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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문화를 이미지화하다, 고강철의 문화관광부 해외 홍보책자

2007-10-16

한국 하면 대부분 석굴암, 경복궁, 남산 등 한국의 풍경이 펼쳐진 어떤 사진을 떠올린다. 실제로 우리 문화를 알리는 책, 관광 상품은 그러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 풍경이, 그 문화재가 우리 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간 전통을 재해석한 작업으로 두 번의 전시를 열기도 한 디자이너 고강철은 이 책의 디자인을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취재ㅣ 권순주 편집장 (sjkwon@jungle.co.kr)
사진ㅣ스튜디오 salt (내지 디자이너 제공)

처음 시작은 이렇다. 문화관광부가 해외에 선물할 책을 기획했고, 이 일은 1년 이상 답보 상태에 빠져 있었다. 대개의 경우처럼 한국 하면 떠오르는 풍경사진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당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다른 형식의 책을 원했고, 그간 지속적으로 예술과 전통을 주제로 디자인해온 디자이너 고강철과 맞닿게 된다. 우리 문화를 현대화한 그의 포트폴리오를 김 전 장관이 높이 평가하면서 이 책은 급물살을 탔다. 디자이너는 이 책이 평소 관심 갖고 진행해온 ‘문화 디자인 작업의 집합체’였다고 한다. 직접 이 책을 진행한 장관은 공무원 사회의 딱딱함을 벗고 이 책의 실험을 지지했다.

이 책의 콘셉트는 ‘선물’이다. 장․차관이 해외를 방문하거나 국내를 방문하는 해외 인사에게 우리 문화나 문화관광부를 알릴 때 사용하기 위한 책이기에 책 자체가 선물이어야 한다는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70% 정도가 선물 기능이고, 나머지 30%에 소개 정보를 담았다. 선물로 형태를 결정지으면서 많은 부분을 수작업으로 진행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총 700부 한정본으로 제작했다.

첫 장을 넘기면 청자로 만든 탈과 삼족오가 시각적으로도 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고강철은 평소 평면의 연속보다는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시도해 왔다.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건 질감, 색감, 형태라는 생각에서였다. 일반적으로 내용을 알리는 이성적 정보만 생각하지만 포스터, 전시문화, 공연 등은 감성적 정보도 중요하다. 이 책도 일종의 시질감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으로, 아날로그적 질감과 감수성을 유지하는 게 작업의 초점이었다.

탈은 서민의 해방구로 양반을 비웃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고, 청자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도예가 안정윤이 강릉관노가면극의 탈을 청자와 결합하여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했다. 관노탈과 청자는 문화적 충돌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런 결합은 잘못 해석하면 인사동 전통상품처럼 돼버릴 수도 있다. “현대인이 연지곤지 찍고 다닌다고 생각해봐라. 오히려 전위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 느낌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 원석을 현재의 시각으로 가공(디자인)하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것이고, 계승하는 것이다.” 전통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변해 왔고, 현재에 맞지 않으면 계승되지 않는다는 게 디자이너의 주장이다.

사실, 한국을 알리는 사진은 뻔하다. 문화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이 책은 사진을 최대한 작게 쓰고 문화를 이미지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디자이너는 자연스럽게 작가 홍지연의 작품을 떠올렸다. 표지 연꽃 그림은 물론이고 내지를 장악하고 있는 회화가 모두 홍지연의 작품이다. 평소 민화를 자신만의 느낌으로 그려온 홍지연은 소재는 전통에서 찾았지만 현대적 재해석에 초점을 두고 작업하며, 이는 전통에 대한 디자이너의 생각과도 같다.

“잘된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디자이너의 솜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고강철. 그래서일까, 그가 디자인한 작업은 대부분 편집은 단순하고 제작은 복잡하다. 소재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70%의 노력을 쏟고 나머지 30%만이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이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작업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 책도 ‘선물’이라는 콘셉트를 정한 후 관노탈, 삼족오, 그림, 사진 등 소재를 구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제작 과정으로 이어졌다. 과정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복잡하지만 본문을 들여다보면 색채가 강한 홍지연의 그림 이외에는 두드러진 부분이 없다. 서체나 레이아웃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형태의 화려함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예술을 소재로 한 고강철의 디자인 작업은 주로 작가의 전시나 공연 포스터, 작품집에만 국한되었다. 새로운 실험이 가능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도 서서히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이번 문화관광부 홍보 책자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의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의 문화 요소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하고 있는 디자이너 고강철의 그래픽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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