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7
세계적인 디자인 매거진
<월페이퍼>
의 표지를 장식한 한국인 디자이너. 조규형(홈페이지)은 세계 유력 매체에서 주목할만한 젊은 디자이너로 꼽히고, 이렇다 할 많은 상도 받았다. 이런 수식어들 때문인지 그가 조금 더 궁금하긴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작업에 대한 사유와 그에 따른 액션이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사제공│타이포그래피 서울
월페이퍼>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콘스트팍(Konstfack, University College of Arts, Crafts and Design)에서 2011년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스톡홀름에서 작은 독립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그래픽, 텍스타일, 가구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조규형입니다.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떠세요? 작업 환경이나 행복지수, 어려운 점 등이 궁금해요.
졸업 후 어느덧 약 4년이 흘렀네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항상 답변하기 힘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상황에 대한 만족은 크지만, 장기적으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은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북유럽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유이자 장점은 첫 번째로 해외 디자이너들과 교류하고 협업할 기회가 비교적 수월하고, 두 번째로 유럽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전시나 세미나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한국에서의 디자이너로서의 제 삶과 비교해보면, 여기에서의 생활 패턴은 느리므로 삶이 비교적 덜 치열해서 스트레스가 적어요. 그래서 저의 길을 타인의 길과 비교하거나 다른 시선을 의식해서 타협하기보다는 저 자신에게 지속해서 질문(나는 내가 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가?)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으므로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주지요.
단점도 있어요. 세 가지로 추려서 말씀드리자면 먼저 언어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영어 표현이 아직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거나 완벽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두 번째는 여기서는 외국인으로 살아야 해서 외로움과 이질감은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해요. 마지막으로 생활패턴이 느려서 오는 장점도 있지만,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시간이 길고, 커뮤니케이션도 느려서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해요.
여기서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한국에서 일하는 방식과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이는 매우 개인적인 상황과 관점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 그 차이점이 일반적인 사례라 볼 수 없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 여기서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는 절대적 수평 관계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협업자로의 존중하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이루어져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에 존칭과 존댓말이 없고 스웨덴 특유의 '평등' 개념을 매우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에 몇 번 만나서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이와 직위와 상관없이 친구가 돼요. 두 번째는 설득 과정이 매우 단순하고 다이렉트해요. 한국에서는 실무자와 최종 결정자를 나누어서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방향성을 잃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는 최종 결정자와 실무자들이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함께 시작하고 결정해서, 저 또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닌 또 한 명의 협업자가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죠.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소통의 효율성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최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전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약 5개 정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모교인 콘스트팍의 지원으로 진행하고 있는 서체 제작 프로젝트가 있고, 스웨덴 북부에 위치한 우메오(Umea)에서 7월 초에 진행하는 디자인 문화 교류 전시에서 발표할 나무 의자를 제작 중입니다. 또한, 핀란드, 네덜란드 그리고 대만에 각각 위치한 디자인 브랜드와 함께 올해 하반기 그리고 내년 초에 발표한 작품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작가님의 픽토그래프 폰트(Pictograph Font)가 많이 알려졌어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의미의 작업인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저희가 협업자를 초청한 때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대상을 초청하잖아요. 저는 이러한 협업 방식 외에 예측할 수 없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만드는 방법의 하나로, 의지가 없는 대상을 협업자로 초청하여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갖고 있습니다. 타이틀은 Unwitting Collaborator입니다. 예를 들자면, 봉화를 통해 메시지를 읽는 상황을 보면, 본 프로세스에서는 발신자가 의지가 있는 경우고, 구름이 짙어져 비가 올 것이라는 정보를 얻는 상황에서는 정보를 만든 대상이 의지를 갖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이런 경우 저는 구름을 Unwitting Collaborator로 규정하고, 제 프로세스에 참여시키는 것이죠. Cloud Workshop이라는 프로젝트에서는 추운 날씨와 사람들의 호흡으로 구름조각을 만드는 프로젝트였고, Mouse Printer는 스크린에 나타난 커서와 함께 드로잉을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픽토그래프 폰트도 본 장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Pictograph Font에서 저의 협업자는 문자의 순서였습니다. 제 관점에서,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 문자의 순서는 일종에 저희가 컨트롤 할 수 없고 문자 순서를 주체로 보면 의지가 없는 협업자가 되어, 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홈페이지 중 '스토리텔링'이라는 카테고리가 매우 흥미로워요. 작품의 면면을 보면 디자인적이라기 보다, 인문학적인 느낌이 강하죠. 이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는 작업은 어떤 의미의 작업인가요?
