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20
디자이너 있다?
“Design or Resign. (디자인 하든지, 물러 나든지)”
1980년대 - 경기 침체와 실업이 만성화된 영국에서, ‘디자인’이라는 창조 산업으로 불황을 타게 하고자 했던 당시 수상 마거릿 대처의 말입니다.
‘디자인’의 가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나라 하나의 국민 총생산을 능가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기업의 사활을 디자인에 걸고 있을 만큼, 디자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응용미술’이나 ‘도안’이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시작했던 디자인은, 지금처럼 각광받은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대대적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공공기관들까지 - ‘죽어도 디자인, 살아도 디자인’을 외치고 있습니다. 가히 디자인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시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기술이 평준화 되면서 품질도 평준화 되었고,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전개되면서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건에서 국가는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일환으로, 기업들은 브랜드 자산을 증대시킬 일환으로 디자인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중세는 종교가 지배했지만, 21세기는 디자인이 지배할 것이다.”
“경영진의 역할은 디자이너를 돕는 것일 뿐 – 사장 위에 디자이너가 있다.” (뱅 앤 올룹슨)
“단 한 명의 스타 디자이너가 한 기업, 국가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열린다.”
최근 산자부에선 디자인 진흥원의 차세대 디자인 리더를 뽑았고, 전경련의 경우 서울 근교에 100여 개 업체를 수용할 디자인 클러스터를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나 다국적 기업에서 한국인 디자이너가 활동하고 있고, 외국의 유수 기업이 한국의 디자인 학과를 주목하고 있으며, 얼마 전엔 아시아인 최초로 장동련씨가 세계디자인협회(ICOGRADA) 회장에 선출되었습니다.
기업에서도 CEO, CTO, CMO들과 비견되는 CDO (Chief Design Officer: 최고 디자인 책임자)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부사장, LG전자 부사장, 삼성전자 전무 등이 그 예로, 디자인을 통해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나려는 우리 기업들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디자인 올인’, ‘디자인 경영 선포’, ‘디자인 중심 경영’을 외치는 LG전자의 경우, 얼마 전 자사의 제품이 독일 레드닷과 아이에프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또, ‘슈퍼 디자이너’를 선정해 임원급 대우의 파격적인 인사를 실시하고, 2010년까지 700명 이상의 디자이너를 확충한다는 발 빠름도 보였습니다.
삼성전자도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 혁명의 해(’96)’ 발표와, 삼성 글로벌 디자인센타(도쿄, 샌프란시스코, LA, 런던, 상하이, 밀라노) 설립과 IDEA상 수상으로 애플과 HP를 제치고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보르도 TV, 슬림 핸드폰 개발한 38살의 디자이너(강윤제, 노태문)가 연공 서열을 초월하여 2007년 임원이 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디자인 수익이 엔지니어의 5배 이상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디자인을 끌어 안고 있습니다.
이런 굵직굵직한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은 디자인 공화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
디자이너 있다? 없다?
매킨토시 작업이, 돈 많은 큰 회사의 특권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직수입한 전문 기술자와 약간의 디자인 테크닉을 갖춘 몇 안 되는 전문기사, 기업체의 담당 디자이너가 모여 앉아 어렵게 어렵게 진행되던, 고난도, 고기술, 고단가의 최첨단 작업이었죠. 개인당 한 대 이상의 매킨토시를 소유하고 있는 지금의 디자이너들에게야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닙니다. 최근까지도 유지됐던 CG 작업 비용 단가 120,000원/h를 기억하십니까? 지금이야 난이도와 에누리와 무질서한 가격으로 거의 자유화(쑥대밭?)가 되었습니다만...
이제 디자인은, 마음만 먹고, 맥킨토시가 있고, 적당한 테크닉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비단 디자이너만의 일은 아니겠지요. 많은 분야에서 기존의 프로세스나 시스템을 파괴하는 획기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한 번 디자이너라고 영원한 디자이너가 아니듯,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디자이너- 이를 테면 디자인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바다 건너 외국으로 가 디자인을 공부하고, 디자인 스쿨이나 학원을 거친- 라는 정체성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국민 일기장’이라는 UCC (User Created Contents) -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여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다시 공유하는,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2006년 미국의 TIME지가 ‘You’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 ‘당신’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를 알리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기계공학(서울대 박상현)과 생물학(서울대 김지애)을 전공한 이들이 늦깍이로 디자인에 입문해 세계 3대 디자인 상의 하나인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 콘셉트 부문에서 산업 디자인상을 수상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스스로 ‘비정규 아티스트’임을 선언하고 ‘비정규 일러스터의 홀로그림’이라는 책을 낸 밥장이라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삐뚤 삐뚤한 선과 어설픈 레이아웃만으로도 웃기고 울리는 ‘아마추어프로페셔널’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는(?) 이가 디자이너 뺨치는 기획과 능력으로 디자인을 휘두르고, 데생도 안 해 본 이가 디자이너를 제치고 두각을 나타냅니다.
기업도 변하고 있습니다. 한화의 경우, 세 개의 동그라미로 이루어진 새로운 CI를 만들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외국의 유명 CI업체에게 의뢰 했으나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CI를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개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라(산업 및 패션 디자이너)에게 그룹 CI를 파격적으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 진행된 금호아시아나, GS(미국의 랜도사), 삼양사, 삼성(미국의 L&M사)의 경우처럼 외국의 유명 CI 업체들에게 거금을 주고 작업 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는데 말입니다. (돈 되는 국내의 큰 프로젝트는 하나 같이 외국회사에???!!!... 국산CI 회사 이용합시다!)
