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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아무나 못하는 아이디어!

2003-06-22

회사 업무로 영국을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런던과 근교를 둘러 본 정도이지만…

‘신사의 나라’니 ‘안개의 나라’니 하는, ‘영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세계 인종전시관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날씨, 거기에 빅벤이나 런던 브릿지, 빅토리아 왕국, 트라팔가 광장의 고색창연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 처음 본 런던은 오히려 우중충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 들은 얘긴데, 런던의 집들은 외형의 치장에는 별로 투자를 안한다다더군요. 옛 마차길도 없애거나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포장만 했다니 – 전통을 그만큼 소중히 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문화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진득한’ 품성 하나는 알아줘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겉으로는 지저분하고 남루하기까지 한 거대한 건물들이,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악’소리 날만큼 빵빵하게 꾸며져있는 것에 입을 못 다물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박물관은 스케일과 내용의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이렇게, 화려함과 남루함, 보수와 변화의 대립이 묘하게 어울린 영국적인 모습은 머무는 내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와 템즈강 사이에 위치한 King’s Road와 Fulham Road를 거닐다 놀라운 아이디어를 접하게 됐는데요, 한번 보시죠.

평범하던 담벼락이, 길이는 각각 135미터와 105미터가 넘고, 높이는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도서관으로 변했습니다. 약 3년 정도 설치될 예정인데, 각각의 책이름(?)과 디자인이 다르고, 새롭게 추가하거나 교체해가면서 계속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예정이라니 - 단순한 조형물의 차원을 넘어 마케팅적인 시각까지 엿보이는, 눈에 확 띄는 아이디어입니다. 디자인은 Consultants in Design사가 담당하고 클라이언트는 The Sign Company European Land Northacre랍니다.

우리나라의 대학로 주변이나 신촌 대학가의 천편일률적인 담벼락이 떠오르는군요. 답답한 시멘트 담벼락이나 얼기설기 엮인 철골 담벼락 대신, 이렇게 참신한 조형물들을 세울 수 있다면, 거리 전체가 얼마나 달라질까요? 사실 생각하기 어렵지만은 않은, 어찌보면 굉장히 간단한 아이디어인데, 이런 아이디어를 실재로 집행할 수 있었다는 게 놀랍고, 부럽고… 그렇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영국을 최고의 강국으로까지 끌어올린 문화의 힘이 아닐까 – 문득,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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