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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동화책에 철학을 숨기다

2010-01-05

외국의 철학서 중에는『소피의 세계』라는 책이 있다. 한국에서도 청소년 필독서로 불릴 만큼 유명한 이 책은 소피라는 14살짜리 소녀가 철학을 배우는 과정이 담긴 일종의 철학 기초이론서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의 사고를 유연하게 해줄만한 철학 창작동화는 없을까? 물론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읽어줄 수 있는 ‘우리 철학 동화’ 말이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자료제공 ㅣ 기탄교육


철학에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철학 동화가 있다, 없다?’라는 질문에는 답이 있다. 궁금한 것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어린 철학자들의 무한한 호기심에 대한 답을 줄 동화책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글에서 철학 동화책을 주목한 데에는 함의된 의미보다 동화책 속에서 소세계를 만든 일러스트레이션이 한몫을 톡톡히 한다.



출판사 기탄교육에서 52권 전집으로 선보인 철학동화는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궁금해하고 고민하는 문제들을 철학적인 해법으로 풀었다. 전집 속에 등장하는- 동화책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들만 훑어봐도 눈에 익은 이름들이 속속 보이는데, 그 안에서도 15권 『동식이 똥 푸는 날』은 남다르다. 정감 넘치는 동화와 철학이 만나는 자리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지회가 서있다. 어른이 보기에도 향수에 젖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 책은 엄마와 아이가 한 권을 동시에 읽으면서도 나이 대에 따라 달라지는 재미와 깊이을 느낄 수 있다.


『동식이 똥 푸는 날』에서 말한 독서의 연령대는 4세~8세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나이여하를 뛰어넘어 눈길을 잡아 끄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날 수 있다. 내지는 다채로운 컬러로 수놓아져 있고 하드커버의 양장본(228x270mm)으로 만들어진 동화책은 40~44쪽으로 꽤 묵직하다.


일반적인 동화책에 비해 쪽수가 많은 이유는 동화책 사이사이에 철학적인 질문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윤지회는 동화책의 삽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스토리와 철학을 책 안에 고스란히 녹여야 하기에 어려움이 녹록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그녀는 수준 높은 그림을 동화 속에 완전히 녹여 철학과 재미를 동시에 갖는다. 전집을 찬찬히 살펴보면 수채화, 유화, 수묵채색화, 아크릴화, 콜라주, 인형제작, 컴퓨터 그래픽 등 다양한 그림기법과 소재를 사용된다. 윤지회는 수묵채색화로 과거의 회상을 뒷받침하는 고전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책을 펼치면 이발소와 슈퍼의 옛이름인 ‘이용소’와 ‘믿음상회’가 보인다. 집들은 한옥의 멋이 그대로 산 그 시절 그대로이고 연탄집, 리어카, 포대기에 싸여진 아기와 60년대 의복 차림새까지 고전미가 있다. 동화책에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새긴 윤지회의 그림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점은 여백이다. 책의 공백에 그려진 두어 개의 선만으로 독자는 60년대 울퉁불퉁했던 비포장도로가 고스란히 느낀다. 그리고 먼발치에 있기에 손톱만하게 작게 그려진 산과 태양, 길가에 우뚝하니 심어졌기에 크게 그려진 아름드리 나무는 원근법이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책의 지면은 잘 짜여진 배치로 인해 풍성하게 보인다. 모든 그림이 그러하겠지만, 유심히 볼수록 일러스트레이션 안에는 허투루 지나치면 안될 스토리라인이 눈에 띄니 그녀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진한 맛이 베어난다.


책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60~70년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똥을 푸는 아저씨가 소재로 엮어졌다. 주인공 금순이는 엄마의 심부름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식이네 집에서 똥을 푸는 아저씨를 보게 된다. 금순이는 냄새 나고 더러운 모습의 아저씨를 꺼리지만, 가만히 지켜본 똥 푸는 아저씨는 인사성 바르고 근면· 성실한 태도로 금순이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금순이만 몰랐던 아저씨의 성실함은 이미 동네사람 모두가 알고 있고 입이 마르게 칭찬한 본연의 성품이다. 금순이는 잠시 잠깐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친다. 일견 단순하게 보이는 책의 줄거리지만 그 안에는 본질적인 질문이 무수히 나오면서 철학은 천천히 다가온다. 사람으로 살면서 지켜야 하는 품성을 동화작가 민현숙과 일러스트레이터 윤지회가 만든 『동식이 똥 푸는 날』은 간결한 문장과 깊이 있는 그림으로 묻는 식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고 싶은 독자는 우선 이 책을 펼치는 것이 첫 번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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