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08
<맛있는 캐릭터 트랜드>
독자 여러분들~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태풍 피해가 큰 추석 연휴였는데 별탈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맛있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는 여성의 성기를 여과 없이 그대로 대사에 녹아내어
관객을 긴장 시키고,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적이 있습니다.
공공연하게 일부 남성들의 성적 농담에서나 자위 도구로 전락했던 단어들이,
불특정 다수가 공개 관람이 가능한 연극 매체에서 노출되었을 때
한국 사회는 적잖이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여성 연극배우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대사 속 그 단어들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이슈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성에 관한 한 헤테로 문화에 친숙한, 한국 사회의 음성적이고 이중적인 성 모랄을
여실히 까발려 주는 반증이 된 셈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 사회가
<버자이너 모놀로그>
의 성공을 더 이상
혁신이 아닌 당연한 진실로 받아 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문제를 은폐하고 포장하지 않는 직선적인 화법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직선적인 대화 시도하기는 가장 강력한 진실성이 되고 있습니다.
남성이 아닌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성 담론을 다루는 것은 새삼스러울 리 없겠지만,
거침없고 대담하게 풀어헤치는 직접 화법은 분명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마시마로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에피소드에서 범법자이거나 때론 비윤리적이며
혹은 치졸한 악당에 가깝게 그려집니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위압적인 행동으로 남의 것을 버젓이 갈취하고,
때로는 공권력을 조롱하기도 하거니와 사악한 방법으로 친구를 속여 남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것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즐기고 바라봐 주기엔 분명,
유쾌한 소재들이 아니었음에도 마시마로는 대중적인 인기와 지지를 얻어냈다는 점입니다.
따뜻한 느낌의 그래픽 비주얼과 캐릭터 디자인.
간결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플래시 멀티미디어 장르 등등.
마시마로가 폭 넓게 대중적 인기를 얻은 데는 여러 요소가 복잡 다중하게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보편 타당하다고 믿었던 상식을
마시마로는 가볍게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지금껏 봐왔던 토끼와는 비주얼적으로도 통념으로도 상당히 다른 마시마로의
뚜렷한 캐릭터 성은 그 자체가 반전이면서 또한 비 통속적 입니다.
약자의 이미지로만 머물러 있을 것 같던 토끼를 내세워 몇 편 안 되는 에피소드에서도
작가는 굉장히 힘있는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가는 숲 속에서 자신들만의 유익을 위해
마시마로를 거부하는 곰, 부갈로는 기득권을 확보한 권력의 상징일 수 있고,
오히려 마시마로를 위협하기 위해 도끼를 뺴어드는 부갈로 보다 맥주병으로 자해 하면서 까지
비굴하게 부갈로와 부마의 피크닉 음식을 뺏어 먹는 마시마로의 모습은
그것이 원초적 본능을 위한 가장 진실되고 직접적인 화법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버자이너>
버자이너>
세간에 알려진 ‘엽기토끼’라는 지칭보다는 원작 타이틀의 ‘마시마로의 숲 이야기’로
마시마로가 회자되길 작가는 더 원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필자는 작가의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필자가 위에 지적한대로 마시마로는 ‘엽기스러운 토끼’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위압스러운 행동으로 곰 부자의 피크닉 음식을 갈취하는 등의 행동들은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고 반전을 생성하며 배꼽을 흔들었고,
언론이 개입되면서 이는 ‘엽기’라는 화두로 포장 되어 급속도로 대중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복숭아를 물에 빠뜨린 눈누를 위해 마시마로가 취하는 행동은
‘엽기’보다는 ‘순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마시마로가 이처럼 다양한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내포하고,
여타 아류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확실한 구별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애니메이션을 위한 캐릭터 설정 보다는 캐릭터를 위한 애니메이션 설정과 화법에
비교적 충실한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필자는 자평합니다.
바꿔 말하면, 캐릭터를 프로모션 하는데 있어서 마시마로라는 캐릭터를 생명력 있게
각인 시키고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도구로써 플래시를 적절히 활용했지,
플래시 애니메이션 자체를 위한 도구로써 캐릭터를 데코레이션(deco)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상위와 하위, 주류(mainstream)와 언더(underground)의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처럼 상식적이고 통속적인 화법을 거부한 채 탄생한 마시마로는
감각적이고 직선적인 화법에 익숙한 요즘 시대에 신선하고 적절한 채널을 선보였고,
이는 캐릭터 프로모션의 장르가 되고 트랜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좀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풀어본다면, 마시마로는 그만의 아우라(aura)를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시마로가 갖는 무국적성과 비주얼과 소리만으로 표현하는 무언극은
충분히 글로벌 마케팅을 가하기에 아주 매력적인 원쏘스(one source)이기 때문입니다.
버자이너>
마시마로와 졸라맨 이후 참 많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대중의 인식과 호응에 직결하는 선택적인 채널이었을 뿐이지
그 자체가 화법이 될 수 없음에도, 대부분의 플래시 애니메이션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결코 보편적인 공감력과 대중적 인기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혼전동거’ 메시지를 담은
<옥탑 방 고양이>
의 흥행 또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풀어나가는 시나리오와 연출,
연기의 3박자가 빚어낸 신선한 화법 덕분이었습니다.
시청률이 전부를 말해 줄 수는 없지만, 대중의 관심과 기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화려한 영상미와 전작들의 프리미엄을 안고 출발했던
<여름향기>
시청률 고전은
그 화법이 이 시대와 소통하기엔 너무 구태의연하고 고전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처럼 매체도 틀리고 장르도 틀리지만 결국 비즈니스와 디자인,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을 모두 총괄 내포하는 쑈(show)와 산업(industrial)으로서의
캐릭터를 생각해 본다면, 아우라(aura)를 품고 있는 화법에 대한 문제….!!
이제 결코, 무심히 넘길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가을을 맞이하는 9월 중순,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 다음 칼럼에서 뵙겠습니다.
여름향기>
옥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