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22
디자이너인 당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젊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위의 모든 당신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이제는 상상력의 시대라는 것을 이 책은 찢어지고 붙여지고 밑줄 박박 그어가며 열변을 토한다.
상상력 공장장 임헌우 교수가 보여주고 들려주고 던져주는 상상력 자극제 한 알을 무뎌진 뇌로 인한 만성적인 ‘일욕’ 부진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 처방한다.
취재 │ 이동숙 기자 (dslee@jungle.co.kr)
뭔가를 강하게 ‘-하라’하는 류의 책은 일단 거부감이 먼저 든다.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책은 일단 제목부터 강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런 거부감을 잠재우는 것은 감각적인 캘리그래피의 제목과 장난스런 드로잉, 그리고 이 단어들 –상상력, 엔진, 캔오프너- 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면 첫 장을 넘겨보자.
필자인 임헌우 교수의 낙서된 프로필 사진이 보인다. 이 낙서된 사진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도 아직도 낙서로 보인다면 당신은 책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고 읽는 동안 우등생의 비밀노트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강조하고 싶은 말은 크게 써놓고, 형광펜으로 밑줄도 긋고, 동그라미 치고, 그림 그리고, 테이프를 찢어 붙이는 등 손 때 묻은 비밀노트가 버젓이 세상에 몸을 까고 누웠다. 커다란 글귀는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고 부드러운 글씨와 드로잉은 내리친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을 실타래 풀 듯 줄줄 풀어 댄다.
이 책은 낙서투성이에, 찢고 오려 붙인 것들 투성이다. 이 프로필 사진의 낙서는 작은 복선을 의미한다. 당신의 자유로운 상상을 위해 규정된 모든 것을 ‘되도록’ 피하려는 필자의 노력은 필자 자신이 디자인을 하도록 했고, 결국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모든 섹션을 들어가기에 앞서 포토콜라주 작업의 인트로를 만나게 된다. 그 섹션의 주요 쟁점을 한 장의 포토콜라주로 표현해 낸 작업인데, 너무 자연스러운 손 느낌의 작업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위해 임헌우 교수는 ‘인위적인 디자인 작업’을 수십번 반복해야 했다고 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낙서, 우연히 멋스럽게 붙어버린 듯한 테이프, 과감하게 찢어도 이 또한 멋진 종이 쪼가리들……자연스러운 한 컷은 절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디자인이 필수적으로 뒤따른 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페이지 넘버가 흔히 자리잡고 있는 바깥쪽 자리에서 안쪽 자리로 옮겨 앉았다. 자리하나 바꿨을 뿐인데, 디자인적인 발상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크기나 색을 바꿔 더욱 튀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저 슬쩍 앞으로 자리만 옮겨 오히려 더 신선한 시도가 되었다. 이와 같은 미묘한 차이를 위한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 또한 필자인 임헌우 교수가 말하는 바다. 그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디자이너는 이미 디자이너가 될 수 없는 것, 1mm의 차이를 알아채는 당신이 디자이너 일 수 밖에 없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Jungle : 세상에 책을 내다.
임헌우 교수 : 2004년도부터 아트북프로젝트닷컴 사이트를 운영했는데, 그 곳에서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는 컬럼을 연재했다. 그러다가 월간 디자인 홈페이지 등에 연재를 했던 것들, 틈틈이 썼던 것들을 모아 올해 3월에 책을 냈다.
Jungle : 디자이너에게, 크리에이터에 고함.
임헌우 교수 : 디자인 회사, 광고 회사를 다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상상력에 초점이 맞춰지더라. 그러면서 디자이너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생겼다.
프로젝트에 있어 디자이너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일수다. 기획자나 카피라이터들은 디자이너와의 원활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서로 오해를 안게 되면서 서로 불신이 쌓이게 되는 것 같다. 디자이너는 기획자나 카피라이트들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까 그런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그런 것들이 안타까웠다. 분명히 다 알고 있는 부분들이 표현에 차이로 인해 오해를 받게 되는 것들은 디자이너들이 발상의 전환만 하면 충분히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디자이너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극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까지 포함에서 쓰게 된 것 같다.
Jungle : 전체적인 편집디자인 컨셉.
임헌우 교수 : 포토 콜라주 방식을 사용했다. ‘서로 다른 사진들을 잘라 내어 붙임으로 인해서 논리적인 연결을 갖기도 하고, 두 개의 대조적인 사진을 부딪치게 함으로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의 개별 사진들의 총합보다 더 큰 이미지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것’ 이 포토콜라주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매치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방향과 연결된다.
또한 요즘 디자이너들이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데, 컴퓨터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좀 더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 컴퓨터 이외에 디자인을 위한 다른 방식을 찾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작업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Jungle : 비밀노트 즉 지극히 개인적인 노트.
임헌우 교수 : 책에 어떤 표시를 한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선입관을 가지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스로 강조하고 싶거나 독자가 꼭 알았으면 하는 것들에 밑줄을 치게 되었다.
강조의 방법은 세가지가 쓰였는데 글씨체, 컬라, 밑줄이 그것이다. 책을 읽을 때 검은 컬러의 텍스트만 있다면 지루할 것 같아서 다른 색으로 포인트를 주었고 자신이 직접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밑줄을 사용했다.
Jungle : 끝이 아닌 끝맺음.
임헌우 교수 : 상상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미래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상상력을 키워드로 한 글은 계속 쓰고 있으며 올 해 말이나 내년 초쯤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듯하다.
Jungle : 에피소드.
임헌우 교수 : 포토콜라주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날로그 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테이프를 붙이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그 안에서 어울림과 자연스러움을 내기 위해 여러 번 작업 끝에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인위적인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그 안에 디자인 적인 감각들이 필수적으로 작용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안에 들어가는 지우개, 테이프 등 소품들을 일일이 따로 사진을 찍고 컴퓨터로 다시 합성을 했다. 주로 포토샵 작업으로 진행했다.
흔히 디자인 서적에서 저자하고 출판사, 디자이너가 서로 매치가 잘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저자의 생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디자인은 전하려고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디자인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쓰게 되고 시간도 그만큼 더 걸릴 수 밖에 없었다.
프로필 사진도 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근엄한 표정의 프로필 사진은 부자연스럽지 않나 해서 사진에 낙서도 하고 해서 반항적인 느낌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사진 위에 ‘X’를 그렸다. 이것은 자기 부정과, 자기 부정이란 곧 나의 생각들과 관념들을 새롭게 한다는 다짐과 같은 것으로 끊임없는 자기 부정은 또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Jungle :페이지 넘버.
임헌우 교수 : 그것도 참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페이지 넘버가 어디 들어가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고소영의 코 위에 점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디자이너가 그러고 보면 참 어려운 직업이다. 그 미묘한 차이, 자신과의 싸움 그 것을 즐기고 이겨낼 수 있어야 하겠다.
Jungle : 책을 읽기 전에.
임헌우 교수 : 이 책에 표제가 ‘당신의 잠재력을 열어줄 캔오프너’ 이다. 알렉세이 브로도비치의 말인데, 학생들의 잠재력을 열어주는 캔오프너 역할을 하겠다는 그의 말처럼 스스로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이 책의 역할도 캔오프너가 되었으면 한다.
상상력은 가르치거나 일순간에 길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책을 통해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스승이 나타난다. 이 책을 보면서도 배울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다가가는 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