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25
서로 엇비슷하면서도 알고 보면 판이하게 다른 것 - 일본과 한국도 그 중에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지척에 둔 동양이면서 피부색과 생김새 등 언뜻 보면 쉽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유사성이 있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역사나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문화나 생활에 이르기까지 알면 알수록 다른 나라가 한국과 일본인 듯합니다.
거창하게 한일문화의 비교나 특성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특정 지역 즉, 일본 규슈 지방의 한 마을 ‘유후인(由布院, 湯布院)과 서울의 ‘인사동(仁寺洞)’을 부담 없이 살펴 보고자 합니다. 때마침 두 지역이 비슷한 상품과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음을 볼 수 있고, 올망졸망한 거리 곳곳은 여느 도시나 거리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콘텐츠가 있는 동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나 상품, 아이디어와 디자인도 이리저리 둘러보면 슬쩍슬쩍 다른 면을 보는 재미까지 더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남쪽 섬 규슈(九州)의 유후인은 마을 전체가 온천휴양지를 겸한 그다지 크지 않은 지방의 산속 동네입니다. 아기자기한 예쁜 가게들과 카페는 물론 미술관과 갤러리, 먹거리 등이 곳곳에 있어 전통과 로맨틱한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의 관광객이 언제나 북적거리는 곳이기도 하고, 일본 전역의 상품을 관광객을 상대로 팔기도 하는 테마 관광지입니다. 일본 여행붐을 타고 우리나라 관광객도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죠. 통이 큰 한국 남성들에겐 째째한(?) 물건과 알콩달콩한 분위기에 낯 간지러운 분들이 많을 듯…)
서울의 인사동은 잘 알고 있듯이 도심의 중심가에 자리하면서 아기자기한 공예품과 전통 찻집을 비롯하여 미술관과 갤러리, 화방, 공방, 식당들이 골목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통과 문화의 테마 거리입니다.
두 곳 모두가 비슷한 공통 분모가 많습니다. 국내외 관광객이 항상 들러는 관광 코스이고, 전통과 문화와 예술의 분위기가 언제나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 발생적이기보다는 정책적으로 다듬고 가꾸는 것도 비슷하고, 현대인이 잊어버린 향수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채울 수 있는 것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 상술을 발휘하는 것도 빼먹지 않지요. 유후인은 해발 1500미터가 넘는 ‘由布岳’이라는 산 밑의 동네라는 점과 인사동은 도심 속의 거리라는 점이 다르긴 합니다. 인사동이 거리 하나라면, 유후인은 동네 전체이고 주위에 연못(긴린코)을 비롯한 볼거리와 온천욕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관광지라는 점이 다르긴 합니다. 아무래도 규모면에서는 인사동이 좀 작기는 합니다.
디자이너라면 아니 꼭 디자이너가 아니라도 ‘아기자기’한 ‘예쁜’ 것들에 눈이 멈추기 마련입니다. 이 두 동네엔 이런 물건들이 골목과 가게마다 가득가득 차 있습니다. ‘아기자기’라는 말이 그러하듯 큼직한 물건이나 규모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아주 작은 귀걸이, 휴대폰 고리나 반지, 그리고 민예품, 수공예 작품에 독창적이고 깜찍하면서 아이디어 넘치는 상품과 감각적인 디스플레이, 인테리어로 뭇 관광객 분들이 유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맛’은 포기해도 ‘분위기’는 못 버린다는 여성분 취향엔 이런 곳이 딱입니다.
사람이 지나 가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상품이 주렁주렁, 다닥다닥, 옹기종기, 들쭉날쭉 진열된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가게부터 심플 그 자체로 예술감각이 물씬 풍기는 상점과 잡화, 선물가게, 먹거리, 패션, 취미, 팬시, 카페, 공방, 전통, 현대, 퓨전, 무드, 낭만, 복고, 박물관, 갤러리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여유로운 수다를 떨거나, 손마다 선물 꾸러미는 이미 한 두 개씩은 들고 있고 또 무언가에 홀려 호주머니 지폐를 만지작 거리고 있지요.
인사동은 전통의 거리답게 도자기, 한지, 전통가구, 전통카페, 전통주점, 고서화, 골동품, 필방 공방, 토속품 등 민속적인 것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조성되어 있습니다. 잊혀진 옛 물건이나 이미지를 주제로 보여주어 도심 속에서나마 멀리 경주나 민속촌을 가지 않더라도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습니다.
