 시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을 찢고 그 위에 다시 그리다
아르투로 헤레라, 엘렌 갤러거, 리바니 뉴언슈반데르

아르투로 헤레라(Arturo Herrera)는 월트 디즈니의 고전작품이나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코믹 북들의 이미지를 찢고 풀어헤치고 다시 조합하여 추상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그만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개인적 경험과 연관된 특정 만화 속 장면들이, 추상적이고 의미전달이 불확실한 이미지를 보더라도 그 기억의 연관성을 통해 되살아나는 점에 그는 주목한다. 이를 이용해 그는 자신들만의 새로운 이야기나 다른 이미지로 재해석한다. 만화는 현대 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토로 헬레나는, 만화의 단순화된 형과 친숙한 색은 사실은 굉장히 정확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조합되어 강한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다고 믿는다.
한편 엘렌 갤러거(Ellen Gallagher)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보아왔던 이미지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전혀 다른 이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실험적인 이미지 창조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유년 시절 중 큰 부분을 차지했었던 아버지의 문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그녀의 작품 <오! 수잔나> 를 보면 만화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연상시키는 퉁방울 같은 눈과 두툼한 입술 등의 조각난 이미지를 계속 반복해서 붙여짐으로써 그것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화를 소통의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는 또 한 명의 대표작가로는 리바니 뉴언슈반데르(Rivane Neuenschwander)를 들 수 있다. 그는 <제 카리코나(zé carioca)> 의 모든 등장인물과 내러티브를 지워내고 한 장 한 장의 페이지를 추상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킨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제 카리코나> 에 그려진 브라질인에 대한 클리셰,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도다. 그는 <제 카리코나> 에 그려진 등장인물과 이야기들을 모두 지워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재창조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만의 새로운 문맥과 이야기를 상상으로 채울 수 있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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