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8
노무현. 정동영. 김근태.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고건....
이런 이름 빼고 나면 세상이 멈춰 버리는 듯, 야단법석(野壇法席)입니다. 사실 요즘만의 일은 아니죠. 언제나 그랬습니다. 세상은 늘 정치라는 괴물 때문에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정치는 언제나 살아 있는 민감한 뇌관이죠.
‘물과 불’, ‘+와 -'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상극이 많습니다. 혹 ‘정치’와 ‘디자인’도 그런 관계가 아닐까요? 디자이너들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듯 합니다. 자기 관심분야가 아니면 무관심한 디자이너의 기질을 짐작하건데 ‘정치’와는 적당히 선을 긋고 사는 게 일견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담쌓고 사는 게 좋기만 한 일일까요? 지극히 개인적일 생각 일수도 있겠지만, 정치라는 놈은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운 데 사는 놈일지도 모릅니다. 디자인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다 ‘정치적인’ 것에 의해 바뀌고, 발전하고 퇴보할 수 있으니까요.
어느 날 국회에서 디자인에 관련된 이상 야릇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칩시다. 그 법안은 디자인 산업 자체를 바꿀 수 있고, 그에 따른 파급효과는 직접적으로 디자이너 개인에게까지 미칠 수 있습니다. 디자인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건이 맞는 디자인 회사에 지원금을 지급한 적도 있는가 하면, 또 한 때는 아예 ‘디자인’이라는 명칭마저 사용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영어 사용 제한이라는 이상한 법 때문에 아예 학과 이름에는 ‘디자인’이란 단어를 넣을 수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DESIGN을 우리말로 바꿀 적당한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
정치판 뉴스를 보고 있자면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다 한마디씩 하게 되죠. 가끔은 욕도 하고,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씹기도 하고… TV나 신문에서는 언제나 정치 이야기가 선두를 달리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투표 참가율은 점점 떨어져 국민의 대표성마저 의심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잘나가는 대학교수나 총장, 유망한 기업가, 빵빵한 연구소 연구원 등 온갖 분야의 쟁쟁한 인사들은 때만 되면 ‘정치’ 쪽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침을 흘리지요. 아쉬울 것 없는 재벌가 사람들까지 뛰어드는 걸 보면, 정치란 게 좋긴 좋은 건가 싶습니다만… 다행히(?) 디자인 분야는 쟁쟁한 분이 없어서인지, 길지 않은 역사 때문인지 대권이나 정치에 입문한다는 뉴스는 들리지 않습니다만... (혹시나, 그런 연유 때문에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지금까지 뉴스 거리로서 늘 미약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디자이너 출신의 대통령은 고사하더라도 국무총리나 장관 정도의 정치적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
한 때 YS, DJ, JP 등 온갖 영문 이니셜로 된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휘젓고 다녔고, 어지간한 인물은 두 글자 알파벳 없으면 유명 인사가 아닌 것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유명짜한 사람이라면 이런 영문 약자 하나씩 가지듯, 정치인들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에겐 또 그들만의 일러스트가 있습니다.
그 일러스트가 또 참 재미있죠.
대개 신문사의 시사만화가나 만평 기자가 그리는 만화 형태의 일러스트는 실물 사진보다 더 정확하고 더 생기 있게 느껴집니다. 단순하게 닮았다 안 닮았다를 떠나, 내면적인 됨됨이나 사생활, 정치적 위치, 국민의 의중은 물론 시대적인 상황까지 엿볼 수 있으니까요.
사진은 무겁습니다. 일러스트는 가볍습니다.
사진은 딱딱합니다. 일러스트는 재미있습니다.
사진은 복잡합니다. 일러스트는 심플합니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입니다. 일러스트는 과장합니다.
사진은 1+1= 2, 일러스트는 1+1= 2+알파
사진은 왠지 부담스럽습니다. 일러스트는 시원합니다.
온갖 중상모략과 정략적인 이해득실로 뒤엉켜 치고 받는 정치판은 있는 그대로 보기가 민망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인간사가 다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모든 뉴스의 선두에 올라오니 외면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정치에 등돌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 나는지 모를 일입니다. 실물이나 사진 보기는 어쨌든 싫고, 그런 이유로 명쾌하고 심플한 일러스트가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독 정치인이나 경찰 등의 국가 권력기관이 부담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 땅의 사회 문화적인 요인이 큰 듯한데 - 선진 외국의 수상이나 정치인 그리고 경찰관을 비롯한 공인들은 일상에서 부담 없는 이웃집 아저씨 같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죠.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 ^
언제나 무게만 잡는 정치인의 엉큼한 ‘썩소’가 아닌 부담스럽지 않게 활짝 웃고 있는 일러스트를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정치도 명쾌하고 심플한 일러스트마냥, 모두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 됐으면 좋겠네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할말만 하는, 그래서 그만큼 심플하고 명쾌한 게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