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30
“타이포그래피는 그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며 정신적 진보와 민족의 발전에 대해 말해주는 증명서와 같다.” 이 말은 최초의 산업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독일인 피터 베렌스가 1800년대에 했던 말입니다. 이 문장을 보면 무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피터 베렌스가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에 관해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강의 주제인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내용을 준비하면서 피터베렌스가 간파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여러분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이 말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그래픽이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항상 지니고 다니고, 하루라도 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인 우리는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이런 그래픽이 있는지 자세하게 뜯어보거나 의문을 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는 1달러짜리 지폐를 놓고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사 | 이지원(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정리 | 유근필
1달러 지폐의 그래픽 요소와 스타일
1달러 지폐에는 아주 많은 그래픽의 비밀과 기원, 사회적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지폐에 그려진 피라미드나 독수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 상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오늘 강의는 상징적인 부분을 제외한 그래픽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1달러 지폐에는 영문과 숫자, 조지 워싱턴 초상화, 여러 식물 문양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점선이나 실선으로 음영이 표현되어 그림의 입체감이 섬세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런 표현법은 목판화에서 그레이 스케일로 명암을 처리하는 기법입니다. 지금은 돈에 들어가는 그림을 컴퓨터를 사용해 그리지만, 예전에는 엄청난 크기로 스크린을 확대해서 선을 하나하나 그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묘사가 치밀한 것입니다. 워싱턴 초상화를 둘러싼 틀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19세기 빅토리안 시대 유행한 거울 틀의 모양입니다. 그 시대에 사용했던 양식이지요. 그리고 나뭇잎도 여러 종류 그려져 있는데요. 20세기 초반 아르누보 스타일이 유행하던 시대에 식물을 양식화해서 그렸던 기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달러 발행의 역사와 서체
1달러 지폐에 쓰인 타이포그래피는 팻페이스체입니다. 이 서체는 두꺼운 선과 가는 선의 굵기 대비가 큰 것이 특징입니다. 디스플레이를 위해 크게 쓸 경우에 자주 사용하는 서체입니다. 그럼 왜 팻페이스 서체가 미국 지폐에 쓰였을까요? 휴머니스티, 지오메트릭, 산세리프, 산세리프 라운드, 스크립트 이런 서체가 아닌 팻페이스체였을까요? 돈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들은 왜 펫페이스를 서체로 선택했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풀려면 달러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부터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짧게 요약하면 돈은 물물교환이 불편해 생겨났고, 처음에는 금이 일종의 화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은행이 나타났습니다. 은행은 금을 맡아주고 증서를 써주는 대신, 금을 가지고 장사를 하거나 빌려 주어 이자를 받는 등 사업을 했습니다. 이때의 금 보관증서가 돈과 같은 것입니다. 돈은 이처럼 은행에서 발행한 채권에서 그 역할이 시작되었고, 이후 국가에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돈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국채를 보면 “이 증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금액을 줄 것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든 이 채권을 가지고 다른 물건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증서가 돈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는 국가에서 발행한 일종의 채권과 같습니다. 다만 유통이 쉽도록 가치가 채권보다 훨씬 적은 것입니다. 당시 채권의 그래픽은 달러와 비슷합니다. 미국 건국 초기 이러한 채권이 여럿 발행되었습니다. 주에서 발행한 채권도 있고, 철도회사에서 사업 자금을 모으려고 발행한 채권도 있었습니다. 국책은행이 아닌 개인은행에서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국가 기관이 발행한 채권인 양 기업들이 마음대로 사채를 발행하여 유통시키고 있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사기업에서 발행한 채권이 화폐 가치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것에 불안을 느꼈습니다. 국가가 금융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국채(그림2)를 따로 발행했습니다. 국가에서 발행한 이 유가증권이 공식적인 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돈을 그린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뒷면이 녹색이기 때문입니다. 지폐의 서체를 자세히 보십시오.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둥글둥글하고 장식적인 서체가 과연 미국 정부의 공식성을 대표하는 서체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 서체는 미국사람들이 서커스 서체라고도 말하는 팻페이스 서체입니다. 미국 돈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달러의 서체-펫페이스의 유입
그러면 왜 이러한 서체가 들어갔을까요? 그것을 알려면 당시 미국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오던 시절에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연 안내장을 보면 펫페이스와 그림자 서체 등 여러 타입이 들어 있습니다. 결국 달러의 서체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안내장의 서체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림3)은 앨리스 아일랜드에 내리는 유럽 이민자들의 모습입니다. 자국에서 뭔가 대형 사고를 쳤거나, 가문이 몰락했거나 또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귀족은 귀족 옷차림으로, 서민들은 서민 차림으로 들어왔고, 그들이 쓰던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짐 속에는 옷만이 아니라 보던 책이나 팜플렛도 들어 있었습니다. 유럽의 패션 양식과 시각문화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치 모기가 전염병을 퍼뜨리듯이 유럽문화가 사람들의 짐 속에서 따라와 퍼졌습니다. 문화는 가방 속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의 머릿속에도 있었습니다. 익숙한 글자, 형태, 좋아하는 것을 다 가져왔습니다. 자동차도 싣고 오는 등 유럽 문화가 미국으로 흘러들어 왔습니다.
