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8
디자인의 힘이란 대단하다. 시대가 바뀐 것도 바뀐 것이지만 이러한 디자인에 어느 누가 반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전자제품 회사하면 순서껏 나열하게 되는 것이 삼성, LG, 대우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LG가 공격적 경영으로 만년 2등의 자리를 벗어났고 LG의 디자인 파워는 막강해졌다.
그 선전의 중심에는 디자이너의 몫도 상당하다 하겠다. 애플에 조나단 아이브가 있다면 LG에는 디자이너 차강희가 있다.
취재 ㅣ 호수진 객원기자 (lakejin@hanmail.net)
정말 눈깜짝할 사이 LG는 놀라운 디자인의 제품들을 보여줬다. 휴대폰 분야에서만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힘들 정도. 굳이 그 시작을 찾아보자면 LG의 첫 번째 블랙라벨 시리즈 초컬릿 폰. 그 뒤 출시된 샤인폰. 실물을 본 후에야 그 반짝임이 TV나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샤인폰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 매력을 반도 모르는 것일 듯 싶다. 마지막으로 일상의 조그만 사치는 누구나 부리고 있는 터. 이태리 명품 프라다와 합작해서 만든 프라다폰으로 LG는 그 이미지를 디자인 지향의 회사로 굳히고 있다. 디자인의 연구와 개발이 점점 중요해 지는 시점에 괄목할만한 쾌거가 아닌가 싶다.
기술적인 부분이야 워낙에 경쟁도 심하고 노출이 쉽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러한 가운데 차별화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디자인. 소비자의 힘이 강해진 이 시점에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은 남들에게 없는 기능이 내 핸드폰에 있는 것보다 남들보다 예쁜 것, 디자인이 나은 것을 원하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프로슈머로 거듭나고 있는 소비자들이 디자인에 가치를 부여하고 더 나은 디자인의 무엇을 원한다면 기업으로써는 도리가 없다.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밖에.
시장을 세분화하고 목표 시장을 설정하는 등의 STP전략도 중요하고 제품, 가격, 유통,프로모션과 같은 마케팅의 도구를 이용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LG전자 MC(mobile communication)디자인 그룹 책임 연구원 차강희 소장은 설문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치 보다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그들의 욕구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비자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엇을 잡아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차강희 소장이 말하는 디자이너의 현명한 직관력이다. 직관이든 조사든 어렴풋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어내 나온 디자인들, 어색하고 조악한 디자인 요소들의 조합이 시장에 날뛰는 가운데 현명한 직관력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처럼 쉽다면 누가 그처럼 히트 상품을 내는 것이 어렵겠는가.
물론, 그 직관력이라는 것은 다년간 시장을 살피고 트렌드 변화의 중심에 서서 그 흐름을 읽어갈 때 나오는 것이기에 전문적인 상품 기획자가 필요하다.
테크놀로지가 관여하는 기능성은 기본이고 밀도 있는 디자인 작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을 때 제품으로써 그 의미가 남다른 것. 디자인이 부가적으로 더해지던 과거와는 달리 디자인이 사용자 삶의 질을 좌우하는 디자인 가치창출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러한 LG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시장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차강희 소장의 생각이다. 영원한 시장 장악은 있을 수가 없다. 어떤 기업이 특정 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올릴 경우, 경쟁 업체들이 그 시장으로 몰려 더 이상 그 시장을 독점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힘은 일시적인 것이므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소비자의 감성을 충족시키려면 지속적인 트렌드 제시만이 살아 남는 길이 아니겠는가.
초컬릿 폰으로 2005년도 대통령상을 수상한 그이지만, 단 한번으로도 영광스러운 그 일이 그에겐 이미 1998년에도 있었다. 당시 ‘아하프리’로 대통령 상을 수상했다. 남들이 집에 있는 음향기기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데 집중했을 때, 그는 밖에서 듣던 음향기기를 집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남들이 생각지 않는 것에서 디자인 컨셉을 잡아낼 수 있는 안목. 디자이너에게는 그런 혜안이 필요하다.