도자기나 한복을 비롯한 몇 가지의 상점들은 한 종류의 테마 상품을 가지고 진열 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품목을 한꺼번에 취급하는 잡화식이 대부분입니다. 한 건물 안에 모여있는 각기 다른 테마상점도 다닥다닥 모여있다 보니 결국 잡화식 공동매장처럼 되어 버린 곳이 대부분입니다. 새로 생긴 쌈지건물은 인사동안에서도 각기 다른 다양한 테마 상품들이 모여 그나마 한층 분위기를 살려 젊은이나 관광객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합니다. 이즈음은 국적은 물론이고 진품인지 짝퉁인지 가름 할 수 없는 중국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 등의 인터내셔널한 골동품까지 합세하여 분위기가 묘한 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값비싼 도심 속 작은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일부러 찾아온 이들에겐 아쉬운 면이 있을 것입니다. 다 그 집이 그 집처럼 느껴진다면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일본의 유휴인 거리의 테마별 가게는 명확하게 구별되고 다양한 편입니다.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고양이, 기모노 입은 전통인형, 포장된 가공식품을 비롯하여 강아지, 부엉이, 익히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전문 숍에 이르기까지 한 종류의 테마 품목만 취급하는 가게들이 무척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하야오의 캐릭터 관련 상품만 취급하는 곳, 일본의 클래식 자동차만 전시 된 곳, 죽세공과 유리제품으로 대표되는 민예촌, 테디베어 인형만 3000개가 넘게 갖춘 곳, 세상에 오직 이곳 뿐이라는 듯 독특하게 수작업 작품을 꾸며 놓은 가게들…
잡다한 상품을 진열하여 관광객을 부르는 곳은 인사동이나 유후인도 어딜 가나 많이 있습니다만 한가지 소재로 진열장을 채우는 일은 일본인들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집착에 가까운 자기만의 무엇을 탐닉하는 이들이 많은 곳도 일본이라고 하니 그 덕에 이런 관광지에서 선택의 폭을 넓고 깊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인사동이야 다른 곳과 다르게 고가의 도자기와 서화, 고가구는 물론 현대적인 세련된 감각으로 디자인된 전문적이 상품들로 대부분 갖춰져 있지만, 우리나라 전국 관광지 어디를 가나 그 상품이 그 상품으로 채워진 것을 적지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좋아지고 있다지만 아직도 지방 고유의 특성을 살리면서 제품과 인테리어도 디자인에 있어서도 한 차원 올려야 할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완성도와 세세한 끝 마무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일입니다.
어지간한 싼 것은 중국 제품으로 넘쳐 나는 세계적인 현실이지만, 좀 더 개성 있고 고급을 지향하는 즈음에 신경 써야 할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뭔가 2%로 부족하고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식상한 제품을 보고 있노라면 망설여 지니까요. 깔끔한 마무리라면 또 일본을 또 빼 놓을 수가 없지요. 작은 수제품에 이르기까지 적당이 만든 제품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분위기로, 디자인으로, 색다른 아이디어로, 철저한 마무리라는 상술로 돈을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있는 곳이 유휴인이라고 사려 되니, 참고합시다.
인사동은 부담 없이 자주 가는 편입니다. 짧은 시간에 대강 다 볼 수 있어 아쉬움이 남는 작은 거리이지만 이런 공간이 더 확대되고 많아져서 다양한 디자인 상품은 물론 더 멋진 분위기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있습니다. 때마침 모든 산업과 일상의 분위기는 탈 산업과 각기 다른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여 생산 기획도 세분화하는 전문적인 ‘다양함’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성지향과 느림과 웰빙, 자기자신을 주장하는 시대적 흐름은 본 괘도에 오르고 있습니다. 유후인과 인사동이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 다른 곳에 비슷한 분위기와 이미지를 간직하고 디자인과 아트라는 콘텐츠가 부각되는 유사한 거리가 있다는 것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다르지만 이치는 같다(事不同不理同)’는 말처럼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음근저에 흐르는 공통의 맥락이 유후인이나 인사동을 자연스럽게 찾고 느끼며, 마음에 드는 상품과 디자인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마도 자아 실현은 물론 지적 미적인 욕구를 갈구하는 높은 단계의 고상한 인간본성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