‘파 앤드 어웨이’라는 미국 이민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장면 중에 누구든 달려가서 깃발을 꽂으면 자기 땅이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때는 미국을 개척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빈 땅으로 이주 시켜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앨리스 아일랜드에 내린 이민자들은 땅을 찾아 이동했고, 그들의 문화와 의복, 제품, 인쇄물이 모두 따라갔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발견했겠지만 니콜 키드먼이 톰 크루즈에게 보여주는 종이는 랜드썬 광고지입니다.(그림4) 니콜 키드먼이 이 광고전단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지고 간 것입니다.
서부 개척이 러시를 이루고, 금으로 거부가 됐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서쪽에서 전해져 왔습니다. 그림5)은 골드러시가 붐을 이루던 시대의 포스터입니다. 이 포스터에 쓰인 글꼴은 이집션 스타일화 된 슬랩세리프 서체입니다. 세리프가 뒤에 각처럼 처져 있는 각세리프입니다. 그림6)는 당시 '빌리 더 키드'라는 희대의 살인범 수배 포스터입니다. 서부 영화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슬랩세리프 이집션 스타일, 펫페이스가 보이시죠? 그림8)도 ‘와일드 번치’라는 도둑에게 현상금을 건 수배 포스터인데, 여기에도 펫페이스가 있습니다.
미국에 ‘웰스 파고’라는 세계적인 은행이 있습니다. 웰스와 파고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광산업을 하다가 함께 은행을 차렸습니다. 그림8)은 당시에 찍은 웰스파고 은행 지점입니다. 간판 서체가 보입니다. 이 서체가 유가증권과 금고에도 쓰인 것으로 보아, 이들이 시각 아이덴티티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9)는 현재 ‘웰스 파고’ 간판입니다.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아이덴티티를 쉽게 바꾸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들은 색상 변화는 주어도 글꼴은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글꼴에서 ‘웰스 파고’는 크고 단단한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연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그림10)은 캘리포니아행 증기선 포스터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서체에 장식이 많아 난잡해 보입니다. 당시 일반적인 포스터 형식으로 서체가 특히 눈에 띕니다. 이 포스터가 유럽에서 건너왔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유럽에서는 왜 이처럼 난잡한 그래픽이 유행했을까요? 그 이유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그 당시 유럽에서 일어났던 사회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펫페이스 서체의 제작 배경
1700년대 말 유럽에는 방적기와 증기기관, 제철을 통해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물건을 많이,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많이 만들어 판 사람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즉, 부르주아라는 신흥귀족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주아는 그림11)처럼 레이스 장식의 옷을 치렁치렁하게 걸치고,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들은 기계화된 공장에서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데려 온 노예들을 부리며 돈을 크게 벌었습니다. 그리고 남아도는 돈과 시간을 놀러 다니는데 썼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주로 유행한 놀이는 연극이나 서커스, 오페라, 뮤지컬을 보는 것이었고, 이러한 놀이는 부르주아들이 치는 최고의 낙이었습니다. 그림12)는 당시의 대형 극장인데, 이런 곳에서 부르주아들이 돈을 펑펑 쓰는 것입니다. 돈이 모이면서 장사꾼이 모이고 장사꾼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공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포스터와 관련된 산업이 크게 성장합니다.
