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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

2009-04-14

고경숙의 <위대한 뭉치> 는 지난해 열린 CJ그림책상 신간 그림책 부문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된 그림책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 각국의 신간 그림책을 대상으로 진행된 어워드에서 최종 선정된 5권의 그림책 가운데 국내 작가의 작품은 <위대한 뭉치> 가 유일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 실력파들의 기발한 그림책을 제치고 당당히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위대한 뭉치> , 과연 어떤 매력이 숨어있는지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에디터 | 정윤희( yhjung@jungle.co.kr)

익살맞게 생긴 강아지 한 마리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위대한 뭉치> 는 ‘좀더 예술적인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써왔던 재료와 스타일 테크닉을 바꾸고 연구를 거듭하던 중 키우고 있던 강아지 ‘코코’에게서 ‘뭉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 유난히 슬퍼 보이던 코코를 위해 마음을 담아 그려주었던 초상화가 발전돼 <위대한 뭉치> 로 이어진 것이다.
깜짝깜짝 잘 놀라는 ‘놀라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던 ‘뭉치’가 어느 날 쓰러진 놀라 아줌마에게 줄 약을 구하기 위해 ‘칠곡동산’을 여행하며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 <위대한 뭉치> 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그림책의 구성 방식이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배경이 등장하고, 각각의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퇴장하는 지금까지 그림책의 구성방식과 달리 <위대한 뭉치> 는 과감한 시도를 한다. 한쪽 면을 캐릭터의 초상화로 가득 채우고, 다른 한쪽 면은 내레이션과 등장인물 간의 대화가 삽입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구성방식은 자연스럽게 그림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양쪽 펼침 면을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캐릭터의 매력이 한눈에 드러나는 초상화 형식의 그림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편, 등장인물의 초상화 맞은 편에는 방대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도록 만화의 컷처럼 지면을 나누고 캐릭터의 모습을 그려 넣어 글과 그림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했다. 책을 펼쳤을 경우 한쪽 그림에만 색이 들어가 무거워질 수 있고, 글만 채워 넣을 경우 답답해질 수 있는 구성을 피할 수 있었다. 또 앞쪽에 등장하는 뭉치와 놀라 아줌마의 초상화는 왼편에, 칠곡동산에서 만나는 캐릭터들은 오른편에 삽입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뭉치의 가족이 된 요리조리사의 초상은 다시 왼편에 삽입함으로써 획일적인 편집을 분산시키기도 했다. 이야기의 시작과 완결의 의미를 생각한 영리한 구성 방식은 글과 그림으로 가득한 그림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독특한 구성방식 외에도 여타의 그림책과 <위대한 뭉치> 가 차별화 되는 부분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그림책 속 그림들은 화려하지만 차분하고, 귀엽지만 유치하지 않으며 다소 무거운 느낌이지만 너무 가라앉지 않게 그림책의 무게중심을 잡아 준다. 무엇보다 지혜와 용기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위대한 뭉치’를 돋보이게 하는 신비로운 무대와 캐릭터를 멋지게 재현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색감이 큰 몫을 차지한다. <위대한 뭉치> 의 조미료 같은 색깔에 대해 고경숙은 “주된 색깔이 밝지 않아 작게 사용된 컬러 포인트가 유난히 화려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함과 차분함의 공존은 경쾌함과 무거움의 공존과 같은데, 이것이 제대로 표현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설명한다.
다음으로 <위대한 뭉치> 에 등장하는 아홉 개의 캐릭터들은 모두 색다른 개성을 지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슈나우저의 긴 턱과 염소의 긴 눈동자, 그리고 말의 발을 가진 뭉치, 예쁜 인형처럼 생긴 놀라 아줌마, 날렵하고 예쁜 고양이에 아프리카 보디페인팅을 입은 줄넘기 귀신,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알쏭달쏭한 울보 코코, 폴 고갱의 ‘망고를 든 타히티의 두 여인’에서 영감을 얻은 바굼바, 흔한 요리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요리조리사까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뭉치의 여행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별책부록이다. 책장을 모두 넘기면 작은 봉투 속에 <칠곡동산의 비밀> 이라는 작은 책자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뭉치가 여행했던 칠곡동산과 캐릭터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뭉치가 놀라 아줌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는 책 속의 책 <칠곡동산의 비밀> 은 <위대한 뭉치> 의 열쇠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책의 내용이 실재할 수도 있다는 상상과 신비감을 한층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뭉치는 칠곡동산을 여행하며 신비로운 동산들과 다채로운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일곱 번째 동산은 책으로 설정돼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곱 번째 동산에까지 캐릭터가 나오면 약도 있어야 하고, 복잡해져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망설이기도 했고, 더욱 기발하고 재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러다 뭉치가 칠곡동산의 비밀이란 책 한 권을 의지해 여행을 떠났으면서도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 책 속의 책 칠곡동산의 비밀이 뭉치를 신비의 세계로 이끌었고, 신비로운 만남부터 해답까지 모두 책 속에 있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마지막 동산을 책으로 설정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뭉치에게 ‘요리조리사’라는 새 식구가 생긴다. 이야기 말미에 다소 급작스럽게 등장한 느낌인데, 요리조리사의 등장이유는 무엇인가 다소 급작스러운 느낌이라니 재미있다. 요리조리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실패를 거듭하고 다른 장면보다 공이 많이 들어갔다. ‘홀로동굴’ 주변에 사는 새로운 이웃 요리조리사의 등장은 내가 해 놓고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은 영화의 흐름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데, 영화의 결말도 여러 가지가 있듯 그림책의 결말 역시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뭉치와 놀라 아줌마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난 것으로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심코 넘긴 다음 장면에서 요리조리사가 끝이라는 아쉬움의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홀로동굴에 놀라 아줌마와 뭉치만 덩그러니 두기에 외로울 것 같아 등장시키게 됐다.

