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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떠나는 만화가 & 기다리는 만화가

2009-08-04


서점가는 특정한 장르가 유난히 풍성한 달이 있다. 8월 첫 주, 눈길을 끈 책은 두 권의 만화책이었다. 이우일의 『좋은여행』과 만화가 크리스 웨어의『지미 코리건 :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 (이하 『지미 코리건』)이다. 두 만화가의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이우일은 자신의 소소한 여행 경험을 만화가적인 시선으로 엮어 에세이를 펴냈고, 크리스 웨어는 380페이지에 걸친 정교한 편집 디자인을 바탕으로, 지미 코리건 이라는 화자로 분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담은 그래픽 노블을 완성했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이우일 하면, 신혼여행을 10개월 간 다녀온 뒤 책을 냈던 그의 여행기가 떠오른다. 이제는 고명딸까지 합해 가족 모두가 여행 베테랑이다. 이우일은 떠났다가 돌아오고 다시 떠나기 위해 가방을 챙기는 이른바 ‘유랑형 만화가’다. 반면 크리스 웨어하면, 프랑스의 다큐 프로그램에서 웨어 자신이 말한 인터뷰가 떠오른다. 고양이를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인터뷰를 하던 웨어는 작품에 몰두할 때면 시공간을 벗어나 오직 집(작업실)에서 작업에만 몰두한다고 말하는, ‘칩거형 만화가’다.

두 작가의 그림 스타일은 삶을 닮았다. 『좋은여행』은 에세이다운 유연한 크로키가 돋보이며, 그림은 가족이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잠시 걸터앉은 자리, 이국적인 풍광을 편안하게 그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여행지를 담은 듯한 그림들의 아름다운 색이다. 『지미 코리건』은 작가의 작업방식을 상상하게 만든다. 92년부터 시작한 연작을 묶은 작품으로 작가는 컴퓨터 작업 대신 크기 별로 다양한 모양자를 이용해서 오차 없이 딱 떨어지는 그림을 만들었다. 편집 디자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우일은 익숙한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어 갑갑한 일상을 벗어나 와이키키해변, 도쿄, 그리스, 베트남 등에서 겪은 여행의 추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 여행서는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 등 지금껏 이우일의 책에서 봐왔던 카툰과 스타일을 달리한 80여 컷의 삽화가 하이라이트다. 만화가의 그림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에서 완전히 벗어난 성숙한 그림은 작가의 차분한 글과 어우러져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들추어보게 한다. 자유로운 여행자의 감성이 묻어나는 무심한 터치로 그림체를 달리했지만 만화가 특유의 위트는 잃지 않았다. 오래도록 들여다보면 작가의 여행 추억에 젖을 것만 같은 친숙한 매력이 느껴진다.


작가가 『좋은 여행』에서 독자와 나누고픈 이야기는 베트남도, 캄보디아도, 도쿄도 아니다. 여행 가방을 꾸리는 설렘, 한정 없이 불어난 여행 가방의 무게에 고민했던 경험, 두 손 꼭 잡고 떠난 친구와의 여행이 엉망이 돼버린 경험, 여행지에서의 낮잠 등 여행 하면 으레 떠오르는 기억을 작가는 그리고 썼다. 여행 속 일상을 되돌아보며 여행 자체를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즐거운 여행이 있고, 우울한 여행도 있다. 첨단 도시에 녹아든 여행, 완벽한 적막에 휩싸인 여행, 정글 속 원주민처럼 지내는 여행도 한다. 여러 가지 여행을 하고서 그 끝에 남는 건 무엇일까? 온전한 여행자의 눈빛으로 세상을 떠돌고 싶다는 이우일의 내밀한 고백에 듣는다면 독자는 어느새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게 된다.


종이 인형 같은 캐릭터, 따뜻한 중간색으로 가득한 그림 속에 외로움과 공허를 담아 유머로 버무린 『지미 코리건』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대물림되는 가족사의 비극 자체로 충분히 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표현 기법들과 비선형적 진행, 만화의 관습을 의도적으로 깨버리는 칸 배치에서 독자들은 현실과 상상, 현재와 과거, 이야기와 이야기가 아닌 것들을 스스로 구분하고, 칸들의 순서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이런 독서 과정 속에서 독자들은 숨은 의미와 상징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스토리의 골자는 소심하고 외로운 독신남 지미 코리건이 난생 처음 아버지를 만나러 다른 도시로 갔다가 돌아오는 기이한 여정이다.
크리스 웨어는 만화가이기도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웨어는 『지미 코리건』을 통해 만화는 곧 디자인이라는 기본 개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화시키고, 접속사를 과감하게 한 칸 안에 꽉 채워 넣어 문자를 시각화 하는 등 독특한 표현 기법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그리고 재킷부터 속표지, 면지에까지 책의 내용과 연관된 그림이나 상징, 문구들을 정교하게 넣어, 어느 하나 버릴 것 없게 만들어 놓았다.

『지미 코리건』의 혁신적 그래픽 디자인은 표지에서 극대화된다. 커다란 포스터를 접어서 책을 싸도록 만들어진 표지는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읽어내야 한다. 구석구석에는 책 소개와 지미 코리건 캐릭터 소개, 잘라서 지미 코리건 만드는 종이 공작물 전개도, 지미의 하루 일과와 잡념들, 심지어 이 책에 대한 서평까지 잡다하게 실려 있다. 뒤집어 보면, 지구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오밀조밀한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책의 내용 전체를 요약해 놓은 것이다.


한국어판에서는 작가의 원래 의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국어판 출간의 의의도 버리지 않도록 섬세한 한글화 작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원서의 다양한 서체가 주는 느낌을 살리는 서체를 사용했고, 필요한 부분은 원문을 그대로 둔 채 한글 번역어를 작게 병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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