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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디자이너여, 거리를 싸돌아 다니자

2004-06-21



같은 동네에서 십 수년을 살면서,
또는 항상 같은 거리를 걷다가,
어느날 처음 보듯, 낯선 건물이나 풍경에 마주쳐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런 경험이 없다면 의식적으로 ‘새롭게’ 한 번 쳐다보십시오.
자동차가 오나 안오나를 살피다가도, 눈에 띄는 얼짱 몸짱의 미남 미녀를 보다가도, 틈틈이, 그리고 천천히 뒤 돌아서 하늘을 포함한 풍경을 보십시오. 당신이 디자이너를 꿈꾸거나 지금 디자이너라면…

일본 조형대학 교수이자 현대디자인 연구소의 책임자인 오오다케 마코토(大竹 誠)는 ‘본다는 것’을 ‘매우 창조적인 행위’라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리로 나가 ‘현장’과 ‘생활’을 관찰 하는 것이 디자인 훈련과 창조를 위한 중요한 행위라 강조하였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 밝힌 바 있습니다.

거리에는 소리가 있고, 냄새가 있고, 무한대의 디자인이 있기에 - 이와 같은 다양한 디자인 감각을 보고 느낀다는 것은 더욱 풍부한 생활 감각을 갖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가 이런 감성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은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보다도, 사무실 책상 위에서 습득된 경험보다도 살아 있는 소중한 가치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싸구려 구식 물건과 어린이 장난감을 수집하는 취미로 이름난 현태준은, 동네풍경을 찾아 국내 곳곳을 다니기로 유명합니다. ‘무작정 동네 싸돌아 다니기’란 그의 독특한 여행 방법은 ‘뽈랄라 대행진’과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 같은 유치하지만 재미있는 책에 들어있습니다. ‘동네 탐험’과 ‘새로운 주변 관찰’이 만들어 낸 미묘한 시너지라고나 할까요.

서울 미대를 졸업한 그는 작가이자 교수, 수집가, 만화가, 수필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식공작실과 얼레꼴레’ 라는 공방을 운영하면서 종이 장난감과 액세서리등을 만들며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허름한 동네 문방구 구석에서 찾아낸 ‘유치찬란’, ‘조잡무쌍’한 싸구려 물건들이, 이제 향수를 자극하는 새로운 문화로 각광 받고 있는 것도 그런 그의 남다른 기여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또 있습니다. 날카로운 문화비평과 분석으로 알려진 이화여대 교수 최준식은 그의 제자들과 숨어 있는 유적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면서 잊고 있던 우리 주위의 문화유적지를 새롭게 찾아내 ‘최준식의 신서울기행①,②’라는 두 권의 책을 발간 했습니다. 나와는 상관 없는 과거의 역사가 아닌, 발로 뛰며 접할 수 있는 현재의 역사는 어느 역사책에서도 볼 수 없던 즐거움을 줍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았건, 어떤 것이던 다 OK입니다. 새롭고 다양할수록 좋으니까요. 물론, 한가지만 집중적으로 파보는 것도 가치가 있습니다.
방법은 각자의 취향대로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예로 든 것은 그 중에 한두 가지 자료에 불과합니다만 참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구석구석에 몰랐던 아름다운 풍경들도 들쳐봅시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살펴보면 아름다운 곳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구석 구석 돌아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만납니다. 하나 하나 찾아 보면, 새로운 것들이 꼭꼭 숨어 빛을 냅니다.

같은 곳을 춘하추동 계절별로, 혹은 시간차로 보는 것도 재미 있습니다. 시간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당대 최고의 디자인 선생님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빛 또한 그렇습니다.

하얀 벚꽃이 거리에 날리더니, 어느덧 가을 낙엽이 가득 합니다. 그러고 보니… 디자이너를 위한(?) 주자(朱子)선생의 권학문(勸學文) 이라는 시구가 생각 납니다. -_-a

“DESIGNER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未覺池塘 春草夢. 階前梧葉 已秋聲.”
(DESIGNER는 쉬이 늙고, 배우기는 어려우니, 순간순간의 시간을 가볍게 보내지 말지어다. 연못가의 봄 풀이 채 꿈도 깨기 전, 뜰 앞 오동잎은 이미 가을 소리를 전하는구나) 잘난 척 문자 좀 인용해 봤습니다 ^^;;;

조형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내 주위, 보지않고 느끼지 않으면 지나가는 바람이고 먼지 일 뿐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거리는 항상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고, 사라지고, 새롭게 변합니다. 사라진 것은 역사가 되고, 새로 만들어 지는 것도 역사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움이 되고 디자인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디자인입니다. 그런 거리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이, 시간이나 때우자’ 라고 본 영화가 의외의 감동을 준 기쁨처럼, 의식하지 않고 일부러 찾지 않아도, 이 땅의 거리는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로 넘쳐 흐르는 샘물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반겨 줍니다.

“현실은 소설보다 드라마틱하다”

그렇습니다. 기승전결이 없어도, 짜놓은 각본이 없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생활’이자 ‘현장’입니다. 아무쪼록 거리를 싸돌아 다니십시오. 작은 것, 하찮은 것 무엇이든 버리지 마시고,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수집하고, 기록하고, 자료로 정리 하십시오.

참으로 디자이너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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