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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못 보던 세상에 관한 못 보던 이야기

2009-12-15


못 보던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못 보던 세상의 느낌은 어떤 걸까?
디자이너들에게 ‘못 보던 걸 만들자’라는 말만큼 난감한 작업이 있을까? 못 보던 것의 비주얼화,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난감한 일이다.

글 | 이주환 아트디렉터(juhwan.lee@tbwakorea.com)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2008년 하나로텔레콤이 SK에 인수되면서 SK브로드밴드라는 이름으로 사명이 바뀌어 시작하게 된 경쟁 PT. 기업명이 완전히 바뀐 만큼 새로운 기대감을 주어야 한다는 점, 또한 이제까지 소비자에게 주지 못했던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기업으로서 해야할 이야기 등을 고려하여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See the Unseen’이라는 슬로건을 뽑아냈다. SK브로드밴드는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전화, 인터넷TV라는 상품을 가지고 있고, 이 세가지가 Convergence된 힘, 다시 말해 융합의 힘으로 우리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창조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렇기에 ‘See the Unseen’은 적절한 슬로건이자 컨셉트였다.

이제 문제는 그 ‘Unseen한 세상’의 비주얼화였다. 누군가는 인디아나 존스가 정글을 헤치고 나아갔을 때 덩굴 너머에 어렴풋이 보이는 안개 낀 사원 같은 느낌을 말했고, 누군가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보랏빛 세상일 것이라고 했으며, 또 누군가는 못 보던 생명체들이 사는 가상의 공간을 말했다. 이런 각자의 머리 속에 맴도는 말들의 비주얼화는 당연히 아트디렉터의 몫이었다. 고민에 빠졌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정말 못 보던 비주얼을 만들자. ‘Convergence’라는 특성에 맞게 이것저것이 합쳐진 못 보던 생물체를 만들자. 보랏빛으로 이루어진 안개가 낀 정글을 만들어 보자.


비주얼을 만들 때 결정적으로 확신을 들게 하고 도움을 준 것은 우리 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보여준 앙리루소라는 프랑스 화가의 ‘꿈’이란 그림 한 점이었다. 이 그림을 보았을 때 ‘Unseen한 세상’에 대한 막연함은 사라지고 왠지 수풀 너머의 이제껏 못보던 세상이 보이는 듯했다. 이 그림을 모티브로 기업과 연관성이 있는 소재인 랜선, 전화기, 모니터, 마우스 등으로 이루어진 정글을 스케치했다. 막연하게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에 많이 근접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여러 생각을 통해 이번에는 연관성이 있는 조금 소재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벡터 아이콘들을 융합시켜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보였고 많이 거칠었다. 좀 더 과감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젠 좀 더 못 보던 것들을 결합시켜보았다. 앙리루소의 몽환적인 풀들과 18세기 유럽풍의 일러스트레이션, 현대적인 일러스트레이션, 디지털 문자들, 아이콘들, 단어들, SK브로드밴드의 서비스에서 파생될 법한 모든 소재들이 융합되었고, 어느 순간 ‘Unseen한 세상’은 점점 완성되고 있었다.

못 보던 사물들의 융합과 배경에는 보라색을 적용하여 어느덧 ‘Unseen한 세상’의 이미지는 완성이 되었다. 그리하여 PT용 인쇄 광고는 완성된 이미지에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Unseen한 세상’에 관한 카피를 적용시켜 완성하였고, TV광고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의 영상을 15초로 만들었다. 또한 이 ‘Unseen한 세상’의 신비감과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던 TV광고의 BGM은 같이 작업에 참여한 CF 감독의 제안으로 그 때 당시엔 잘 알려지지 않았던 W&Whale의 ‘RPG Shine’이란 곡이 채택되었다.

PT결과도 만족스러웠다. 광고주는 우리TBWA의 손을 당연하다는 듯 들어주었고, 우리는 PT 석상에 제시했던 못 보던 세상에 관한 세 가지 TV-CM을 준비하게 되었다.


