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7
90년대 세계의 자동차 산업은 생산규모의 거대화와 비용의 절감뿐만 아니라 신제품과 신기술의 개발, 생산설비의 개조, 해외진출 등 경영의 모든 면에서 빠르게 대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자동차산업계도 국내외 생산거점을 확장하고 연구개발기능을 강화하면서 선진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현대자동차는 전주상용차공장(96년)과 아산공장을 준공하고, 해외에는 터키공장(97년)과 인도공장(98년)을 건설했다. 또한 화성시 남양에 첨단의 자동차 개발 설비와 시험 시설을 갖춘 종합기술연구소(95)를 세우고 국내외의 디자인연구 기능을 확대 설치했다. 대우자동차는 ‘세계경영’의 기치 아래 현지생산을 확대하고, 해외연구소의 기능을 강화했다. 이 계획의 추진으로 동유럽 국가와 인도, 베트남, 우즈벡 등지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레간자, 라노스, 누비라를 첫 작품으로 개발했다. 이러한 생산력과 연구 기능의 확대는 외국 기술에 의존하면서도 핵심적인 기술을 소화하며 축적해 온 노력의 결과였다.
연구 기능의 확충과 함께 디자인 과정과 방법에서의 시스템 전환이 시도되었다. 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다양한 종류의 차종을 개발할 수 있는 다자인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신차종의 디자인에 소요되는 일정을 최소화하는 것은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디자인에서 양산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개발리드타임(Lead Time)이 길어지면 비용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신차를 투입할 무렵이면 벌써 소비자의 취향이 변해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새로 탑재한 기술이나 스타일이 진부한 것이 되고 말았다. 개발리드타임을 줄이기 위해 각 부문을 초월하여 서로 조정해 가면서 동시 병행하는 방식을 채용했다. 전통적으로는 스타일이 완성된 다음에 설계와 개발에 들어갔으나, 스타일 진행 중에 관련 부분이 동시에 스타일의 문제를 미리 검토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여러 부문의 동시 진행은 CAS (Computer Aided Styling) 시스템의 도입으로 가능했다. CAS의 도입은 전통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수정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 행위를 무형의 기법으로 전환시켜 놓았다. 자동차의 스타일을 제작하는 과정은 마치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어가듯이 물질의 형태를 만지며, 느끼고, 살피는 과정을 통하여 전개되어 왔었다. 하지만, 디지털 스타일링이 도입되면서 스타일리스트는 만질 수 없는 가상 상태에서 조형작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이러한 물질의 양감을 확인할 수 없는 디지털 스타일링의 특성을 보완하여 전통적인 조형작업을 혼용하는 프로세스가 생겼다. 또한 모델 가공을 위한 CNC(Computer Numeric Control), 모델의 3차원 데이터를 수치화하는 3차원 측정기 등 첨단 장비는 디자인 일정을 단축시키며 신제품 개발의 대응력을 확장하도록 도와주었다.
국내의 연구개발기능을 확대하고 시스템 전환을 꾀하면서 각 기업은 미국, 일본, 유럽에도 해외 연구소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85년에 현대자동차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현대아메리카 테크니컬 센터(85년)를 설립하여 배기가스, 연비, 안전도에 대한 기술 연구를 시작했고, 캘리포니아 오랜지카운티에 현대디자인센터(90년)를 설립하여 디자인 연구도 본격화하였다. 오랜지카운티는 세계자동차업체들의 디자인센터 16개소가 모여 있어서 디자인 정보를 파악하기가 유리한 곳이었으며,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정서에 맞는 차량을 개발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곧이어 독일과 일본에도 기술 및 제품개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였다. 한국자동차 산업 초기 외국디자이너와의 협업은 국내 디자이너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 디자인의 노하우를 받아들이기 위한 기술용역의 형태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해외연구소를 개설하면서 기술 도입이 아닌 현지 디자이너와 함께 디자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고, 또한 국내 인력의 파견을 통해 지역의 정서를 체험하며 실무를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실무적인 면에서도 과거에는 렌더링, 모델링에 이르기까지 기초적인 디자인 개발을 위한 측면의 지원을 받았으나, 해외 연구소의 개설 이후에는 외국인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컨셉트 전개와 개발 프로세스, 특히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디자인 사고방식을 습득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94년 발표한 HCD-1은 현대자동차가 해외 연구소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개발한 컨셉카였다. 前현대자동차 디자인 연구소장 박종서는 해외연구소를 설립하고 외국인을 디자이너로 채용하여 현지 감각에 맞는 디자인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현대자동차에 입사를 희망하는 경험 있는 디자이너가 없었고, 디자인학교를 졸업한 신입직원 2명을 채용하긴 했지만 문화적 감각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디자인 기법을 가르쳐야 했다고 회고하였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의 위상을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그렇지만 해외 연구소의 개설은 디자인 연구와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 디자인 전반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가 연구개발의 기반을 국내에 둔 반면 대우자동차는 영국의 대우워딩기술센터(wtc; worthing technical center, 94년)를 중심으로 국내인력과 연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센터는 영국의 자동차설계 전문 업체인 IAD(international automotive design)사를 인수한 것이며, 이어서 독일에도 기술연구센터(92년)를 건립했다. 대우는 92년 GM과 결별한 이후에 비로소 이러한 연구 기능을 설치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디자인에서 부품개발까지 자동차 개발의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부평공장 기술연구소 내의 스타일링 부문이 디자인포름(92년)으로 독립하면서 연구 전담 기능을 맡아 해외 연구소와 협력했다.
기아자동차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신기술개발 관련 기술연구소(89년)를 설립하였고, LA에 디자인스튜디오(91년), 일본연구소(94년), 유럽연구소(95년)를 차례로 설립하였다.
21세기를 준비하는 90년대는 전환기적 시대였다. 세계의 자동차 업계는 합병과 기술제휴로 기업경쟁력을 키우고 21세기를 염두에 둔 각종 정책과 연구를 실행해 나갔다. 지구환경대책, 에너지절약방안, 차세대 자동차 개발과 정보화 등 미래 기술의 개발은 기업의 향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투자가 되었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한 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실행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였다. 디자인은 이러한 미래 기술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며 그 기능이 꾸준히 강화되었다.
참고문헌
강명한,『한국차,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우사, 1998
정세영,『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행림출판, 2000
조형제,『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 한울, 2005
마에다 다카노리, 박일근역,『미래산업을 주도하는 세계자동차 전쟁』, 시아출판사, 2004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50년사』, 2005
(주)자동차생활,「CAR LIFE」, 1994/3
박종서 전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장과의 인터뷰, 2009.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