삼성전자 휴대폰 디자인을 담당하는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그룹의 연구원들로부터도 이런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전공자보다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인간공학, 음향 공학 등 휴대 전화와는 무관한 전공자들이 더 많이 득실거리고 있죠.
광고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오래 전부터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광고를 만들 때, 다른 자동차 광고들만을 참조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장품이나 패션 광고에서 아이디어의 팁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죠. 소비자의 입맛이 다양하고 까다로워지는 만큼, 만드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새로워져야 할 수 밖에요…
“정상적인 과정을 밟는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정준-
“(한국에서)디자인이야말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다. 감각과 실기 테크닉만 중시하는 분위기는 이제 어림없는 일이다.”
“전문가가 전문적인 책만 읽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색채학이나 인쇄 기술에 관한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레이아웃을 공부하자면 동서고금의 고전이나 오랜 건축물에서 더 많은 힌트를 얻는다. 제품 디자인을 하기 위해 무역론이나 산업 동향을 공부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소니 대표이사 구로키 야스오-”
학계도 이런 변화에선 예외가 아닙니다. 이화여대에서는 ‘통섭(統(攝)’을 화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한 범 학문적 연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교내에 ‘통섭원’을 설립,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는군요. 전공과 학과의 담을 허문 토론(부산대 인문학 담론)이 시작되고 있고, 전공과 역할을 뒤바꿔 강사와 수강생이 엇갈리는 강좌(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열리고 있습니다.
과학과 일상, 사회와 과학,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담고 있는 ‘과학으로 생각한다’ 의 공동저자(이상욱, 이중원, 장대익, 홍성욱)는 ‘모든 지식의 통섭을 찾아서’ 라는 전제로 과학 속 사상, 사상 속 과학을 인문과 사회학적으로 되짚어보는 통합적 학문의 패러다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짬뽕’(주의! 사실은 짬뽕과 잡탕은 퓨전이나 통섭과 는 다른 것입니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학입시의 논술에도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단순한 글쓰기가 아닌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이 뒤섞인 통합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전적인(?) 디자인만을 외치며 통상적인 디자이너로 살기는 불가능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마당에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누구나 디자이너인 새로운 세상으로 접어 들었다면 무리입니까?
디자이너와 일반인 구별이 없어지고, 디자인과 디자이너는 이렇다 하는 정체성의 기준마저 없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작금의 시대에 디자이너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디자이너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또한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앞으로 다 틀릴 수가 있다.”
-미디어 랩 네그로폰데 이사장-
“그 동안 우리가 믿었던 모든 시스템과 지식과 열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상황이다.” -박인식 ‘디자인, 세상을 비추는 거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의 패션 담당 기자인 수지 멘키스는 다음 패션 세대를 이끌 디자이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디자이너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죠. 패션 리더, 패션 전문 에디터, 패션 비평가가 대신 패션 투자자나 펀드 투자자 간부들이 패션쇼를 가득 채우고, 패션 디자이너들은 패션 그룹의 자본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이제 패션은 패션 자체 보다는 특정 브랜드와 로고에 의해 선택되기 때문에 결국 디자이너들의 입지는 자꾸만 좁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패션 디자인에 관한 한정된 분야 의 인용이지만 일반적인 디자인이나 그래픽 디자인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스템과 프로세스 환경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머리 속에 두었던 디자이너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심한(?)’ 화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은 작업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러한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새 말입니다.
자료 뒤적이고, 컴퓨터 앞에서 끙끙 머리 앓으면서 멋진 아이디어로 새로운 무엇이 없을까 밤 세워 고민 고민하고 있는 이 시각에 저 멀리 어디선가 ‘디자인 같지 않은 새로운 디자인’이 꿈틀거리며 스물스물 움직이면서 다가 오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많은 노하우와 시스템을 기반으로 겨우 현실의 디자인 문제도 해결할까 말까 힘든 마당에 새로운 물결이 쓰나미 마냥 덮치기 일보 직전인지 알 수 는 없습니다. 그러한 징후가 언뜻언뜻 보인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눈 여겨 본다는 것도 쉽지 않고 무심하게 흘러 보내기 마련입니다.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 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 이추성). ‘연못가 봄 풀은 꿈을 아직 깨지 못했는데, 계단 앞 오동잎이 이미 가을 소리를 낸다’… 나는 아직 꿈을 깨지 못했는데, 새로운 시대는 이미 밀려오고 있는 건 아닌지… 오싹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디자인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변화하는 문화와 비즈니스와 더불어 디자인도 예외 없이 변화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 당연히 반영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급격한 변화는 어떤 누구도 정확히 예측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래의 변화라는 것도 결국은 현실에 바탕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디자이너에게 힌트라면 힌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현재의 디자인이든, 미래의 디자인이든, 그것이 모두 ‘레드오션’보다는 ‘블루오션’일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위로라면 위로랄 수도 있겠구요.
무엇이 디자인이고 어떤 꼬라지를 하고 나타나는 이가 미래의 디자이너인지 알 수 없든 간에, 작은 나비 날개 짓도 간과하지 않듯, 촉각을 곤두세워 외계인의 신호 같은 화두를 잡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하나뿐 입니다. 미래에 ‘지금 디자인’은 없다는 것. 변화되고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있을 뿐. 말 그대로 ‘무한한 가능성의 장’인 셈입니다. 그 가능성을 어떻게 자기편으로 만들 것이냐는, 개인의 능력과 열정과 운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거겠죠. (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