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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캘린더, 디자이너를 말한다.

2003-11-26



캘린더는 집안 어딘가 혹은 사무실 책상 위에 하나쯤은 꼭 놓여지는 필수적인 생활 소품이다.
하지만 일년동안 시시각각 스케줄을 보여주는 도구를 넘어서, 디자이너에게는 일상공간을 꾸미는 장식적인 의미와 더불어 '나만의 캘린더'는 디자이너의 스타일과 생각이 살아있는 하나의 작품이자 포트폴리오가 된다. 이번 그래픽노트에서는 다음주에 이어 디자이너의 긍지와 역할이 돋보이는 특별한 캘린더 프로젝트 사례 2가지를 소개한다.

취재 | 김미진 기자(nowhere21@yoondesign.co.kr)


디자이너 민달식에게 캘린더는 인간과 일상의 미의식을 결정하는 시각이미지를 담고 있는 중요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해 동안 고민해온 디자인 결과물을 정리해서 다음해 달력으로 표현한다. 즉, 논리적으로 생각해 온 여러 가설과 머리 속의 개념들을 조형적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이러한 이미지들을 달력 안에 담아 한해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때문에 캘린더는 디자이너로서 갖고 있는 생각을 펼쳐나가는, 일종의 확인작업으로서 튜닝과정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의미 외에도 또 한가지 원칙은 한정본으로 적은 수량만 제작해, 고급 디자인상품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매해 1회용으로 버려지는 캘린더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긍지를 지키고, 아름다움의 재발견을 공유하겠다는 취지아래 그의 캘린더는 소장가치를 지닌 고급디자인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최소한의 기능만 충족시키고 시각적으로 질이 낮은 저가의 상품이 만연한데 반발해, 과거 수공예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윌리엄 모리스와 다른점이 있다면 기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의 특별한 캘린더는 2002년을 시작으로 올해 3번째 캘린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의 작업은 논리적으로 생각해 온 여러 가설과 개념적인 이론들을 도상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2002년 제작된 첫번째 캘린더의 컨셉은 다소 관념적이다. 인간 그리고 자연... 세상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이면서 보이지 않는 '질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외부와 인터렉션을 통해 나름의 간격을 갖고 자기를 유지, 확장시켜 나가는 시스템을 도상으로 표현하였다. 좋은 반응을 얻은 4종의 달력은 모두 아티누스에 특별 전시되기도 하였다.
















캘린더 이미지로 사용된 다양한 풀잎들은 작가가 직접 채취해서 작업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다채로운 풀잎들이 두메 산골과 같은 오지에서 따온 잎사귀가 아니라 도심 집근처 100m 이내에서 채취되었다는 사실.

디자이너 민달식은 우리 가까이 이렇게 다양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요즘 도시에 사는 디자이너가 상상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어쩌면 자연과 함께한 경험이 빈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02년 달력에 사용된 유니버스체(Universe Light, Medium, Bold, Extrabold)는 활자 가족이 상당히 수리적으로 정리된 서체이다. 이성적 사유를 표현하는 기하학적 도상들에 어울리게 수리적 질서가 담긴 서체를 사용하였다.

반면 2004년 캘린더에는 바우어 보도니체(Bauer Bodoni)가 사용되었다. 이 서체는 로마시대부터 내려온 활자의 발전인 모던 로만계열 활자를 재해석한 활자로서 서체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때문에 수리적 체계뿐 아니라 인간의 문화와 감성적 측면도 고려해 어느 정도 검증된 서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풀잎의 질서에 상응하는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서체이다.



전체적으로 빼곡히 날짜가 적힌 캘린더 하단에는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해 또다른 상상으로 안내하는 유희적인 이미지가 있다. 인류에게 꼭 필요한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 하트 안에는 눈의 위치를 다르게 넣은 시각 단서를 통해 두마리의 새가 앞뒤로 감싸고 있는 형상임을 유추할 수 있다.

2001년 민클라라 설립을 기념하여 99년부터 제작하려던 이 21세기 캘린더는 시장성 때문에 올해 말에야 제작이 완료되었다. (제자들이 21세기 캘린더의 날짜를 교정해 주었다.) 현재 동경 교갤러리와 특별판을 제작, 판매하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글 : 운영하고 계신 민클라라는 어떤 기업입니까?
민달식 : "우리 삶을 위한 디자인" 이라는 모토로 설립된 회사입니다. 2001년 1월 1일 문을 연 이래, 수출용이나 미술관, 아트샵 등에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카드 50종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고, 앞으로 외국에서 열리는 박람회 전시를 통해 수출량을 늘려갈 생각입니다. 대중이 합리적 가격으로 고급스러운 디자인 문화상품을 접할수 있도록 개발해 제작할 예정입니다.


정글 : 캘린더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민달식 : 디자이너로서의 존재감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조선시대 사농공상적 사고가 남아있어 디자이너, 회사 대표 그리고 선생님으로 접근할 때 많이 다른 것을 느낍니다. 디자이너로 활동하기에 국내 환경이 척박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는 디자이너이고 싶습니다.

달력의 순기능적 측면은 날짜를 보는 것 뿐 아니라 일상 가까이에서 예술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활소품으로 쉽게 접근하지만, 달력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소장가치가 느껴지는 디자인상품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제가 제작한 캘린더는 국내 전문가들이나 특히 일본이나 유럽의 사람들에게 호응이 좋은 편이지요. 한정본으로 적은 수량만 제작해서 한 해 판매하고, 10~20부 정도만 남기고 재고는 폐기합니다. 그만큼 소장가치를 높이고, 다음해 캘린더는 2배/5년후부터는 3배이상 가격으로 판매/전시합니다.


정글 : 판형이나 사용된 이미지들이 독특한데, 제작과정에서의 유의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민달식 : 보통 초년생 디자이너는 캘린더 이미지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인쇄라든가 필름출력을 진행하는데 저의 경우 캘린더 이미지나 레이아웃이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판형과 재질, 인쇄 형태를 먼저 정하고, 그에 적절한 기법과 발색상태에 맞춰 조형적 이미지를 담습니다. 가장 크게 제작된 벽걸이용 캘린더는 4Χ6전지사이즈에서 인쇄가능한 크기를 최대한 사용하려 했습니다.

제작과정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소구대상을 먼저 정한다. (예, 미술관이나 아트샵 판매용)
2. 인쇄 용지와 판형을 정한다.
3. 제본과 포장을 정한다.
4.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정된 공간에 담을 내용을 정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해 고민했던 조형 형식을 캘린더 그래픽으로 사용합니다.


정글 : 앞으로의 계획은?
민달식 : 앞으로 더욱 큰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질서의 큰 테마와 패턴화 과정 등 머리 속의 개념들이 어느 정도 폼이 잡혔지만 구체화 과정은 아직 미흡합니다. 몇 년후,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가설과 생각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시각커뮤니케이션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BEAUTY of KOREA'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미학 중에서 '한국성'은 아직 깊이 있게 연구되지 못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공유할만한 우리 문화 상품도 부재합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우리 전통의 흔적과 상징을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한국성'이란 것은 전통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재해석을 통해 오늘날의 사고와 기술이 덧붙여져 재장초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캘린더는 앞으로 매년 계속 작업해나갈 것입니다.


인터뷰 | 김미진 기자 (nowhere21@yoondesig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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