최근 개인 창작을 목적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많이 생기면서, 그들이 하는 활동은 기존에 정의된 디자인,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제가 진행했던 개인 창작 작품에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어색함 있어서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전에 스토리텔링 범주하에 넣고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 작품들은 일종의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는 실험적인 놀이로 정의할 수 있어요.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 디자이너로 알려지셨어요. 세계 유력 매체에서 주목하고, 많은 상을 받고. 그런 것들 말이에요. 그들이 작가님께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성공한 디자이너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매체에서 주목하는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 중 한 명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해외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내게 보편적인 사고나 접근 방식이 그들에게는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문자의 모아 쓰기와 풀어쓰기, 개체성보다 일체의 차이점, 기와 오름에 대한 개념 등이 그들에게는 아직 생소합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재료가 됩니다. 또한, 그래픽 디자인의 방법론이 가구나 텍스타일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들을 흥미로워하지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상업 디자인에서 중요시하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접근방식이나 콘셉트가 내용과 목적에 맞는가? 두 번째는 최종 소비자에게 어렵지 않고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가? 마지막은 위트나 시적인 함축성을 지니고 있는가? 입니다. 자기 주도 작업의 중요성도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면, 본 프로젝트가 충분히 대담한가? 두 번째는 내 작업 정체성의 연장선에 있는가? 마지막은 내가 흥미로워하는가? 입니다.
작업 프로세스 혹은 작업 스타일은 어떤가요?
콘셉트나 방향성을 잡는 것은 비슷하고, 실제 작업을 하는 부분은 매체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픽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의 경우 초안은 금방 나오지만 디테일을 다듬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고, 가구는 목수나 생산 공장에 설계도를 갖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와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텍스타일이나 실크스크린 프린트는 워크숍에서 직접 프린트를 합니다. 작업 스타일은 컴퓨터로 하는 작업은 빠르고 대담한 편이고, 수작업은 느리고 꼼꼼합니다. 주위에 믿을 만한 친구들이 있어서 중요한 단계에서는 의견을 듣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최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작년에 출품했던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남북 동시 입장 국기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남북한 단일국기는 우리의 정체성과 시대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안한 국기는 남북한 각 국기를 반으로 잘라 한 공간에 병치시킨 것이지요. 본 국기는 우리가 처한 현실만큼 아프고 슬퍼 보였어요. 그러나 제안의 의도나 프로젝트의 목적 보다는 인공기의 노출과 태극기 손상이라는 점이 국민에게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것이지요. 디자인 소비자와 대면하는 것이 아닌, 현재 우리나라 사회가 디자인 혹은 예술문화에 대한 시각을 어느 정도 느끼게 해주는 프로젝트로 제게 또 다른 큰 숙제를 주어 기억에 남습니다.
폰트 또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어떤 생각,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해요.
지금 콘스트팍의 지원으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한글의 미적 혹은 구조적 특징을 로만 알파벳에 적용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아직 구상하는 단계이지만 새로운 로만 알파벳을 만들기 위해 한글의 밀도나 문자를 인식하는 방법, 모아 쓰기에 적용하는 유연성을 연구할 것입니다. 본 프로젝트는 텍스트를 위한 첫 폰트 프로젝트라 문자의 식별성, 가독성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프로젝트 성패 여부를 떠나 제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한글은 많은 디자이너에게 다양하게 다루어져 진화해야 할 문자이기 때문에 젊은 디자이너의 한글 서체 개발 참여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입니다.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요?
Play Seriously! 디자인을 오래오래 하고 싶은 게 소망입니다. 디자인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지속해서 흥미를 만들어야 하는데, 새로운 분야에 나를 넣는 것이 지금의 솔루션입니다. 새로운 분야에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접근하고, 분야에 들어가면 늘 최선을 다해 즐기고 싶습니다. 마치 땀 흘리며 레고를 조립하는 아이처럼….
해외에서 활동하고 싶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해외 활동은 보통 해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하게 돼요. 학교를 선정할 때부터 졸업 후 활동을 염두 해 놓고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졸업 후 비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졸업 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가? 혹은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에 지원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가? 졸업 후 활동하는 사람의 행보를 조사하고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학교 과정은 졸업 후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장기 계획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