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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영국 디자인 속 ‘펭귄’의 발걸음

2010-04-02


1935년 펭귄출판사에서 첫 문고판이 나온 이래 그들이 만들어낸 책 표지들은 영국 문화의 일부로 디자인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그런 펭귄출판사의 70년 역사를 북커버로 돌아본 책이 출간돼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1935년 설립된 펭귄북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대규모 출판사였다. 존 알렌과 리처드 레인 알렌이 세운 펭귄북은 보들리 헤드(The Bodley Head)의 임프린트로 시작해 1년도 안 되어 독립 출판사로 발전했다. 이후 펭귄의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 때마다 그들이 만들어낸 책과 디자인은 영국 문화의 일부이자 디자인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디자인을 안다는 이들에게 펭귄의 디자인 역사는 흥미진진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펭귄의 디자인 역사는 그래픽 디자인과 평행관계를 이루며 진행되어 왔다. 전략적 사고, 시각적 감각, 그리고 이들을 통합해주는 유기적 능력과 손기술 등 펭귄의 역사가 곧 20세기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였다.
저자 필 베이스(디자이너, 디자인 비평가)는 펭귄의 책 표지를 결정하는 데 기여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역할, 이를 둘러싼 영국의 전반적인 출판 상황, 표지 디자인의 발전상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얀 치홀트, 한스 슈몰러, 저마노 파세티, 로멕 마버, 앨런 올드리지 등 오늘의 펭귄을 있게 한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의 연대기와 그들이 만들어내 책들을 상세히 들여다보면서 펭귄이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했는지 밝혀낸 것이다.

초기 펭귄의 표지 디자인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쇄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디자인이라는 말 대신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포스터 도안을 뜻하는 상업예술이라는 용어가 통용될 때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부흥하면서 디자인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는 북 디자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선 표지 디자인이 내지로부터 분리되어 전문화되었다.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전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가가 고용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인쇄기술과 타입세팅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출판인은 물론 독자들의 눈높이도 한층 달라졌다. 이제 책은 단순히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책에서 디자인이 갖는 중요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책의 디자인과 표지의 느낌은 책을 잘 팔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자, 한 출판사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펭귄 북디자인』은 2005년 앨런 레인 더 펭귄 프레스에서 발행한 『Penguin by Design: A Cover Story 1935-2005』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2005년은 펭귄이 창립 70주년을 맞은 해였다. 당시 펭귄은 70주년을 기념해 60권의 문고판 총서를 60펜스에 판매했던 60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70권으로 이루어진 문고판 총서 ‘펭귄 70’을 발간했고, 창립자 앨런 레인의 생애를 기록한 『Penguin Special: The Life and Tomes of Allen Lane』(제레미 루이스 지음)을 출간했다.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과 런던의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펭귄 디자인 70년> 과 <현대 영국을 디자인하다> 라는 이름의 전시를 열어 자국이 낳은 세계적인 출판사의 70주년을 축하해주었다. 펭귄이라는, 출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출판사를 회고하는 행사의 키워드를 ‘디자인’으로 잡은 것이었다. 임프린트 숫자만 해도 50여 개를 헤아리는 거대 출판 그룹의 70년 역사가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는 사실은 분명 출판 및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었다.

『펭귄 디자인북』은 지난 70년 동안 펭귄은 물론 20세기 디자인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500개가 넘는 표지 이미지가 우선 눈에 띈다. 필 베인스는 지난 70년간 펭귄이 출간한 책의 권수와 디자인의 변화상을 고려해 펭귄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구축하고 있는 두 개의 아카이브를 꼼꼼히 뒤져 최종 선택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북 디자이너이자 이미지 연구가인 데이빗 피어슨과 펭귄의 현 직원들, 그리고 과거 펭귄 책을 디자인했던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70년간 펭귄의 오늘을 있게 만든 얀 치홀트, 한스 슈몰러, 저마노 파세티, 로멕 마버, 앨런 올드리지, 데이빗 펠햄, 데릭 버솔, 데이빗 피어슨 등 ‘펭귄맨’에 얽힌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펭귄 하면 떠오르는 고전적 형태를 완성한 얀 치홀트와 문고판에 대한 시각적 스테레오타입이 된 마버 그리드를 탄생시킨 로멕 마버, 책의 주제로 단숨에 육박해 들어가는 박력 있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데릭 버솔 등에 얽힌 이야기는 출판과 디자인에 종사하는 이들은 물론 훗날 근사한 편집자와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소중한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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