‘위대한 뭉치’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림에 모든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은 풍부한 시각적 언어로 개인 안에 잠재하고 있는 무딘 감각까지 일어나게 한다. 많은 좋은 그림들과 디자인을 경험하고 즐기고 눈으로 해석하다 보면 내 안의 감각이 계속 발전 하는 것 같다. 그림을 읽고 느끼자.

볼로냐 라가치 그래픽 어워드, CJ 그림책상 신간 그림책 부문 파이널리스트. 이름 짜한 그림책상의 수상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엔 그림책 분야에 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많이 있는 줄 몰랐다.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금메달을 걸기 위해 초재기로 연습하는 분야도 아니고. 그래서 잘 모르겠다. 수상을 했던 <마법에 걸린 병> 이나 <위대한 뭉치> 를 돌이켜보면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를 믿고 내가 보기에 만족스러울 때까지 계속 머릿속의 형상들을 끄집어내고 다듬는 것을 반복했다. 그 중에서도 나를 믿는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림책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작가로서 세운 원칙이 있다면 가장 좋은 재료와 테크닉은 언제나 머릿속에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그려질 때 책의 색감, 느낌 등 전체적 분위기와 책의 판형, 표지, 면지, 세네카, 바코드 위치까지 한번에 스친다. 일단 그것이 정해지면 머릿속의 그림을 표현하기 위한 유화, 과슈, 연필, 먹, 꼴라쥬 등 모든 재료들은 항상 바뀐다. 완성된 작업이 출판사로 가기 전까지 컴퓨터는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위해 원칙을 세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까진 그랬지만 좋은 원칙을 세워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림책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나야 나(who?)> 라는 새 책이 출간 예정이다. 이 책은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한 후, 그것을 오려 재구성했다. <위대한 뭉치> 의 ‘빠주’ 보다 좀더 경쾌하고 심플하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느낌으로 군더더기를 재거하려 했다. <위대한 뭉치> 에 이어 이 책을 계기로 그림책 작가의 활동 범위가 책에만 있지 않다고 느낀다. 디자인이나 회화나 일러스트나 각자의 역할이 있지만 현대는 모든 것이 조화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새롭고 즐거운 ‘아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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