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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2006 칸 광고를 말한다

2006-08-21


심플 아이디어로 회귀 - TV, 인쇄, 옥외
2006년 칸의 선택은 2005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작년 도요타의 오색찬란한 애니메이션 광고가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칸이 기대하는 것은 충격요법이나 소름을 돋게하는 아이디어보다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미묘한 디테일, 인간적인 말랑말랑함, 즉 ‘휴머니즘’에 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올해 칸의 선택은 나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필름부문의 그랑프리를 차지한 영국의 기네스 맥주광고(광고1)는 내 예상과는 달랐다. 광고내용은 대략 이렇다. 맥주 바에 앉아 흑맥주를 들이키는 세 남자들이 인류진화의 역사를 거슬러가는 과정을 빠르게 리와인드되는 화면에 담았다.


영장류, 공룡, 고생물로 역진화하던 이들은 마지막에 도룡뇽으로 변해 흙탕물을 핥아먹고는 꺼억 맥주트림을 한다. 그나마 “기다리는 이에게 좋은 것이 온다(Good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는 카피만으로 광고를 이해하기엔 글쎄라고 갸웃하는데 영국친구의 설명인즉, 아일랜드에서는 ‘기네스를 먹기 위해선 3분을 기다려야 한다’ 라는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네스는 자연적으로 올라오는 거품이 모두 잔의 끝으로 올라가 잔의 3분의 1 가량 됐을 때 마셔야 하는데 거품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보통 2~4분 걸리는 데서 나온 말이란다. 그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상상이 어디 ‘인류의 진화’뿐일까? 완성도 높은 리와인드 기법이나, 흑맥주의 거칠지만, 인간적인 느낌을 높이 샀다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필름부문 수상작들은 제품의 컨셉에서 출발한 심플한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다. 광고에도 복고풍이라는게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칸용’ 아이디어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멀티미디어로 시도하는 통합마케팅 - 사이버
2006년 칸의 화두는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마케팅’ 즉 인터넷의 ‘바이럴(Viral) 마케팅’이었다 마치 전세계 광고가 4대 매체 밖으로 그 축을 크게 회전한 것처럼 너도나도 입소문 광고의 매력과 파워에 흠뻑 빠져있는 듯 했다. 필름과 인쇄의 사이드 디쉬처럼 여겨지던 사이버부문이 출품량으로 보나, 상의 규모로 보나 메인디쉬로서도 손색이 없는 파워를 발휘하고 있었다. 사이버 Lion에 주어진 두개의 그랑프리중 하나를 거머쥔 미국 ‘Droga5’의 ‘Still Free’를 보자.(광고2 - Still Free) 흡사, 테러의 한장면을 연상케하는 거칠고 리얼한 다큐멘터리식 화면이 시선을 잡아끈다.

캄캄한 밤, 두 명의 청년이 철창을 뛰어넘는 모험을 감행하며 다가가는 것은 미국 부시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그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비행기 몸체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댄다. 유유히 사라지는 그들의 뒤에 남겨진 낙서 문구는 ‘Still Free-그래도 자유다’. 지난 4월 뉴욕시의 낙서 금지법안 상정에 저항하는 낙서테러로 알려진 이동영상은 20여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갔고 삽시간에 다른 언론 매체로 확산돼 지역TV 뉴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매체를 타고 방영됐다. 전 세계 2,600만 명 이상이 동영상을 본 것으로 집계됐고, 마침내 미 국방부는 ‘에어포스 원’이 낙서 테러를 당한 적이 없다는 공식발표까지 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또 하나의 그랑프리 수상작은 마이애미 ‘크리스핀 포터 보거스키’(CrispinPorter + Bogusky)사의 신형 폭스바겐 GTI웹사이트(vwfeatures.com)가 차지했다. 독특한 옷차림의 러시아식(?)영어를 구사하는 섹시한 여인이 내 차의 조수석에 앉아 이것저것 설명하기도 하고, 스피드를 내라고 독려하기도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차 색깔, 액세서리, 가격 등의 옵션을 조절하여 자신만의 차를 만들어 볼 수도 있고, 실감나는 주행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광고3 - 폭스바겐GTI)

대한민국은 여전히 칸과 꼬리잡기 중
올해 칸에 출품된 우리나라의 작품들을 보며 느낀 건, 작품의 아이디어나 완성도를 떠나 살짝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있는 어색함이라 해야 하나.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하다는 안타까움이었다. 단언하건데 칸에도 패션처럼 유행이 있어 2004년의 화두가 ‘유머’였다 싶으면, 2005년의 화두는 ‘휴머니즘’에 가 있고, 지난해에는 아트적인 완성도가 높이 평가를 받았다면, 올해는 아이디어의 심플함이 칭송을 받는 나름의 흐름을 가지고 움직인다.
마치 우리만 쏙 빼고 모두 어디선가 모여 결의라도 한 것 일까? 섭섭하기도 하고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 그 흐름을 타는 일이다. 새로 나오는 세계의 광고들을 부지런히 보고 큰 흐름을 빨리 읽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칸이 그들만의 축제이며, 비즈니스라고 일축해 버리기에 이미 그 존재감이 너무나 크다. 별 소득 없이도 무모하리만큼 꾸준히 칸과 호흡을 맞추려고 애쓰고 투자해온 일본이 미디어나, 사이버 부문을 중심으로 이미 그 흐름을 타고 있고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목할만한 예가 아닌가.

