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8
월, 화, 수, 목, 금, 토, 일 그리고 1부터 31까지의 숫자. 한 해를 보여주는 데 필요한 그래픽적 요소다. 이를 통해 전달해야 할 내용은 새롭게 맞이 할 일년, 열 두 달, 삼백 육십 오일을 요일에 맞게 보여주는 것. 휴일을 체크하는 것은 필수다.
1월9일부터 2월25일까지 삼원 페이퍼 갤러리(www.papergallery.co.kr)에서 열리고 있는 ‘2006 해외 그래픽 디자인 인쇄물 특별전’에서 180여 종의 그래픽 인쇄물뿐만 아니라 40여 종의 캘린더가 전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 곳에서 만났던 2006년도 캘린더를 공개한다.
취재 | 김유진 기자 (egkim@jungle.co.kr)
먼저 일본 OJI 사에서 제작된 캘린더들을 만나보자. 이들은 각각 주제를 갖고 있다. 전체적으로 크기는 세로가 가로의 약 두 배 길이가 되는 길쭉한 판형을 사용했다. 전시에서 소개된 것들 중에서 보는 재미가 있는 몇몇 캘린더를 소개한다.
각 월별로 동물을 담은 일러스트 작업으로 꾸며졌다. 일러스트를 작업한 카츄이치의 그림들은 직선과 원으로 대표되는 곡선을 잘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기린이나 오랑우탄의 경우에는 직선을 위주로 종이 접기 느낌이 나는 일러스트 구성을 보였으며, 돼지가 그려진 4월 달의 경우에는 원으로 구성하여 부드러우면서도 절제감 있는 표현을 구사했다.
직선과 곡선으로 대두되는 일러스트의 특징은 캘린더를 구성하는 월, 일, 요일 등에도 적절하게 디자인적 요소로 사용되었다. 왼쪽 상단에 비스듬하게 표시된 월은 종이 접기의 톤이 나는 타이포를 사용하여 직선의 깔끔함을 살렸고, 일요일 또는 휴일에는 또 다른 디자인 요소인 원으로 간단하게 표시했다.
컨셉으로 접근한 깔끔한 그래픽이 신선한 느낌을 주는 캘린더다.
‘올해의 레코드’라는 이름을 어떻게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했을까 궁금했던 캘린더다.
캘린더의 디자이너인 슈이치 요시다는 각 달의 분위기에 맞는 레코드의 제목을 분위기에 맞게 타이포로 나타냈고, 달마다 어울리는 바탕 컬러를 두어 허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을 꽉 채워 넣었다.
제목 하단에는 레코드와 관련된 간략한 설명을 두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명곡 ‘Girl from Ipanema’는 보사노바라는 장르의 분위기에 적절하게 청초하고 은은한 느낌을 주는 타이포와 바탕색상으로 9월의 분위기를 표현하였으며, ‘Summer Place’는 높은음자리표, 셋잇단음표 등 악보의 구성요소를 타이포에 넣어 여름의 밝고 화려한 분위기를 냈다. 베트 미들러의 ‘Wind beneath my wing’은 날개의 느낌을 살렸고, 조지 벤슨이 부른 ‘This masquerade’는 다채로운 색깔을 사용했다.
영화
<졸업>
에 사용된 Mrs. Robinson은 딸의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로빈슨 부인의 야누스적인 분위기를 너무 현란하지 않으면서 화려한 느낌의 타이포로 활용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에릭 클랩톤의 ‘Tears in heaven’에서 느껴지는 이중적인 느낌, 즉 슬픔이 절제되어있는 듯한 첫 행 ‘Tears in’ 부분과 천국의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아래 행 ‘Heaven’의 부분이 잘 어우러졌다.
졸업>
시네마 이미지는 이름 그대로 영화 속의 이미지를 차용한 일러스트를 캘린더 이미지에 넣은 것이다. OJI사에서 제작하고 Jacket Inc.에서 디자인 한 이 캘린더의 구성에는 눈을 번쩍 띄울 만한 특별한 요소는 없지만, 차분한 일러스트가 밋밋한 캘린더의 구성과 조화를 이룬 다는 점에서 볼 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일본 캘린더에서 전지현과 장혁이 주연한 우리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는 점. 두 주인공이 여행을 가서 바람을 느끼는 장면에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넣었다.
신문에 있어야 어울릴법한 일러스트를 넣은 캘린더도 있다. ‘화장실에 걸어놓고 사용하세요’라는 표제를 단 이 캘린더는 일본, 지구, 환경에 대한 시사적인 메시지와 일러스트를 월별로 소개하고 있다. 2월에는 지구온난화 문제, 4월에는 유해물질 노출에 노출되어있는 환경, 7월에는 교육에 있어서 과도한 경쟁사회에 노출되어 있는 일본의 현실을 짚어주고 있으며, 9월에는 GDP가 실제 국민들의 삶의 질과 과연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날짜 밑에 간격을 두고 각 3줄의 선을 넣어 메모나 기록에 활용하도록 했다.
