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04
광고인들의 무기는 ‘글’과 ‘그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글을 잘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림 중심의 광고가 많아집니다.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광고는 아트 디렉터가 만드는 걸까요? 요즘은 그림에 압도되어 긴 카피는 구경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헤드라인과 바디 카피의 구분도 거의 희미해졌습니다. 신경 쓰이게 만드는 헤드라인은 가끔 눈에 띄지만, 발톱이 드러나지 않게 멋지게 쓴 바디 카피를 본 지는 꽤 오래 된 듯 합니다. 바디 카피를 어떻게 써야 잘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고수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1) 돌리지 말고 직접적으로 말하십시오.
2) 최고급이라는 말, 일반적인 단어나 평범한 말은 피하십시오.
3) 추천의 글을 삽입하면 좋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추천하면 더욱 좋습니다.
4) 독자에게 도움을 주는 조언을 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5) 독특한 문학적 스타일의 글은 좋지 않습니다.
6) 큰 소리는 피하십시오.
7) 특별히 엄숙하고 고상한 말을 쓸 필요가 없을 때는 구어체로 쓰십시오.
8) 상을 의식한 카피를 쓰지 마십시오.
9) 훌륭한 카피는 얼마나 많은 신제품을 성공시켰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저녁식사에서 곁에 앉은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새차를 사야겠는데 어떤 것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처럼 쓰라고 합니다. 이미 반세기가 지난 50년전 데이비드 오길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주로 ‘카피’라는 무기로 독자들에게 슬기롭게 말을 거는 광고 몇 편을 소개합니다.
글 | 정상수(오길비 앤 매더 상무이사)
외국의 좋은 호텔에 가면 방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서비스의 디테일에 감동을 받곤 합니다. 간장 종지 같은 그릇에 물 담고 그 위에 예쁜 꽃잎을 몇 잎 띄워 놓는다거나, 손으로 직접 만든 작은 종이 상자에 정성이 담긴 매니저의 편지와 생 초콜릿을 넣어 준다거나, 침대 정리한 후 베개 위에 유명한 시에서 골라낸 잠에 관한 좋은 글이 적힌 북 마크를 놓아둔다거나… 이 광고에서는 그런 소품을 이용했습니다.
호텔 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내 온도 조절기에 북 마크 모양의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군요. 호텔 방에 처음 방에 들어간 순간 너무 덥거나 썰렁하면 우선 온도 조절기를 찾게 되는데 여기서는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했습니다. 광고를 안 볼 수가 없군요. 작게 인쇄된 카피는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 기후회의 참가자 여러분께, 지금 아마 불편할 정도로 덥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극지방에 사는 대부분의 북극곰과 사슴 같은 동물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습니다. 차이가 하나 있지요. 그 동물들은 호텔 안내에게 불평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냥 죽어 없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지구 온난화를 막을 방법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바로 이번 회의에서 말입니다.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의 눈 밑에 무슨 특수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깨알같은 글자를 적어 놓았습니다. 카피를 거기에 얹었군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들 중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하지요. 아이의 눈 아래 있는 것이 그저 작은 멍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의심이 가신다면 무언가 해야 합니다. 어린이 학대를 멈출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08000 55 555로 전화 주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하, 아이 눈 밑의 카피가 어른에게 맞아서 생긴 멍이었군요. 비주얼 아래는 광고주인 ‘어린이 전화(Childline)’가 사진 작가에게 감사 드린다는 내용의 카피가 한 줄 있습니다. 이 광고는 비주얼을 크게 사용했으니 ‘비주얼 광고’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카피의 활약이 돋보이는 "카피 광고"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 광고가 나가기 전의 단계에서는 멍든 부분의 카피가 화면 하단에 자리잡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카피 덩어리를 눈 밑으로 옮겨 강한 비주얼 트위스트를 만든 것입니다. 물론 주목도가 훨씬 높아졌지요. 오길비 케이프타운 제작. 때로 레이아웃을 하면서 비주얼이 뭔가 약간 약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 위에 카피를 한 줄 작게 넣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 내용도 그림의 상황을 보충 설명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지요. 그것이 재치가 될 수도 있지만, 광고를 광고답게 보이게 하여 주목하지 않게 만드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을 활용한 바비 인형의 캠페인 중 한 편. 아이스 하키를 하거나 머리가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소녀들의 터프한 모습을 잡은 흑백 사진 위에 빨간 색 헤드라인을 얹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카피는 ‘소녀들이 지배한다(Girls rule.)’ 이 광고에서도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는 당당한 소녀의 모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로고는 미안한 듯 작게 처리했지요. 마치 공익광고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 바비가 여성의 사회 문제들에 대해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만들었군요.
뉴욕의 전화 박스와 옥외광고를 덮은 이 광고에는 “왜 여전히 사회에는 남성우월주의가 판을 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작은 대답들이 숨어 있는 셈입니다. 바비의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CNN.com과의 인터뷰에서 바비의 브랜딩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바비가 그저 장난감이 아니라 소녀들을 위한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흑인소녀를 쓴 이유도 알만 하지요? 사실 우리는 비교적 인종차별에 무감각한 편이지만, 1959년에 태어난 바비를 두고 계속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왜 흑인 바비는 없으며, 인도 국적의 바비는 없느냐고 자꾸 따지니까 광고에서도 적절히 인종을 섞어 쓰고 있습니다. 아마 광고가 게재되는 지역에 따라 안배하겠지요. 머지않아 한복 입힌 바비도 만날 수 있겠네요.
칼럼 2단을 사용하여 마치 잡지 기사처럼 보이게 만든 이 광고는 헤드라인부터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당신 무덤을 스스로 파고 계십니까?” 일단 우리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지요? 긴 카피를 읽기에 지루할까 봐 본문 중앙에 숟가락 꽂힌 버터 덩어리 비주얼을 얹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길고 긴 이 광고의 카피 내용은 단순합니다. 좋지 않은 식생활 습관으로 제 무덤 파지말고 이제부터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지요. 카피는 “세상에, 우리 싱가포르 사람들이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우리는 점심 먹으면서 '오늘 저녁 식사'를 뭘 먹을지 이야기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일 겁니다…”로 시작하여 “…원숙한 노년을 사시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살기 위해 먹도록 하십시오”라는 구절로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