당시는 사진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포스터는 주로 일러스트레이션과 텍스트로 구성되었습니다. 포스터 중에는 크기가 상당한 것도 있었습니다. 당시 싸인페인터라고 불리던 광고업자들은 매우 큰 포스터에 글자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활자는 책에 쓰던 것으로 제일 큰 금속활자가 1인치 크기인 72포인트였습니다. 이렇게 작은 크기의 금속활자로 어떻게 벽을 뒤덮을 만한 큰 포스터에 찍겠습니까? 이전까지 활자는 책에 쓰는 형태로 발전했으나 대형 포스터가 생기면서 싸인페인터들은 글자를 크게 그려내는 레터링을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옛날 간판집 아십니까? 천을 펼쳐놓고 넓적 붓으로 굴림체 같은 서체를 스케치도 없이 한 번에 써내는 그런 분들이 하던 간판집 말입니다. 18세기 유럽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림13)의 가우디 올드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이 타입은 18세기 금속활자로 만든 운문형 서체입니다. 싸인페인터들은 이 서체 타입을 그대로 크기만 확대해서 쓰면 어색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타입은 10포인트 크기로 인쇄 했을 때, 잉크가 거친 종이에 살짝 번져 채워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서체입니다. 크게 확대해서 아웃라인이 명확하게 나오면 별로 매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싸인페이터들은 그대로 그리지 않고 그림14)처럼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슬랩셰리프를 역사가들은 18세기 싸인페인터들이 고안해 낸 타입페이스 형식이라고 말합니다. 많이 쓰다 보니까 더 각진 형태로 발전해서 그림15)처럼 셰리프가 변했습니다. 이것을 이집션 스타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스타일은 스퀘어셰리프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이집션스타일로 더 많이 통용됩니다.
이집션이라는 말이 붙게 된 것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관련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영국과 인도와의 교류를 차단하려고 했습니다. 영국에서 인도로 가려면 지중해 해협을 지나 육로를 거쳐 인도양으로 가는 길이 가장 빠릅니다. 나폴레옹은 이 경로를 완전히 봉쇄하려고 중간 지점에 있는 이집트-시리아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이집트-시리아를 정복하고 나서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유물들을 프랑스로 들여왔습니다. 그렇게 가져온 이집트 물건들이 프랑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집트 물건이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각종 집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이집트 스타일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적대관계에 있는 영국에서도 이집트 바람이 불 정도로 크게 유행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집트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로 이집션이라는 말이 생겼고, 싸인페인터들은 새로 만든 서체에 걸맞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유행에 따라 이집션이라는 이름을 서체에 붙였습니다. 이집트와는 기원이나 형태, 역사 등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이 순전히 상업적인 이유에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처럼 싸인페인팅에서 만든 서체를 서체회사들이 가져오면서 펫페이스체가 탄생했습니다. 그림16)의 펫페이스 서체는 10포인트로 쓰면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크게 확대하면 가느다란 선과 굵은 선이 대비되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글자가 됩니다. 그리고 세리프는 아주 얇아 졌습니다. 당시의 글꼴들은 중구난방 장식적인 글꼴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글자 안에 무늬를 넣기도 하고 삼차원 입체효과까지 넣은 것도 있습니다. 그림17)은 서커스서체인데 이집션 스타일이 과하게 발전하여 이렇게까지 변했습니다. 그런데 화려하고 눈에도 잘 띄어 서커스단 포스터에 적당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서체를 아직도 서커스 서체라고 합니다.
책을 만드는 활자판은 주로 금속판을 사용했습니다. 금속으로 서체를 만드는 것이 힘은 들지만, 나무는 결 때문에 작은 서체를 새기기 어려웠습니다. 금속 주조로 내구성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활자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미국의 다리우스 웰스라는 활자 주조가는 납합금으로 주조를 하다가 갑자기 큰 병을 앓았습니다. 납합금으로 이루어진 금속활자는 A~Z, 0~9까지 있으며, 폰트 사이즈별로 6, 8, 10, 12, 14, 16, 24, 36, 72pt까지 구비되는 하나의 폰트 세트입니다. 72포인트 이상은 만들지 못하는데다가 병이 나기까지 하자, 다리우스는 나무로 활자를 깎아 보았습니다. 나무로 만드니 가벼웠습니다. 이때부터 당시 유행하던 상업적인 대형 서체들을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목각활자인 우든 타입페이스가 생겨났고, 싸인페인터에게 의존하지 않고 목각활자로 상업적인 포스터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든타입페이스가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로 쉽게 활자를 만들면서 온갖 장식을 한 서체가 나오게 되고, 이 때 윌리엄 모리스가 이러 상황을 개탄하며 수공예 가치를 부흥해야 하며 노동의 즐거움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술공예운동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타이포그래피와 사회
글꼴 하나를 가지고 우리는 서양의 그래픽 디자인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별 관심 없이 쓰고 있는 글꼴에 당대의 역사와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에 이러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미국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글꼴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의 마음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 통화로서 세계 사람들에게도 신뢰의 서체로 각인될 것입니다. 1800년대 말 싸인페인팅 글꼴을 만든 사람들의 노력이 오늘날 신뢰의 상징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타이포그래피는 피터 베렌스가 했던 말 “타이포그래피는 그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며 정신적 진보와 민족 발전에 대해 말해주는 증명서”와 같은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