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7
광고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습니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분야의 사람들은 더 심합니다. 내라는 아이디어는 제출하지도 않고, 자꾸 따지기만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 컨셉트의 방향이 맞나요? (무조건 다른 방향이 더 좋겠다는 뜻)
- 목표고객은 정확히 누구인가요? (국민 모두인가요?)
- 제작비는 충분한가요? (예산에 맞춘 아이디어를 내겠다는 뜻)
-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아이디어 내기도 전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
사실 이런 질문들은 광고를 만들기 전에 반드시 따져봐야 할 필수 항목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 걸 미리 점검하지 않으면 며칠 동안 잠 못 자고 위궤양과 싸우며 준비한 아이디어가 한 순간에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버리니까요. 어차피 판단의 기준도 없이 판단하니까 죽이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는 측에서는 다음에는 절대 당하지 않겠다는 반발심리와 피해의식 때문에 자꾸 따지는 것이지요.
저도 여전히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가끔 그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고 낸 아이디어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똑똑하고, 각자 그 맛에 삽니다. 그러나 가끔은 전략도, 컨셉트도, 목표고객도 모르는 것처럼 멍청한 광고인이 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우리회사의 지역회의에서 CEO인 셸리 라자러스 회장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 어느 광고주 사장에게 열심히 전략을 설명했는데, 다 듣고 난 그는 “컨설턴트처럼 굴지 말고, 그런 (잘난) 생각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할지를 당장 보여주세요!” 라고 소리쳤답니다.
앗, 그게 바로 제가 할 일입니다. 아이디어 내는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말고, “Just Do It.”
레고 포스터
칸 광고제 등에서 이미 많은상을 받아 유명해진 이 포스터 캠페인은 우리의 모든 엄숙함을 거부합니다. 사무실 건물 입구에 “계속 놀자”는 카피와 함께 붙여 놓아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외벽에 레고 모양과 같은 건물을 찾아 붙였다고 합니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들처럼 그림에 원근법을 활용하여 평면 포스터에 입체감을 완벽하게 살렸습니다.
채널 O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집행된 인종차별을 하지말자는 공익광고와 비슷한 아이디어. 인종에 따라 ‘피부색(살색)’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였지요. 여기서는 검은색 크레용에 “살색”이라고 적어 놓았네요. 아래를 보니 “검은색으로 돌아가자- 채널 오”라는 카피가 보입니다. 요하네스버그의 제작팀이 만든 흑인 음악 특집 채널을 위한 광고입니다.
숲 보호 재단
번호에 지정된 색으로 칠을 해야 생동감 있는 그림이 떠오르는 어린이용 그림책이 소재로 쓰였습니다. 기억하시지요? 그림에 적힌 번호와 같은 색을 칠해야 합니다. 그런데 1번을 검은색으로 칠하라는 지시만 보이네요. 만일 그대로 칠하면 화면 전체가 검은 색이 되어 숲과 동물들의 그림이 없어지고 맙니다. 카피는 “화려한 자연을 유지하게 도와주세요- 숲 보호 재단”
우편 주문 패션
아이디어란 문제를 푸는 일이지요. 그것도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해 모두가 헤매고 있을 때 주저 없이 칼로 잘라버린 알렉산더처럼 쉽게 푸는 일입니다. “우편으로 주문하는 패션”이니까 골치 아프게 설명하지 않고 봉투와 직물을 합쳐 쉽고 재미있게 풀었습니다. 단순 명료하게 풀어내는 이런 실력을 어쩔 수 없이 부러워하게 됩니다.
아우디
아우디의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 캠페인 중 하나. 344 마력에 4,116 cc V8 엔진이니까 한 마디로 힘이 좋다는 것이지요. 자동차 광고에 자동차 사진을 뺀 것도 좋지만, ‘힘좋고 강한 차’를 이렇게 쉽게 시각화한 기술이 쌓이면 광고계도 빨리 진보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