동덕여대 산업디자인과의 2,3 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원더 프로젝트 (Wonder Project)에서 선보인 캘린더들도 소개한다. 전시의 주최측인 삼원 특수지에서 수입한 종이들을 활용한 캘린더들이다. 전반적으로 일러스트를 활용하여 아기자기한 그래픽들을 선보였다.
거짓말을 해서 길어져 버린 피노키오의 코가 이 캘린더의 테마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코가 줄어들게 설정한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각 월별로 긴 코라는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한 일러스트, 무지개 색깔로 배치한 칼라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11월에 적혀있는 “행복의 원칙 세가지, 1. 어떤 일을 할 것, 2.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3.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 Kant” 처럼 일러스트와 함께 들어간 간단한 경구를 곱씹어 보는 것도 이 캘린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일 것이다.
요일의 안내 없이 일요일과 휴일을 빨간 색으로 처리해 일러스트를 있는 그대로 잘 살렸다는 느낌이다.
각 요일을 긴 화분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각 달 별로 개구리, 무당벌레, 애벌레 등 분위기에 어울리는 요소를 넣었고, 요일 별로 묶인 화분의 높낮이에 변화를 주어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이미지를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튀지 않는 종이 색깔이 차분한 느낌을 주며 동시에, 일러스트가 주는 자연의 느낌을 잘 살렸다. 매 월 디자인 요소를 활용하여, 뒤에 날짜별로 간단한 메모를 적을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였다.
‘홀릭’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캘린더는 위의 사진과 같이 1월은 게임, 3월은 쇼핑, 6월은 수다 등 월 별로 주제를 정해, 각 테마에 맞는 일러스트를 캘린더 전체에 적절하게 배치했다.
주제는 월을 표시한 숫자만큼 큰 폰트로 명시되어 있어 있을 만큼 강조되었는데, 이는 한달이 완벽한 하나의 컨셉 일러스트가 되도록 작업한 것이다.
파스텔톤의 느낌을 주는 컬러가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일러스트를 차분하게 끌고 가면서, 동시에 일러스트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역시 뒷면에 일별로 간단한 메모가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이탈리아 내에서 여러 예술진흥 행사의 공식 파트너로 나서면서 확장을 꾀하고 있는 파브리아노사의 2006년 캘린더다. 캘린더의 이미지는 르네상스 과도기의 대표적 화가인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작품이다. 당시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화려한 색채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금, 은색의 조화가 두드러져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고급종이의 질감이 중후한 느낌을 주는 캘린더. 날짜는 세로로 나열하는 형식이며, 날짜 앞에 요일의 알파벳 첫머리를 넣어서 표시했다.
이탈리아의 GARDA caritere에서 제작한 캘린더. Alberta Tiburzi의 사진이 캘린더의 이미지로 구성되어있으며, 날짜는 사진 하단에 일렬로 배치하였고, 요일은 컬러를 넣어 구분하였다.
일반 탁상용 캘린더와 다른 점은 끈을 이용하여 세울 수 있도록 조정했다는 점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과 간결한 구성이 어울린다.
왼쪽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Sappi에서 제작한 캘린더다. Tim Flach의 사진이 일별로 나눠놓은 구간에서 4칸을 할애해 소개되고 있고 나머지는 매일매일 숫자와 요일을 적어서 통일 감을 주었다. CD 케이스를 활용하여 탁상용 캘린더로 사용하도록 제작되었다.
오른쪽의 캘린더는 특수소재 회사로 유명한 DUPONT사의 부직포 사업부에서 제작한 캘린더다. 하단에 로고가 박혀있는 Tyvek라는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이 재질감은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는 손으로 한번 만져보는 것이 낫다. 폴리에틸렌을 혼합한 합성지로 언뜻 보기에는 한지 느낌이 나는 정도다. 찢어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는 특성을 지닌다.
이 종이의 느낌으로는 정밀한 인쇄가 어려워 구성이 덜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는 마블링을 캘린더 이미지로 넣었다. 일렬로 나열한 날짜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느낌을 살려 변화를 주었다.
전시된 캘린더들은 대부분 뛰어난 그래픽이나 신선한 아이디어보다는 일러스트 또는 소재의 활용 측면에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디자인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며 캘린더를 제작해온 독일의 Zanders 사가 올해는 캘린더를 제작하지 않아 Zanders사의 새로운 캘린더는 만날 수 없었지만, 그간의 작업물들을 모은 도록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전시를 주최한 삼원특수지가 종이를 수입하고 취급하는 회사라는 점은 다양한 질감의 종이를 만나보는 매력을 안겨줬다.
소개된 2006년 캘린더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예년 캘린더들과 다양한 그래픽 인쇄물을 전시하고 있으니, 관심이 생긴다면 직접 눈으로, 손으로 관람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