우선 시안에 사용했던 이미지들의 저작권을 해결하고, 삽입된 일러스트의 디테일을 높여 원고작업을 진행했다. 원고 일러스트레이션은 ‘스튜디오 4월의 김제형 실장’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여러 차례 작업을 해본 바로는 ‘Unseen한 세상’의 감성적 톤과 우리가 추구하는 몽환적인 캐릭터들을 구현내기에 그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융합이라는 키워드와 캐릭터의 융합 사례를 제시하여 캐릭터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새와 사람의 결합, 부엉이와 고양이의 결합, 말과 기타치는 남자의 결합, 토끼와 여자의 결합 등 우리가 추구하는 컨셉트에 잘 맞는 캐릭터들을 몽환적인 느낌으로 잘 구현해 냈다.

개발된 캐릭터들을 적절한 위치에 나열하고 앙리루소의 몽환적인 풀들을 배열하여 숲을 만들었다. 벡터 아이콘과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적당한 위치에 배열하여 융합의 새로운 느낌을 최대로 살려보고자 했다. 배열만으로는 공간이 주는 깊이를 느낄 수 없기에 오브제와 오브제 사이의 그림자와 빛을 만들어 내고 카피에서 느껴질 공간감, 신비감까지 고려하여 디테일을 올려 나갔다. 수 일간에 걸친 작업 끝에 이미지는 완성되었다.

이젠 이 완성된 ‘Unseen한 세상’의 이미지를 TV광고를 위해 영상화시킬 차례였다. TV광고 작업 과정에서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람이 스토리를 구성하기 제일 쉽겠다는 판단 하에 평소와 다르게 감독이 메인이 아닌 아트디렉터가 메인이 되어 진행하게 되었다. 우선 이 이미지에 사용된 여러 가지 오브제를 재배열하여 7~8장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이미지는 스토리텔링을 고려하여 순차적으로 배열되었고 이것이 TV광고의 콘티가 되었다.

‘아이콘이 날아든다’, ‘아이콘 중에 모니터 속의 꽃, 이 꽃의 꽃잎이 터지면서 나비가 되자’, ‘카메라 이동, 풀들로 이루어진 섬 위에 기타를 치는 말머리 인간을 세우자’, ‘물고기+개구리가 뛰어가는 들판이 나오고, 화면이 뒤집히면 라디오 맨들이 뛰어 가보자’, ‘ 다시 카메라가 줌아웃, 전화기 넝쿨들이 떨어지는 정글에 아이팟 오징어들이 헤엄쳐보자’ 이런 상황과 동작의 아이디어들에 맞추어 모션그래픽 작업이 시작되었다.

저 너머에 무언가 존재할 것 같은,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디테일한 섀도우와 라이팅 연출, 그리고 회화적인 느낌을 끝까지 살려가기 위한 우리의 집요함,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기 위해 한 프레임 프레임마다 엄청난 공을 들인 포스트프로덕션 직원들의 노력 융합으로 이제껏 보지 못했던 ‘Unseen한 TV광고’는 완성되었다.

‘Unseen’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 그것은 융합의 힘이었다. 이 모든 과정들을 거치며 팀원들이 각자 한마디씩 던졌던 의견, 앙리 루소의 그림을 보고 못보던 세상을 떠올려 보자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의견, 융합으로 이루어진 못보던 세상의 기대감에 대한 가사를 쓴 카피라이터의 의견, 이 CF를 위해 만들었다 싶을만큼 잘 어우러졌던 BGM에 관한 감독의 의견, 포스트프로덕션의 프레임 프레임의 디테일을 위한 노력 등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Unseen한 세상. 또한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Unseen한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텝들의 의견이 모여 하나가 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자, 이제 다시 우리가 만들어낸 ‘Unseen한 세상’의 이미지를 보라. 또한 (더 이상 TV에 온 에어 하지 않아 아쉽지만 인터넷으로나마) SK브로드밴드의 런칭 TV광고 동영상을 보라.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융합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보이는가? 저 앙리 루소의 몽환적인 수풀너머에도, 모던한 벡터 아이콘 너머에도, 보랏빛 안개가 드리워진 무한한 공간의 Unseen한 세상이 이제는 더 깊이 보이는가?

수평선 너머 하늘이 닿는 곳 즈음 존재할 듯한 몽환적 생명체들의 보랏빛 세상, 이와 같은 Unseen한 광고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광고인들의 머리와 마음은 수없이 융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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