글/오혜원 국장(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우스아프리카에서 제작된 레고(Lego) 인쇄광고로 올해 깐느의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파란 레고블럭으로 만들어진 망망대해에 떠있는 거라곤 하얀 레고블럭 하나. 카피에서 단서를 찾아볼까 들여다보니 ‘상상하라(Imagine)’는 달랑 한 줄 뿐이다. 타이틀은 ‘잠망경’, 물속에 잠겨있는 나머지 부분을 보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고 있는 듯한데, ‘레고’라는 제품의 속성이 상상력을 동원하는 놀이임을 감안해 보면 심플하면서도 절묘한 수법이긴 한데, 그랑프리감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덮어두기로 하겠다.

리바이스 브랜드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있을까? 지난 몇 십 년 동안 사랑받아온 브랜드답게 크리에이티브의 역사도 화려하다. 하지만 이번 리바이스가 보여주는 광고는 상당히 미니멀하면서도 심플하다. 스키니진의 열풍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졸라맨’을 연상시키는 라인맨들이 등장하여,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눈에 남는 건 강렬한 빨간색의 리바이스 로고.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할 리바이스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마치 인쇄사고가 난 것처럼 컬러풀한 출력물사이로 칙칙한 흑백광고들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천연덕스럽게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하늘에 손톱만 하게 떠있는 달이며 시커먼 파도가 영락없는 한밤중이다. 카피 한줄 없는 지면을 이리저리 훑다 보니, 저 아래 조그맣게 붙어있는 제품 하나가 보인다. “아! 썬블럭 광고였구나!” 아이들에게 썬블럭을 발라주거나 해가지고 나서 밤에 놀게하라는 메시지를 의외의 비주얼에 담아 시선을 끌고 있다.

‘한 남자가 바에 가서 보드카를 마시는데, 맘에 드는 여자가 나타났대. 남자는 용기를 내기위해 보드카를 몇 잔 들이키고 여자에게 대시했지. 여자도 남자가 싫지 않았는지 함께 보드카를 마시곤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지 그리고 둘은 같이 활화산 같은 밤을 보냈어…’말로 하면 한없이 시시한 얘기를, 1940년대 일러스트풍으로 풀어놓은 미국의 보드카 광고는술이 가진 사이드이펙트를 위트로 풀어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그림에서 보여지는 크기만큼 세상의 미미한 조재로 전략하였으나 그들은 우리의 깊은 뿌링며, 존재를 가능케 한 힘이다. 그 분명한 메시지만큼이나 비주얼이 주는 메시지도 강하고 심플하다. 사람들은 단번에 광고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공익적 목적을 띤 광고일수록 직접화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뒤떨어지지 않는 아트감과 그 스케일이 좋은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시각 차이를 적절히 활용한 또 한편의 옥외광고.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위의 옥외광고판. 얼핏 보아도 셔츠에 묻은 까만 잉크자국이 선명하다 하지만 차가 광고물 가까이 다가갈수록 잉크자국은 셔츠바깥으로 밀려나가고, 대신 에리엘(ARIEL)세제 로고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눈 깜짝할 시간에 모든 걸 설명해주는 옥외광고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옥외광고 부문에서 과일 맛이 나는 사탕이 아니라 ‘진짜 과일이 들어있는 사탕’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으로 선택된 건, 벽에 세게 부딪혀 으스러진 체리와 사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벽을 타고 흐르는 과육의 임팩트도 인상적이지만, 아트적인 컬러의 대비와 제품의 형태를 상징하는 둥그런 모양 역시 사탕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속에도 침이 고이게 만드는, 대담하고 솔직한 크리에이티브이다.

소책자 형태로 제작되어 카페나 레스토랑에 비치된 인도의 한 서점 광고는 영화 <반지의 제왕> 을 제작한 피터잭슨이 얼마나 눈부신 성공을 거뒀으며 그 뒤에는 그의 영감과 지식을 불러일으킨 책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조목조목 짚어가고 있다. 소책자라는 매체의 특성상, 강력한 설득보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세련되고 예쁜 일러스트와 간간히 등장하는 시구의 카피들로 서점이 가진 정서적 이미지를 조화롭게 이어가는 디테일 있는 광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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