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04
폴란드!
이 이름 끝에서 연상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에게 있어서 ‘폴란드’는 다소 낯설다. 더욱이 폴란드가 포스터의 왕국이라 불린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한다. 얼마 전 열렸던 20세기 포스터대전에서 폴란드의 포스터가 한 점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사실, 폴란드는 2년에 한번씩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으며,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산하의 포스터 박물관이 설립되어 있고, 폴란드 포스터 예술학교가 있을 만큼 포스터문화가 발달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폴란드의 포스터로 무엇이 있으며, 어떤 작가들이 있고, 그 그래픽적 특징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가 폴란드의 포스터를 반드시 봐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포스터들도 충분히 많지 않은가? 그 이유는 다른 포스터에서는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폴란드의 포스터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들은 세계적인 것, 강력한 것, 위대한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고, 멀리 떨어져있는 것, 이국적인 것, 진지한 것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기 쉽고 아이디어적이기 보다는 깊은 생각을 하게 하거나, 심오한 통찰을 하게 하거나, 진실함을 촉구하는 폴란드의 포스터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한 답일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폴란드의 포스터를 반드시 봐야하는 그 이유, 다른 포스터에는 없는 그 어떤 것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 이정현 기자/tstbi@yoondesign.co.kr
+ 그림설명: Polish Poster from the Denis Canteux Collection. Avignon'99, Mieczystaw Gorowski, 1999
폴란드에서는 문화와 포스터가 서로 맞물려 있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온전하게 보존된 민족문화의 특성이다.
폴란드의 포스터는 1890년부터 1905년 사이의 조직화된 움직임에 의해 시작되었다. 경제적 문화적 공동체는 그들의 활동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포스터의 표현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표현에 있어서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에 반대하였고, 전통적인 형태를 지닌 포스터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초기의 포스터는 폴란드의 민속아트를 드러내게 하였으며, 장식적인 색의 패턴과 율동감있는 선의 흐름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주제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위와 같은 디자인으로의 접근은 반세기에 걸쳐 그들의 후계자(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공유되어졌다.
1919년과 1939년 사이 폴란드의 포스터는 큐비즘, 구성주의, 미래파, 그리고 초현실주의와 같은 진보적인 유럽의 예술 운동의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 폴란드의 아티스트들은 그래픽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화가, 건축가, 조각가 그리고 영화제작사까지 그 활동 범위가 다양했다. 특히, 이 때 바르사뱌는 폴란드의 포스터 의 중심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잘 알려진 포스터의 대가로는 파리에서 폴란드로 아트데코와 모던 디자인의 이념을 가져온 Tadeusz Gronowski를 들 수 있으며, 그를 포함한 바르샤바 예술 대학의 아티스트들은 명확한 레이아웃, 그래픽 상징의 표현에 관한 디자인 교육을 하였으며, 이는 후에 포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로 활용되었다.
또한, Jan Lenica와 Wojciech Fangor은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의 자유로운 발상과 강한 색상의 덩어리 표현과 텍스츄얼의 사용을 통해 포스터 디자인에서 회화적 기법을 소개하였다.
포스터 표현에 있어서 이와 같은 기법들은 폴란드 포스터 예술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교육되고 있으며, 이는 삶과 인간의 깊은 생활의 진실한 면을 표현하는데 그 진지함을 더해주도록 하였다.
2차 세계대전 후에 폴란드는 점차적으로 포스터를 예술에서 회화만큼 중요한 위치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영향으로 인해 정치적인 프로파간다 포스터들이 그려졌고, 한편으로는 문화적인 주제, 특히 영화 포스터들이 제작되었다.
영화포스터는 차츰 발전되었다. 초기의 영화포스터는 영화의 한 장면 중의 한가지를 그래픽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아티스트들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스토리를 함축하여 보여 줄 수 있는 비주얼 메타포를 사용하거나 영화의 내용을 잡아줄 수 있는 요소들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트랜드는 다른 분야에도 확산되었고, 포스터는 창의적이며 예술적인 표현을 위한 출구가 되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진실함을 촉구하는 그래픽적 특징으로 인해 폴란드의 포스터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전후 정치적 포스터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Tadeusz Trepkowski는 1952년에 제작된 반전포스터포스터가 유명하다. 내려오는 폭탄의 실루엣 안쪽의 폭발하는 건물등과 단 한마디 ’Nie!’(no!)로 표현된 이 포스터는 반전포스터의 대표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1960년대는 간단명료함, 순수한 그래픽, 그리고 감성적이지 않는 표현으로 정리되었으며, 비평가들은 이러한 표현의 양식을 폴란드 포스터의 황금기로 정의하고 있다.
1966년 이후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가 바르샤바 국립미술관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이는 전 세계 50여개국의 디자이너들이 출품한 작품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공모전으로 명실공히 중요한 국제 포스터 콩쿨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