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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소박하고 소중한 사진집

2010-02-25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한 가장은 갓 태어난 날부터 시집가는 순간까지 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이 넘쳐 흐르고, 30여 년 동안의 우리네 평범한 살림살이가 곳곳에 들어찬 『윤미네 집』은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되새김 해볼 수 있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사진집이다.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자료제공 │ 포토넷

“왜 장가 못 가느냐고 주변에서 핀잔 받던 내가 어느 사이엔가 1녀 2남의 어엿한 가장이 된 것이다. 아이들을 낳은 후로는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고 그것도 부족하면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가며 그야말로 인간 본래의 감성대로 키웠다.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온 집안 가득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몰래 아이들에게 달려가 함께 뒹굴기도 일쑤였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다. 나는 이런 사람 사는 분위기를 먼 훗날 우리의 작은 전기傳記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만 돌아오면 카메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책 서문에서 故 전몽각 선생(2006년 작고)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끈기가 남다른 그는 큰 딸 ‘윤미’가 태어나서부터 시집갈 때까지 26년 동안(1964년부터 1989년까지)의 모습을 포착해냈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이다.

이 책은 담고 있는 내용이 그러하듯, 단아한 느낌의 앨범 같은 외양을 가지고 있다. 사실 초판본은 사진가 주명덕 선생의 편집으로 1990년 약 1,000부가 출간되었으나 쉽게 서점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책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을 하고 헌책방을 뒤지는 사람도 많았을 정도라고. 세련되고 화려한 이미지의 사진집들로 가득한 서가에서 어쩌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법하게 이 책은 평범하다. 특별히 빼어난 구도나 번쩍이는 아이디어, 파격적인 이미지나 선명한 화질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책에 실린 거의 모든 사진은 흑백이고 그나마도 더러는 구겨지거나 흐릿하다. 하지만, 그저 남들같이 살아온 시간일지라도 차곡차곡 담아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아버지가 일궈낸 것은 평범 그 이상의 성공이다. 그것은 이 한 권의 사진집에 청년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길러 출가시키고, 손자 손녀를 맞고, 마침내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삶을 마감하는 인생의 흔적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 까닭이다. 찌그러진 냄비에 밥을 나누어 먹고, 좁은 단칸방에서 함께 잠을 청하며 간혹 고단한 표정이 비치는 일상 가운데서도 『윤미네 집』에는 언제나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그의 피사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발생하는 온기가 사진을 통과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족들에 대한 애정뿐만이 아니라, 60년대 이후 약 30년 동안의 우리네 삶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특별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 뿐 아니라 서울이 변해가는 모습까지 함께 관찰할 수 있다. 전몽각 선생과 막역하게 지냈던 선우중호 광주과학기술원 원장은 “『윤미네 집』은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성을 지니게 된다. 60연대에 우리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중산층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는 이러한 중산층의 삶이 어떻게 변화를 이루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기록물로서 매우 가치 있는 사진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더불어 20년 만에 복간된 『윤미네 집』에는 초판본에 실렸던 사진뿐 아니라 전몽각 선생이 작고하기 전 정리했던 ‘마이 와이프My Wife’ 사진과 원고가 덧붙여졌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사랑하는 아내를 담았던 사진을 모아 사진집으로 묶는 것이었다고. 5권의 파일에 꼼꼼하게 정리된 ‘마이 와이프 My Wife’ 사진은 췌장암으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에서도 암실에서 작업한 것인데, 그 중의 일부가 전몽각 선생이 아내에게 남긴 글과 함께 이 책에 실린 것이다. 토목공학자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키워낸 故 전몽각 선생은 바쁜 일상에도 결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아마추어 사진가로 또 생활인으로서 성실하게 산 그가 남긴 것은 그저 한 권의 사진집이 아니라 행복과 사진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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