감동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첫눈에 ‘와!’라고 감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신뢰라는 것은 소유하고 사용하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본인의 소유물에 대한 애착을 갖고 그 후에도 같은 브랜드의 것을 선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강희 소장은 초컬릿폰에서부터 프라다까지 LG전자의 캐치프레이즈에 매우 충실했다.
초컬릿폰은 프로모션도 남달랐다. 사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대리점 사장들을 불러다 놓고 제품 설명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스타와 디자이너들을 초청한 런칭쇼라든가, 제품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네이밍이라든가, 제품의 탄생에서부터 홍보까지 어디하나 과거 여느 핸드폰 출시를 답습한 것은 하나도 없다.
쵸컬릿 폰을 디자인할 때 차강희 소장이 처음 착안한 컨셉은 화면도 버튼도 없는 휴대폰 같지 않은 휴대폰. 뭔가 심심해 보인다는 질타도 있었지만, 그는 그의 현명한 직관력을 믿었고 소비자의 감성에 어필할 수 있는 무엇에 기대를 걸었다. 초컬릿 폰은 보이는 것보다 오히려 그로부터 얻는 무형의 가치가 더 큰 제품이다.
초컬릿폰의 경우 LG 측에서 블랙 라벨임을 강조했지만, 사실 더 이상의 블랙 라벨은 없다.디자인 감성이 보다 많이 녹아있는 핸드폰들이 모여 블랙 라벨군을 형성할 것이고, 이로써 LG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보통 테크놀로지에 디자인을 맞추는 것이 통상 디자인하는 과정이지만, 초컬릿 폰의 경우 디자인을 위해 감성 구현을 위한 테크놀로지를 적용했다. 차강희 소장은 1950년대 미국 디자인계를 꽉 잡고 있던 레이몬드 로위와 같은 말을 한다. ‘예쁘지 않으면 안팔린다’ 라고.
프라다폰에 대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초컬릿폰의 부풀리기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초컬릿폰을 시작으로 그 폴더형이 김태희가 철봉에서 몸을 반으로 접으며 ‘고이 접어 나빌래라’고 외친 일명 나빌래라 폰이고, 바형이 포켓디엠비폰이다. 마지막으로 프라다폰은 초컬릿 폰의 얼라이언스 디자인이다. 초컬릿 폰에서 시작된 터치의 기술이 프라다폰에 와서 그 완성을 맺는다.
프라다에서 관여한 프라다폰의 요소는 대표화면의 배경이 블랙이라는 것과 프라다 폰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액세서리들. 패션업체와 그런 동맹끝에 프라다 폰이 탄생했다.
초컬릿폰, 프라다폰 외에 차강희 소장이 아끼는 디자인이 있다. 샤이닝 모멘트, 샤이닝 폰. 이 핸드폰의 제작은 남다르다. 사용자들이 이 핸드폰을 통해 행복한 순간을 느낄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해 디자인했다. 행복을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찾다 보니 반짝이는 스틸 소재를 선택하게 되었고, 아주 적합한 소재임에 만족했다. 그러나 만족도 잠시. 소재가 전파를 방해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이 디자인의 포인트 반짝임을 포기할 수는 없는터. 수개월의 연구 끝에 반짝이는 샤이닝 폰이 나오게 되었다.
인어가 아름다운 이유는 다양한 조화 때문 일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화. 개인적으로 애플의 아이팟이나 B&O의 오디오 같은 미니멀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가 좋아하기 이전에 그것들은 이미 성공한 제품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와 기업의 CEO가 동일한 시각에서 제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같은 전제조건에서 트렌드를 선점하고 디자이너들의 감성 어린 창의성이면 무서울 시장이 없다.
‘선점’이 중요하다. 묘하게 프라다 폰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애플폰의 인기도 프라다폰과 견줄만하다. 만약, 엘지가 한 발 늦었다면, 애플의 명성에 가리워 애플폰의 아류로 전락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트렌드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휴대폰은 그에게 있어 분신이다. 비단 안강희 뿐만 아니라, 현대인 대부분이 컴팩트하지만 모든 기능이 집약되어 있는 휴대폰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본인의 분신을 만들어 내듯 디자인하는 까닭일까? 감동과 신뢰를 디자인 하는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